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문학포럼 3일째 열린 제 13세션 ‘서구세계와 비서구세계에서의 글쓰기 Ⅰ : 문학담론의 헤게모니’에서는 두 사람의 발제논문 발표와 세 사람의 코멘트와 비판이 있었다. 이 세션 발제논문에서는 서구와 비서구에서의 글쓰기와 문학적 담론이 어떻게 행해지고 있으며, 또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글쓰기에서 생산적 의미에서의 의사소통과 상호교류 그리고 헤게모니를 벗어난 차원에서의 문학적, 문화적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점들이 논의되었다.
독일의 부흐(Buch) 씨는 「동서의 오해? : 동양의 전제정치에 관한 논평」이라는 주제발표에서 동서양 문화의 차이를 가늠하는 잣대를 서양의 민주주의 이념과 전통, 그리고 동양의 전제정치와 이에서 파생하는 문화에서 찾으면서, 이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동서양을 비교하는 이러한 잣대가 어느정도 타당성이 있는지 아니면 오해에 기인한 것인지를 묻고 있고 나아가서는 이러한 차이가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를 탐색하고 있다.
김성곤 교수는 비서구인의 글쓰기가 서구인들에게 쉽게 수용될 수 없는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어떻게 하면 비서구인의 글쓰기가 서구인의 글쓰기와 만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논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해결의 구체적 방안으로 한국에서의 서양문학 공부의 개선책을 지시하고 나아가서는 비서구인으로 서구에서 글쓰기에 성공한 작가 및 지식인, 예컨데 사이드의 예를 들고 있다.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오스트레일리아 대학에서 독문학을 강의하는 앤서니 스티븐스(Anthony Stephens) 교수는 우선 부흐 씨가 제시한 아시아식 전제정치라는 것은 실제로는 다른 문화나 타인종에 대한 이미지의 구성이고, 이것이 신화적 단순화, 상투적 개념이 된 것이며, 또한 그것은 문화적 갈등이라는 비극적 면을 만들어내었다고 논평하였다. 스티븐스 교수는, 오스트레일리아 지식인답게 서구인이면서도 변방 서구인 지식인으로서 서구 문화 센터의 헤게모니(특히 영국)에 시달리면서 이에서 벗어나려는 오스트레일리아 지식인의 고충을 얘기하고 있다. 원주민의 희생 위에 세워진 오스트레일리아 문화가 서양문화적 헤게모니를 누리면서도 또 다른 큰 헤게모니에 저항하고 있다는 주장은 서양의 문화적 헤게모니 내에서도 편차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스티븐스 교수는 문화의 헤게모니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세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낯선 것이나 외국문화라는 것은 언제나 만들어진 것이고 또 가장 좋은 문학은 이렇게 만들어진 상투화된 문화와 이미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둘째, 다문화적 쓰기와 읽기는 모름지기 상투적 이미지 뒤에 무엇이 숨겨 있을까를 알리고 싶어하는 호기심의 관점에서 행해져야 한다. 독일 문학을 전공하고 아시아 문화권에 접해 있으면서 둘이나 그 이상의 문화 사이에서 소요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지식인 스티븐스는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른 문화를 쉽게 또 곧바로 접근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나고 존경할 만한 태도가 아니다.”
직접 문학적 글쓰기에 종사하고 있는 작가 최수철 씨는 한국 작가로서의 글쓰기의 이중의 소외를 토로하고 있는데, “서구의 시각에서 볼 때, 동양인으로서의 동양적 비전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동양의 시각에서 볼 때 동양적인 풍토를 충분히 끌어안고서 서구의 문학과 맞서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또 서구적 글쓰기의 보편성을 어느정도 인정하면서도 서구의 일방적 헤게모니에 부단한 경계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과, 한국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태도 역시 ‘한국문화의 지평을 단순화, 정형화시켜 그 가능성을 축소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이 앞으로 지향해야할 방향은 “쌍방의 노력을 바탕으로 서구문학의 분석적 효율성과 동양문학에서의 근원적 사유의 힘이 만나서, 잠정적으로 가치중립적인 혹은 과도기적 문학을 세우고, 그것으로서 새로운 문학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우선 부흐 씨가 ‘동양의 전제정치’라는 잣대로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하는 것은 서양의 동양에 대한 해묵은 견해이고 또 그것은 너무 단순하다는 지적을 하였다. 그 예로 전제정치의 오랜 전통을 지녔던 독일의 근현대사가 겪었던 역사적 고통과 어려움, 베를린 장벽 해체 이후 러시아와 동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혼란과 진통을 들었다. 그리고 서구인들은 일반적으로 역사적으로 누적되어온 동양에 대한 인식과 오랫동안 지속된 서구의 동양에 대한 헤게모니적 사고 때문에 동양을 진지하게 성찰하기 보다는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고답적 시각을 가지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동양에 대한 인식이나 선입관을 통하여 자신들의 지나온 삶이나 역사적 잘못을 애써 감추거나 지워버리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독일 지식인의 경우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한국인이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지녀야 할 것은 주체적으로 서구문화를 수용하려는 진지한 노력과 함께 끊임없이 새롭게 우리 문화나 글쓰기의 정체성을 찾고 또 만들어가려는 의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