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일행은 석모도에서 강화로 나오는 배에 올라탔다. 가을이라 해가 짧아진 탓인지 바닷물에는 벌써 엷은 어스름이 풀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선착장에서 배가 막 떨어져나와 방향을 잡기 시작하자 어디서 날아올랐는지 한 무리의 갈매기들이 뱃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십여 분의 짧은 뱃길을 갈매기들은 내내 퍼덕거리며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 갈매기들을 향해 새우깡을 던지는 사람들과 그것을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새들의 행렬, 그것은 배가 바다에 깊숙하게 남기고 가는 물길 위로 난 또 하나의 길처럼 보였다. 새우깡을 미리 준비해 온 걸 보면,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으며 사는 석모도 갈매기의 이야기는 꽤 알려져 있는 듯했다. 더 이상 자유로운 비상의 상징이 아니라 10분 짜리 뱃길에 묶여 오가는 관광상품이 되어버린 새.

나는 조금씩 어두워지는 뱃전 구석에서 그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 새들은 사람들이 던지는 과자 조각을 좇느라 아무런 울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귀엔 분주하게 퍼덕이는 그들의 날개소리가 왜 울음소리로 들렸던 것일까. 그 울음소리는 아무리 귀를 막아도 더 크게 들려오는 사이렌의 노랫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과 귀를 사로잡는 노랫소리가 아니라,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져서 그로부터 마음을 뗄 수 없는 울음소리.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귀를 밀랍으로 막게 하고 부하들을 시켜 자신의 몸을 돛대에 단단히 묶게 하였지만, 그리하여 무사히 그 해협을 통과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그가 무엇을 보고 들었을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카프카는 오디세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새롭게 쓰면서 그가 들은 건 사이렌의 침묵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즉 사이렌은, 밀랍과 사슬에 의지하고 자신만만해 하던 오딧세우스에 대해서 새로운 전략을 써서 어떤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사이렌의 침묵을 오딧세우스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이 사이렌을 이겼다고 생각하며 그곳을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사이렌은 수만 가지 모습으로 생(生)의 파도 위에 출몰하곤 하는 모양이다.

그날 내 눈에 비친 사이렌은 파도 위에 부유하는 마른 먹이를 물기 위해 낮게 낮게 날고 있는 누추한 날개의 형상이었다. 살아 팔딱거리는 새우가 아니라 금세 바닷물을 머금고 가라앉아 버리는 새우깡 몇 점을 따라 힘겹게 평형을 유지하며 흔들리고 있는 날개들. 높이 날아오르지도 못하고 낮은 허공에 출렁거리는, 찢겨진 깃발과도 같은 날개들. 그 날개들이 부딪치는 소리는 배에서 내린 뒤에도, 강화를 떠나 뭍으로 돌아온 뒤에도, 서울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때에도 끊임없이 들린다. 그 사이렌의 울음소리로부터 좀처럼 놓여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석모도를 떠나오면서 그 아픈 파도 한 줄기를 데려온 것이 그리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그동안 생존을 위해 바쳐야 했던 무수한 날들이 내 속에도 오래 전부터 출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낮게 이어져 온 내 속의 울음소리가 아마도 그 울음소리를 불렀을 것이다. 누에고치 처럼 생겼다 해서 석모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언젠가 잠실(蠶室)에 들어가서 누에가 뽕잎을 먹어치우는 소리를 들으며 꼭 파도소리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모든 생존의 소리는 이처럼 왕성하고, 그 왕성함으로 또한 처연하다.

이제 보니 내가 써온 시들 역시 그 울음소리를 대체로 닮아 있다. 내 시뿐 아니라 세상의 시란 모두가 그런 삐걱거림과 파닥거림의 기록이 아니던가. 시는 근원적으로 무애(無碍)한 비상을 꿈꾸는 날개이지만, 그것이 빚어지는 공간은 오히려 비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들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생존의 울음소리는 두려워하고 피해야 할 소리가 아니라, 내 귀를 막고 있는 밀랍 조각을 들어내고 내 몸을 단단하게 묶고 있는 사슬을 거두어내면서라도 고통스럽게 귀 기울여야 할 소리가 아니겠는가. 글쎄, 석모도 갈매기로 환생한 사이렌들이 이런 내 생각을 알게 된다면, 다음 뱃길에선 처연한 울음소리 대신 막막한 침묵으로 나를 맞을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