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하림_시인, 1939년생, 시집 『겨울꽃』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굴참나무 숲에서 아이 들이 온다』 등
당나라 말기쯤에 살았다고 하는 전설적인 인물인 한산(寒山)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한산이 해능이나 임제에 버금가는 선승이었던지 떠돌이 중에 지나지 않았던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며 아는 바도 별로 없다. 그의 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천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시는 순수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되는 이백의 「월녀사」나 술노래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고, 비탄의 소리가 하늘 높이 떠도는 두보의 비가에도 처지는 것 같다. 한산의 시에는 조탁의 과정적 아름다움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산의 시를 읽을 때마다(무슨 연유에서인지)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왜 그는 국청사와 같이 크고 아름다운 사원에 머물지 않고 그의 생애를 헤매임으로 보냈을까. 왜 그는 집을 떠나갔을까.
이같은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시에서는 향수와 탄식의 울림이 떠돌고, 그와는 다른 세계, 다른 시대에서 살았던 발레리의 “누가 내 발자국을 보아줄 것인가” 라는 시구절이 떠오른다. 한산은 외로움에 지칠 때면 국청사에서 불목한이 일을 하는 습득을 찾아가 밤새 부엌에 불을 때며 웃고 떠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습득은 한산을 세상에 하나뿐인 형이라고도 했다. 그런 그리움과 슬픔을 두고 한산은 왜 떠돌았을까. 떠돌다가 그는 그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 적은 없었을까. 아니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요즘 내가 한산을 주목한 것은 그가 전설적인 구도자라고 해서도 아니고 시인에 가깝다고 해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나라의 많은 화가들이 한산을 그리거나 그의 시를 화제(畵題)로 써왔으며, 시인들도 그의 시를 번역하거나 그의 시에서 영향을 받아왔다고 하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산 같이 살았던 시인이나 화가는 없다. 한산은 완전히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그는 시를 썼으되 시까지도 가지려 하지 않았다. 돌에 새기거나 종이에 써서 버렸던 것을 뒷사람들이 거두어 습득의 시와 함께 묶어내 주었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이 드물고 그런 시인은 전무하다. 일본의 하이쿠 시인 이사가 그에 근접했다고 할까.
어쨌든 무소유로 살기는 쉽지 않고 무소유로 시를 쓰기는 더더욱 어렵다. 무소유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시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소유와는 반대쪽에 서있음직한 감정과 사고로 시인들은 시를 대량생산하고(시의 시대라고 할만큼) 시 같은 것, 가짜시 같은 것까지도 넘쳐난다. 공자의 예언대로 이제 시(예)는 깊은 시골에서나 찾을 수 있다고 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대량생산되는 시 혹은 시 같은 것들이 일제히 소유권(저작권)을 주장하고 나선다는 사실이다. 소유권은 처음 발표지면에서는 물론이고, 시집으로 묶을 때도, 전집으로 간행될 때도, 인터넷에 올릴 때도 요구된다. 물론 어느 한 잡지나 출판사가 시나 시집을 내고자 할 때 소유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의사나 약사들처럼 모두 거리로 나서서 시의 값이 이것 뿐이냐고 외치고 또 외쳐야 한다. 가치(값)가 양으로 계산되는 오늘과 같은 세상에서 한편에 몇만원에 불과한 시는 업(業)이라고 할 수 없고, 불교적인 의미에서의 업보라고나 해야 된다.
그러면서도 내가 한산의 이야기를 새삼 하고 있는 것은 양적 가치가 시의 외부적 현상에 불과한 것이고, 시의 내면에서는 여전히 한산처럼 어느 곳에도 머무르려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않으며, 남기려 하지 않으려는 무소유의 정신이 살아 흘러야 된다는 것이다. 한산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한 철학자는 외딴 오두막집을 시인의 집이라고 했다. 그런 집이야말로 헛되고 거짓된 욕망을 버리는 집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오두막집은 사랑과 그리움이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작고 단순한 구조물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옛날에 수평선 멀리 뻗어 있는 황혼과 나무들을 보았으며, 그 수평선으로 각각의 희망을 가지고 사람들은 떠나갔으되 수평선의 수렁에 빠져 함몰되었거나 실패한 채로 돌아왔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시인은, 그러나 그 수평선을 소중히 기억하려고 하며, 그것을 말로 남기려 한다. 그래서 또 역사는 시인을 필요로 하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