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1.

축제, 박람회, 학술회의, 학술과 문화의 집단적인 행사가 많은 요즘이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한국 사회의 문화 에너지의 발현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는 다른 사회의 긴급한 일들에 비추어 낭비라는 비판을 받을 일로도 생각된다. 문화에 관련된 일들은 반드시 해야되는 일이 아닌 까닭에 낭비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되는 일이 문화 관련의 행사이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일에서보다도 문화 행사는 실질적인 내용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적어도 사후의 정당성을 얻는 일이 될 것이다.

이번의 국제문학포럼을 추진하면서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이 점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번 포럼이 실질적인 내용을 가진 것이었느냐 하는 것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주관적인 인상으로는 공허한,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지는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외국에서 온 작가들은, 몇몇의 말로는, 초대된 손님으로서 의례적인 말들을 한 것이기도 했겠지만, 먼 길을 찾아 온 값이 있었다는 만족을 표현하였다. 한국 측에서 참가한 작가들과 학자들도 주제들의 토의에 진지하게 참여하였고, 그것은 외국의 작가들에게도 심각한 대화의 상대자로서의 인상을 남긴 것으로 생각한다. 놀라운 것은 문학이 죽어간다는 세상에 청중이 보여준 관심이었다. 대회 장소가 큰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는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청중이 모였다. 청중은 흔히 이런 행사의 경우에 그러한 것처럼 학생층만이 아니라 나이 든 분들도 포함됐고 서울뿐만 아니라 멀리 지방에서도 올라 온 분들도 눈에 띠었다. 이번 포럼의 성황의 일부 원인은 대중 매체의 보도로 인한 것이었을 것이다. 대중 매체의 보도는 지속적이고 상세하고 대규모적인 것이었다. 보도는 문제들에 대한 좀 더 심도 있는 취재로 가능했을 것이나 대체로는 고맙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번 포럼은 우리 나라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문학 행사로는 가장 큰 규모의 것이었다. 사실 세계적으로도 규모와 내용에 있어서 이만한 크기의 문학 행사는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행사로서 이만한 정도로 끝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2.

처음에 포럼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은 것은 1998년 초 대산문화재단의 김병수 전 부이사장으로부터 였다. 처음에 조직위원으로 유종호, 도정일, 김화영, 반성완, 조남현, 이남호 교수 등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본인이 조직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처음 작업은 주제를 확정하는 일이었다. 여러 사람의 토의도 있었으나, 그것을 정리 확정하고 영문화한 것은 도정일 교수였다. “경계를 넘어서 글쓰기 : 다문화시대의 문학”이라는 이름은 나중에 수정이 가해지면서 확정이 된 것이지만, 처음부터 중심적인 아이디어로 채택된 것이었다. 주제의 세부가 정해지면서, 초청 작가들의 명단을 작성하였다. 초청 대상 작가들은 처음부터 정해진 경우도 있고, 작가 자신이나 주최측의 사정으로 바뀐 경우도 있었지만, 윤곽은 첫해에 대체로 정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IMF 위기라고 부르는 경제 위기는 포럼 계획의 중단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이미 초청장들이 나가 있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국제적인 신용을 생각하여 심히 주저되는 결정이었으나, 국가의 형편으로 보아 별 수 없는 일이었다. 포럼 연기를 알리는 신창재 이사장의 편지가 발송되었다. 거기에는 나라의 경제 사정에 대한 설명과 사정이 호전되는 대로 계획을 계속하겠다는 약속도 들어 있었다. 다행이 경제의 위기도 다소 누그러지고, 대산재단에서는 포럼을 계속할 것을 결정하였다. 새로 부임한 윤상철 상임이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1999년 2월에 나는 다시 조직위원회에 참석하였다. 이번에는 조직위원으로 도정일, 김성곤, 전영애, 고종석 여러분과 본인이 참여하였다. 새로운 조직위원회에서 다시 주제와 초청자 명단을 검토하였다. 주제는 약간의 수정 이외는 그전의 것을 계승하고, 초청자는 새로운 이름들을 추가하되, 국제적인 신용을 생각하여 그전의 초청자를 일단은 다시 초청하기로 하였다.

