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서울 국제문학포럼’을 지켜본 사람들은 규모와 내용 면에서 국내 최대의 문학행사였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어떤이는 행사 기간과 맞물려 열린 시드니 올림픽에 빗대 두뇌의 올림픽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양적인 면만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이번 포럼은 특기할만 했다. 과거 정부 주도로 개최된 문인대회 등은 많은 돈을 들여 외국 문인들을 초청해놓고도 관광 등으로 소일해 오히려 참가자들로부터 문학 관련 행사가 없다는 항의를 받곤 했었는데, 이번 행사는 메인 포럼을 비롯해 각종 강연회, 기자회견 등으로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종 알찬 내용으로 진행돼 내외 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은 한국을 여러차례 방문해 봤지만 이번처럼 보람있었던 적은 없었다며 만족을 표시하기도.
-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은 행사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포럼 운영팀을 사로잡은 화두였다. 포럼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역시 참가자를 섭외하는 일. 초청 대상자 모두가 명성 만큼이나 바쁜 사람들이어서 그 어려움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부르디외는 4년 동안이나 공을 들였음에도 막판까지 건강 문제를 이유로 확답에 뜸을 들여 관계자들의 애를 태우게 했다. 국내 참가자들 중에서도 김지하, 황석영, 박상륭 등이 이런저런 이유로 애초의 참가의사를 번복해 실무진을 당황케 했다. 다행히 단 한명의 결원도 없이 예정대로 포럼이 개최될 수 있었던 것은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만큼의 행운도 뒤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작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독일의 귄터 그라스는 성사 막바지 단계에서 참가가 무산돼 아쉬움을 남겼다.
- 참가자 섭외가 마무리 된 다음 운영팀을 괴롭힌 것은 발표논문 접수였다. 원래 7월 중순으로 예정돼 있던 원고 마감은 포럼 막바지에 가서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 애초 걱정했던 해외 참가자들은 원고 제출에 협조적이었던 반면 믿었던 국내 참가자들이 게으름을 피웠던 때문. 특히 포럼 준비에 깊이 관여했던 한 문인은 발표 당일날에야 원고를 제출해 행사 진행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와 컨퍼런스홀에서 동시에 진행된 이번 포럼은 3일 내내 방청석의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청중이 많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때문에 참가문인들의 발표문을 수록한 논문집이 순식간에 동이 나 이를 구하지 못한 청중들로 작은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초 주최측이 예상한 논문집의 수요를 훌쩍 뛰어넘은 탓인데, 추가로 인쇄한 논문집까지 바닥이 나 이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문의전화로 포럼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재단의 업무가 방해를 받았을 정도.
- 포럼이 끝난 다음날에는 포럼에 참가한 주요 문인들의 청와대 예방이 있었다. 애초 부르디외 같은 이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 뒤에 깔려있을지도 모를 정치적 의도를 경계해 방문 자체를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김 대통령과 만나 대화를 나눠본 뒤에는 대통령의 성실한 답변과 해박한 식견에 감탄을 표했다. 한편 나이지리아 망명작가인 월레 소잉카는 한국에 망명작가들의 안식처를 마련해줄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을 해 역시 망명생활을 경험한 바 있는 김 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기도. 그로부터 보름쯤 뒤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발표되자 대통령을 만났던 외국 참가자들로부터 축하메일이 쇄도해 노벨상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청와대 방문 뒤의 단상 하나. 선진국에서 온 작가들일수록 대통령이나 장관 등과의 만남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행사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려 한다는 사실.
- 재단은 해외 참가 문인들의 윤곽이 드러난 올 초부터 각 언론사, 문예지, 학회, 대학 등 관련단체에 공문을 보내 인터뷰 및 강연회 등의 접수를 받았다. 어렵사리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문인들을 포럼에만 참가시키고 끝내기가 아까워서였는데, 수차례에 걸친 공문과 독촉전화에도 시큰둥하던 단체들이 막상 포럼이 임박하자 뒤늦게 해외 참가 문인들을 초청하겠다고 간청을 해와 주최측을 곤란하게 했다. 해외 문인들에게는 이미 국내에서의 스케줄을 확정해 통보하고 본인들의 동의까지 받아놓은 상태였기 때문. 미리미리 준비를 했다면 초청 문인들을 더 잘 활용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다. 반면 일찍부터 준비를 시작한 한 중앙일간지는 해외 참가 문인들의 연쇄 인터뷰까지 게재하는 등 이번 포럼을 십분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부지런한 새가 먹이를 낚는 법.
- 국제행사일수록 세계어, 보편어로서의 영어의 위세를 실감하게 된다. 이번 포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외 참가 문인 중 영어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사람은 알바니아 출신의 망명작가 이스마일 카다레가 유일했다. 그래서인지 카다레는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정도로 안내요원에의 의존도가 높았다. 안내요원이 없이는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 포럼 기간 내내 카다레는 수줍어한다고 생각될 만큼 매사에 유독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영어를 못한다는 그의 사정과도 관련이 있었던 듯. “영어 사용자는 브라만”이라는 어느 소설가의 아포리즘을 떠올리게 했다.
- 일반인들에게는 유명 문인들의 포럼에서의 발표내용 못지 않게 그들의 개인적인 면모에도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이번 포럼에 참가한 문인들은 그들의 명성 못지 않게 훌륭한 인품과 매너를 지녔다는 게 그들을 안내한 사람들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소잉카는 노벨상 수상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시종 겸손하고 소탈한 태도를 보여주었고, 부르디외는 방청객들의 잇따른 사인 공세에도 얼굴색 하나 찌푸리지 않고 모두 응해줘 오히려 이를 말리려는 재단 관계자들을 민망하게 했다. 초청에 애를 먹었던 부르디외는 막상 행사에 참가하자 강연회, 인터뷰 등의 예정시간을 매번 넘길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본인의 요구로 즉석에서 마련된 서울대 강연회는 예정된 1시간을 2시간 반이나 넘겨 진행하기도. 게리 스나이더나 마거릿 드래블 등도 안내요원들이 그들의 인품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 반면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았던 어느 작가는 홍등가와 판문점에 데려가 달라는 엉뚱한 요구를 해 안내요원을 황당하게 했는가 하면, 또 다른 작가는 시종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 작가는 한국에서 재배한 야채는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식사 때 야채에는 손도 대지 않는가 하면, 출국 때에는 한국 공항의 서비스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은 자기가 운반해야겠다고 끝까지 고집을 피워 하마터면 비행기 시간에 늦을 뻔한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