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성민엽_평론가, 서울대 중문과 교수. 1956년생. 평론집 『지성과 실천』 『고통의 언어 삶의 언어』 『문학의 빈곤』 등
‘전환기의 글쓰기’ 세션은 다문화세계 속에서의 경계를 넘는 글쓰기라는 대주제를 전환기라는 개념에 집중하여 검토하는 자리이므로, 전환기의 내용을 어떻게 파악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세 명의 발제자들은 그 파악에서 상당히 큰 편차를 보였다.
칠레의 소설가인 델라노씨에게는 전환기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느 시대나 다 전환기이고 특히 20세기는 더욱 그러하다. 씨는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가 전복되자 10여년 간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했고 1984년에야 귀국했다. 씨는 그 망명 생활의 시기가 자신에게 의미심장한 전환의 시기였다고 말했다. 인본주의의 다양한 대의들이 하나의 수렴점을 빨리 찾아내기를 바란다는 씨의 소망과 유토피아를 위해 투쟁하자는 씨의 호소는 아마도 그 전환의 시기에 튼튼히 자란 것이리라 여겨진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전환기의 내용을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디지털 문화의 대두로 파악하면서, 그러나 그런 전환이 문학활동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오히려 전환기이기 때문에 더욱 전통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들이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 씨의 주장이고, 씨는 그 논의의 맥락에서 리얼리즘의 탈색화와 무색의 미메시스를 문학의 전환 방향으로 제시했다.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씨는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노동운동이 쇠퇴한 지금 자본주의-민족-국가의 결합체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를 논했다. 씨는 사회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조합주의 쪽에서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그 이론적 근거를 『자본론』의 가치형태론과 자본 순환론에 대한 재해석으로부터 찾고 있다. 요컨대 잉여가치는 유통과정에서 생겨난다는 것이고, 따라서 소비자운동과 노동운동을 결합함으로써 잉여가치의 실현을 방해하는 실천적 방안이 도출되고 여기에서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델라노씨와 이문열씨에 대한 토론은 재미 일본인 비평가 사카이씨와 소설가 최윤씨, 소설가 최인석씨가 맡았다. 델라노씨에 대한 토론은 대체로 토론자 자신의 소감의 피력과 부연 설명에 대한 요청이었고, 이에 대한 답변에서 델라노씨는 사회주의적 휴머니즘은 훌륭한 독트린이고 단지 운영자가 잘못 운영했을 뿐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반면 이문열씨에 대한 토론은 논쟁성이 강했다. 특히 최인석씨는 이문열씨가 순수/참여를 방향을 달리 하는 계몽성의 충돌로 본 데 대해 강력히 반발하면서 순수의 현실순응과 권력유착을 통렬히 비판했다(이 대목에서 씨는 70년대의 대통령긴급조치 조문을 읽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이문열씨는 우파-보수라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고 하나의 계몽성이 될 수 있다, 이상주의만이 계몽인 것은 아니다, 라고 답변했다.
가라타니씨에 대한 토론은 문화비평가 강내희씨와 철학자 임홍빈씨, 그리고 필자가 맡았다. 가라타니씨가 발제문집에 실린 발제문을 많이 수정한 내용으로 발표를 했지만 근본 취지와 논리 전개 자체는 동일했다. 강내희씨는 가라타니씨의 발제를 ‘코뮌’을 위한 이론적 기획으로 읽고 기본적으로 그 기획에 동의하면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코뮌’의 문화 건설; 신자유주의 속에서 ‘코뮌’ 전략이 부딪히는 난점들; 자본의 순환 과정 바깥의 문제들)을 지적했고, 임홍빈씨는 가라타니씨가 여전히 경제주의적 시각에 갇혀 있고 규범적 행위이론적 관점과 구조 분석을 결합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잉여가치가 유통과정에서 생겨난다는 가라타니씨의 『자본론』 독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노동운동과 소비자운동 사이의 계급적 불일치 문제, 그리고 트랜스크리티시즘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질문했다. 가라타니씨는 답변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은 탓에 잉여가치 문제에 대해서만 답변했는데, 자신의 뜻은 생산과정에서의 잉여가치를 말하면서 다른 것들을 무시하는 경향에 대해 비판하는 데 있고 자본에 대해 생각할 때 여러가지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데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잉여가치가 생겨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블랙박스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것이 노동운동을 축소해서 생각한 것은 아니다, 라고 해명했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토론 시간이 충분치 못하다는 게 이번 포럼에서도 아쉬웠던 점이다. 하지만,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 아주 다른 견해들이 개진되고 또 그 견해들에 대해 다양한 이의들이 제기된 것만 해도 우리의 전환기 인식에 유용한 참조가 되리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