대체적인 윤곽보다도 그 세부의 기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더 힘드는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세부 중 맨 처음 문제는 원하는 외국 작가들을 정하는 것이고, 정한 작가를 한국에 오도록 설득 작업을 벌이는 일이었다. 한국은 세계의 문화지도에서 별로 큰 나라도 아니고 또 우리도 알려진 단체나 개인이 아니었기에, 한국에 온다는 일 또 이 대산문화재단의 행사에 참석한다는 일에 실감을 주는 일이 중요한 일이었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하여, 윤상철 상임이사와 나는 1999년 3월에 ‘The Word’라는 이름의 런던 문학 축제에 참석하고 적어도 거기에 참가하는 외국의 작가들을 만나서 말을 꺼내기로 결정하였다. 런던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작가들이기는 하지만, 월레 소잉카, 데릭 월코트, 나딘 고디머, 마가렛 애트우드, J. M. 쿳지 등 여러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월레 소잉카는 포럼에 참석할 것에 쾌히 동의하였다. 또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을 찾아 영국 작가들의 초청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직접 만나지 아니하여도 외국의 초청 작가에게는 실감을 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월레 소잉카의 경우에도 승낙을 받기는 하였지만, 세부 사항을 정하는 데에는 또 다른 개인적인 주의가 필요하였다. 소잉카 그리고 미국의 시인 게리 스나이더를 접촉하고 자세한 내용을 협의하고 하는 데에는 김성곤 교수가 수없는 문통을 하면서 설득을 계속하여야 했다. 피에르 부르디외를 초청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것은 고종석 선생이 개인적인 공략을 하고 또 프랑스 거주의 조혜영씨를 통하여 설득을 계속하여야 했었다. 독일 작가의 경우는 독문학과 관련하여 독일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전영애 교수의 개인적인 접촉을 통하여 두 사람의 작가를 참석할 수 있게 하였다. 국내 작가는 조직 위원이 직접 연락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곽효환 팀장을 비롯한 대산의 직원 여러분이 권유와 설득을 맡아 주었다. 작가는 대체로 매우 특별한 사람들 - 그들이 하는 일에서도 그러하지만, 그 성품에 있어서도 매우 까다롭고 섬세하고 개성이 강한 존재인 것이 보통이다. 그들은 이 특이한 개성으로 세상에 부딪치면서 그 사이에 생기는 마찰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만큼 작가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별로 의미가 없어 뵈는 잔치에 참석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국외의 작가나 국내의 작가나 마찬가지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서, 일일이 작가들을 접촉해준 분들의 노고를 나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위에서도 말하였지만, 어느 일이나 세부가 중요하다. 신(神)은 세부 사항에 계시다는 속담도 있다. 이번 일에 제일 많이 힘드는 일들은 거죽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것을 뒤에서 뒷받침해 주는 실제적인 일들이다. 그 중에도 국외에서 찾아오는 19사람의 외국 명사들 - 또는 스스로 명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모시는 일은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하나하나 비행기 표를 개인의 필요에 맞게 조정 구입하고, 영접하고 안내하고, 잠자리, 식사를 준비해 주고 짜여진 스케줄에 맞게 행동하게 주선하고 - 이러한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이다. 윤상철 상무이사, 곽효환 팀장, 이정화, 전성우씨 등 대산의 여러분은 이러한 일을 조금도 차질이 없이 처리 해주었다. 이러한 문화 행사의 조직에 특별한 ‘노우하우’와 노력이 든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사실 전문적인 경영을 필요로 하는 부분으로 오늘의 사회가 갖추어야 하는 분야의 하나이다. 이번의 행사에서 대산의 여러분은 이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외국의 초청객들에는 일일이 안내원이 따르게 되었었는데, 몇몇 작가에게 물어 본 것으로는 대체로 그 도움에 감사하는 말을 하였다. 한 작가의 말로는 안내원이 자기를 도와 준 것은 “마치 할머니가 나를 돌보아 주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것은 고맙다는 말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을 가지기 어려울 정도의 근접한 도움을 받았다는 말로도 들렸다. 이 후자의 경우 스스로를 보이지 않게 두드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도움을 제공하는 일은 우리의 자유분방한 문화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이번 행사를 치르고 나서 아쉬운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령 작가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서로 만나서 비공식적인 교환을 가질 기회를 마련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경주 문화엑스포’를 참관하고 난 다음 마지막 날 밤에 나는 몇몇 국외에서 온 작가들과 술자리를 같이할 기회를 가졌다. 나는 작가로서의 그들의 경험에 대하여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작가는 특이한 개성의 소유자이고 그러니 만큼 특이한 인생을 산 사람일 경우가 많다는 것을 나는 확인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여러 잡담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비로소 작가들의 개인적인 측면들에 접한다는 느낌을 가졌다. 이것은 이들 외국 작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아는 방법은 객관적인 지식을 통하는 것도 있지만, 극히 개인적인 접촉을 통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사실 인상적인 것이 되는 것은 이 후자이다. 이들 작가들이 이왕에 한국에 왔으니까, 한국을 조금 알고 갔으면 좋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들도 희망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개인적인 만남을 통하여 한국을 알게 될 기회를 우리가 마련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회의의 낙수(落穗)로서 하나 보태고 싶은 것은 외국어의 문제이다. 언어의 자유로운 소통 없이는 국제적인 교류가 있을 수 없다. 같은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지만, 대개는 통역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동시 통역자들과 안내 요원들의 통역은 우리나라의 어학 수준이 이만큼 와있다는 신뢰감을 주는 것이었다. 어학의 문제는 문서의 경우에 더 심각하다. 우리가 정확한 이해를 기대하는 것은 말보다 글을 통해서이고, 또 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록에 남는 것이다. 이번의 포럼과 같은 회의에는 발표문들의 번역 문제가 있고, 수없는 편지가 오가는 서신의 문제가 있다. 우리의 영문을 어느 정도의 수준에 유지하는 데에 김성곤 교수의 수고가 많았다. 원고의 번역은 우리 학계의 중진 학자들이 충동원되어 수고하였다. 영문 번역의 마지막 손질에는 서강대학의 안선재 교수가 수고하여 주었다. 서신의 독문은 전영애 교수, 불문은 고종석 선생의 수고를 빌었다.

