글 / 윤지관_평론가,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 1954년생. 평론집 『근대사회의 교양과 비평』 『리 얼리즘의 옹호』 『민족현실과 문학비평』 등
목요일 오후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열네번째 세션은 3명의 발제자(마사오 미요시, 장이우, 도정일)와 3명의 토론자(박상륭, 윤지관, 이남호)가 참석하였으며, 2시부터 6시까지 네시간에 걸쳐 시종 활발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마지막 세션임에도 홀에 가득 들어찬 청중들이 장시간 동안 거의 움직임이 없이 발제와 토론을 경청했고, 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등, 책정된 시간이 원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20분이나 넘길 정도로 반응이 좋았고, 발제자들의 답변도 적극적이었다. 토론자의 한 사람인 탓도 있겠지만, 필자 또한 이 세션에서 적지않은 지적 자극을 받았고, 평소 경외하던 소설가 박상륭 선생의 고견(제4의 발제라고 해도 좋을)을 듣게 되는 망외의 소득을 얻기도 하였다. 이 세션의 발제, 토론, 질의 등을 충분히 소개할 만한 자리는 아니므로, 중요한 쟁점과 논의, 그리고 흥미로왔던 대목을 정리해본다.
세 발제자가 모두 90년대 이후 달라진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 대응을 보여주었다. 미요시 교수가 초점을 둔 것은 지구화와 민족국가의 약화, 그리고 그에 따른 문학(특히 창작)의 쇠퇴이며, 이같은 상황에 대응하는 새로운 총체성의 가능성으로서의 지구혹성에 대한 환경적인 관심과 의식이었다. 지구화가 초래한 문제점에 대한 인식에서는 도정일 교수도 미요시 교수와 대체로 유사한데, 도교수는 지구화에 맞서는 문화적 대응으로서 특히 비서구적인 서사양식의 복원을 강조하였다. 이 국제포럼의 의제가 역시 지구화의 문제에 집중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필자와 또다른 토론자인 이남호 교수도 이 점에 주목하기도 하였다. 이 두 발제자의 지구화에 대한 이같은 경계 혹은 비판과 어느정도는 상반되게, 중국의 장이우 교수는 지구화가 초래한 새로운 상황이 새로운 문학유형을 낳고 있음을 긍정적으로 소개하여 눈길을 끌었다. 장 교수의 이같은 입장은 중국 상황에 딱히 들어맞지 않는 서구의 ‘포스트’ 이론들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토론자 및 청중 질문), 언어문제 때문에 발제자의 충분한 답변을 듣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역시 미국 학자인 미요시 교수의 비관적 관점과는 달리 서구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중국 나름의 강박감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발표자들에 대한 토론 대신 이루어진 박상륭 선생의 ‘발제’는 참석자들과 청중들 모두에게 깊은 감명을 던져주었다. 외국에서 한국말로 창작활동을 하다가 다시 모국으로 돌아온 자신의 행로를 짠물에서 갖은 고초를 겪다 돌아온 연어의 회귀로 비유하는 대목은 특히 감동적이었다. 이 발제에서 선생은 언어의 문제, 특히 모국어에 기반한 문학의 의미를 세계화의 추세에 견주어 깊이 있게 다루었는데, 문학비평가인 다른 다섯명의 참가자들의 언어와 홀연 구별되면서 문제의 심층을 파고드는 창작자의 음성이 청중들에게까지 어떤 울림을 준 순간이었다.
이 세션에서 짚어진 서사양식으로서의 소설의 곤경과 의미도 박상륭 선생의 발제와 상호연관되어 있다. 미요시 교수가 소설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창조적 상상력의 존속을 말하면서(여기에 도정일 교수도 적극 동의하였는데),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매체가 그 상상력을 담보할 가능성을 거론한 부분은 흥미로왔지만 따로 더 논의되지는 않았고, 한편으로 소설 그 자체의 가능성 문제는 그것대로 충분히 해명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각각 동아시아 3국 출신인 발제자의 면면으로 보면, 동아시아 문제가 하나의 이슈로 떠오를 법도 하였으나, 실제로 토론에서 그 점은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필자로서는 서구의 주류학계와 우리의 시점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왔다. 일본 출신이면서 엄연히 미국 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인 미요시 교수가, 서구 이론의 헤게모니 현상에 대한 필자의 지적에 대답하면서, 미국 내 이론가들 사이의 갈등이나 상반된 입장의 존재 등을 들어 동의하지 않았던 것은 이같은 활동근거지의 차이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체 미국 학계가 생산하는 이론과 담론이 전지구적으로 행사하는 헤게모니가 부정될 수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인데, 하여간 이 문제는 이번 포럼이 필자에게 던져준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