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정환_시인, 한국문학학교 교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1954년생. 시집 『기차에 대하 여』『순금의 기억』, 산문집 『전망은 그릴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 등
올해는 김동인, 현진건 탄생 100주년에, 채만식 50주기에… 내년부터는 100주년, 50주년이 줄줄이 섰는데… 소설가 이문구(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이하 존칭 생략)는 올해 초 감투를 쓰자마자 그렇게 걱정 반 의욕 반이었다. 행사 치를 일이 걱정이고, 차제에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관심을 독자와 당국 모두에게 단단히, 그리고 제대로 다짐받아둬야 한다는 의욕이었다. 걱정이네요, 정말… 그의 상임비서 격인 나는 그렇게 맞장구 반 발뺌 반으로 대꾸했다. 허나, 정말 걱정이었다. 행사는 돈이 많이 들고, 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내용이 부실한 허례허식에 불과하기 십상이다. 요즘 문인들이 누가 오겄어… 그렇게 이문구도 언뜻 걱정 쪽에 무게를 싣고 나는 ‘무작정 동원해서도 안되죠, 괜히 시간 뺏는 거니까’ 그렇게 볼멘 소리를 보탰다. 하지만, 정말 어찌한다? 안할 수는 없고…
그렇게 회의가 시작되었다. 황현산(작가회의 평론분과위원장)은 소위 ‘공개 단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지만, 일을 합리적으로 또 ‘예술의 좌파’적으로 마무리짓는데 천재다. 이문구의 걱정은 행사를 세미나로 축소-심화시키는 쪽으로, 의욕은 차제에 매년 해당 작가의 책을 1천만원어치쯤 구입하여 고등학교에 무료공급함으로써, ‘청소년 현대문학고전 읽기운동’으로 구체화하자는 쪽으로 해결이 났다. 탄생지를 둘러싼 행사는 그 주체를 해당 지역 문학단체에 맡기고… 사실 고전문화의 주역은 ‘자유의’ 대학생이 아니라 ‘의무교육’의 청소년들이다. 고전문화로서 근대소설 읽기 운동은 기존의 상업적인 논술서 풍토를 정통의 문학-예술 교육으로 극복하고, 더 나아가 소설문학을 매개로 전통과 새로움을 결합, 새로운 밀레니엄 예술적 상상력의 토대로 작용케 한다는 점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어쨌거나, 대산문화재단 측은 ‘행사의 다양성’이 미흡하다는 생각을 끝내 떨치지 못했지만 지원금 1000만원을 흔쾌히 책정해주었고 그 돈은 온전히 도서기증에 쓰여졌다. 그 다음은 세미나 문제. 내용은 어떻게 하고 청중동원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세미나 실무를 맡은 방민호(문학평론가)와 최성실(문학평론가)은 세미나 발제 항목을 줄이고 내용을 학위논문 보다는 현안쟁점 쪽으로 전화시키고 그것을 미리 잡지에 발표케 하여 발제의 내용을 미리 ‘화제의 평론’으로 만들고 그 분위기를 바탕으로 (일반인 보다는) 대학원생급 관심자들을 학교별로, 또 과별로 동원한다는 생각에 100%합의했다. 하지만 추진과정은 쉽지 않았다. 특히 방민호(그 자신 채만식 전공자다)의 무지막지한(?) 의욕이 발제 항목 수와 발제 원고 매수를 마구 늘려갔고 준비과정이 7개월에 이르렀지만 계간지에 싣는 일은 한 번은 원고가 한편 밖에 완성되지 않아서 또 한번은 원고 매수가 너무 넘쳐서, 실패했다. 갈수록 짜증이 더해가는데, 그리고 청중동원 걱정이 2중 3중으로 두터워지는데 하필 세미나 날짜가 토요일로 잡히는 바람에 그 근심의 정도는 한층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대산문화재단이 직접 마련해 준 기자간담회가 성황리에 끝난 덕택에 홍보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기사가 지면을 채우는 일과 185석짜리 인촌기념관 회의장을 채우는 것은 다르다. 나는 며칠 동안 혹시 세미나 참석자 수가 간담회 참석 기자 수보다 적으면 어떡하나 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많이 왔어요, 정말… 개인적인 사정으로 세미나에 한 30분 늦을 것 같아 전화를 해보니 여직원이 대뜸 그런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어쨌거나 그렇게 미리 한시름 놓고 도착해보니 황현산이 여유만만하다. 포스터를 들여다 보며 채만식이 얼굴이 좀 묘하지, 이때가 동아일보 근무할 땐데, 웃고 있는 것 같지만… 이때는 박헌영이 조선일보 있을 때 아녜요? 복잡할 때지, 지금보다 더… 나는 그렇게 받았고 곧장, 대뜸 물었다. 사람 많이 왔다면서요? 응, 많이 왔어. 시작 몇분 전에는 딱 2명이 와서 가슴이 철렁했는데…
세미나는, 다시, 그리고 당연히 무지막지하게 1시 반부터 8시 너머까지 물경 7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포스터와 팜플렛은 이제까지 나온 어떤 세미나 자료집 류보다 품위있고 아름다웠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채만식 선생의 둘째 아들 채계열 옹의 아버지 회상은 감동의 비단을 깔았고 동경외국어대학교 한국문학 전공교수 사에구사 토시카츠의 강연 ‘채만식 문학에서 배운 것’은 학문의 겸손과 국제주의를 참으로 용의주도하게 짜맞추었다. 2부 세미나의 발제는 모두 네 개. 토론자는 각 2명. 뭐 그냥 심심하게 넘어가지 않겠나 하는 나의 예상을 깨고 격렬한 토론이 전개되었다. 실무사회자가 놀랄 정도로.
뒤풀이 자리는 초만원이었다. 예약된 자리를 두배로 가제확장(?)하고도 자리가 모자랐다. 이시영 부이사장의 참으로 점잖은 인사말이 끝나고 그렇게 흥청망청 술독으로 빠져드는데, 취기 밖에서 누가 고함을 지른다. 황현산이다. 술을 더 마셔야겠는데 식당주인이 자꾸 밥을 시키라니까 화가 났단다. 그건 아니겠고, 그만 일로 식당 아줌마 민중(?)한테 역정을 낼 사람은 아니고… 그는 무엇에 화가 난 것일까, 아니 지친 것일까. 우린 얼마나 더 문학의 행사성과 행사의 문학성 사이 기로를 헤매야 하는 것일까, 문학 자체가 기로에 있는데. 2차까지 가서 간다는 소리 소문도 없이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취중에도 아까운 재능을 아깝게 낭비시켰다는 자책에 휩쌓였다. 그리고 구분과 결합, 구분과 결합, 그 두 단어를 주문처럼 뇌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