외국어 번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용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외국어를 상당히 공부하고 그것을 전문으로 한다고 해도, 그것이 곧 국제적인 수준의 언어 능력에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통은 가능하겠지만, 정확하고 품격을 갖춘 언어 구사는, 간단한 편지의 경우라도, 본국인까지도 쉬운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 나라에서의 여러 경우를 보면서, “천사가 발딛기 두러워하는 곳에, 바보들이 밀려든다”라는 시구를 생각할 때가 많다. 이번 포럼의 결과는 앞으로 인쇄물로 출판될 것이지만, 그때에도 이것은 명심해야 할 일이기에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인다.

작가나 시인은 자기의 세계에 충실한 사람이다. 이 자기 세계는 가장 구석진 오지일 수도 있다. 작가가 세일즈맨이 되어 세계를 주유하는 것은 작가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크게 해가 되는 일이다(이것은 세일즈맨으로 주유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는 그의 세계에 자신을 가져야하고 그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여야 한다. 오늘의 세계에서 이것은 다른 넓은 세계에 대하여 자신을 견주어 보지 않고는 썩 얻기 어려운 자신감이고 언어 능력이다. 많은 문화 행사가 실속없는 법석에 그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경계하면서, 우리의 문학과 문화를 밖으로 터나가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의 문학 포럼을 가능하게 한 대산문화재단, 참가 작가, 조직과 실무를 맡았던 여러분들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