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인환_평론가, 고려대 국문과 교수. 1946년생. 평론집 『문학과 문학사상』 『비평의 원리』 『상상력과 원근법』 등
9월 27일 오전과 오후에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시장경제체제 속에서의 글쓰기 Ⅰ,Ⅱ”는 발표장에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청중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고종석씨의 사회로 진행된 오전 세션은 부르디외 교수(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사회학)와 김우창 교수(고려대, 영문학)가 발표를 맡고 김병익 씨(평론가)와 최장집 교수(고려대, 정치학)가 토론을 맡았다.
「위기 속의 문화」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부르디외 교수는 우리 시대의 문화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가, 예술가, 학자들조차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사회 속에는 여러 개의 작은 사회들이 있다는 그의 가설에 근거하여 그는 작은 사회의 장(場)들이 고유의 법칙에 따라 보존해온 자율성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 경제적 합리성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 세계화의 논리라고 규정하였다. 단기적 이윤의 창출만을 목적으로 삼는 상업주의가 예술의 생산과 유통을 지배함으로써 현대 문화는 국가와 계급을 초월하는 맥도널드 문화가 되었으며 금권의 검열이 작은 사회의 자율성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세계화에 대한 반대가 세계주의와 민족주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부르디외 교수의 독특한 논거이다. 세계화에 반대하려면 문학과 예술이 국제주의의 전통을 회복하여 각국의 작가, 학자, 평론가, 편집인들이 결집하여 모든 서비스를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세계화의 논리를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실천적 제안이다.
「문학과 세계시장」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김우창 교수는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내재하는 양면성을 지적하였다. 서양의 제국주의가 형성해 놓은 오늘의 세계는 자본주의의 질서를 영구화함으로써 한국과 같은 나라가 자본주의의 번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조성해 놓았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은 자본주의의 질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문학의 자율성도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자본주의와의 타협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서양의 근대화 과정이 합리화의 과정인 것과 마찬가지로 서양 근대소설의 발달도 이성적 상상력의 전개라고 할 수 있다. 합리적-심미적 양식이 현대문학의 담론을 규제하는 기본 규칙이라는 것이 김우창 교수의 가정이다. 그는 오늘의 상황이 정당한 곳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선진 자본사회의 문제를 한국 고유의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대화에 필요한 조건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두 분의 발표에 대하여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한국의 경우에는 재벌개혁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며 보수주의를 동요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하였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소설의 자율성이 자본주의의 성쇠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이화여대 불문과 김치수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오후 세션은 프랑스의 소설가 파스칼 카자노바씨와 중국 사회과학원 왕휘 교수가 발표를 맡고 데니스 멀로니(화이트 파인 출판사 대표)와 정과리 교수(연세대 국문학)와 필자가 토론을 맡았다.
「문학 세계화의 길, 노벨 문학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카자노바 씨는 노벨 문학상 심사기준의 역사적 변화를 실증적으로 기술하였다. 보편성, 중립성, 수용성이라는 기준에 1945년 이후 전위성과 실험성이 추가되었고 1960년 이후로 유럽중심주의로부터의 이탈이라고 할 수 있는 개방성이 조심스럽게 고려되기 시작하였다. 노벨 문학상은 유럽에서 미국,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중동, 일본으로 수상의 범위가 확대되어 왔다. 노벨 문학상은 세계문학의 공간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예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카자노바 씨는 아일랜드 문학을 예로 들어 한국어와 같은 소수의 언어도 세계문학의 기준을 한국의 전통에 창조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세계 서적시장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왕휘 교수는 여화(余華)라는 매력있는 비평가의 글쓰기를 소개하면서 기술주의, 객관주의, 구조주의에 반대하고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 문학과 현실의 경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글쓰기는 자신에 대하여 반대하고 자신을 세상에 개방하는 작업이며 허무에서 출발하여 허심(虛心)에 이르는 작업이다. 문학작품을 독립적인 자율체로 보는 프랑스적 태도와 작품보다 글쓰기의 과정을 중시하며 현실의 혼란과 긴장을 문학에 포섭하는 러시아적 태도를 비교하고 이 두 태도의 충돌에서 유머가 산출된다는 견해는 참신하고 흥미로웠다.
이 두 분의 발표에 대해서 세계문학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문학의 보편성을 절대적 표준으로 삼는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오래된 질문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문학의 세계에서는 문화마다 서로 다른 고전과 특수한 기억들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그리고 “담장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지요”라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처럼 경계를 허물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경계를 잘 쌓고 다시 경계를 넘어 맥락과 관계를 형성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