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에 대산문화재단이 ‘한국문학의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내걸고 출범했을 때, 노골적인 표현은 안했지만 사실은 깊은 속마음을 깔고 있었다. 우리도 한 번 노벨문학상을 타보자, 우리 재단이 그 산파역을 맡자는 뜻이 이심전심으로 강하게 작용했고 그 목표를 향해 지금도 달리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 다른 분야에서 그 상이 먼저 나왔고 다음에는 문학 쪽에서 나와야지, 하는 기대감을 더 갖게 된다. 2000년에 중국의 가오싱젠이 탔으니 동양에서는 인도 1명, 일본 2명에 이어 네 번째 수상자가 나온 셈이다. 프랑스에 망명중인 그의 작품은 맨 먼저 스웨덴어로 번역되었고 10여년 동안 중국어로 된 그의 작품이 7개 국어로 번역되어 유럽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는 것도 강점으로 작용한 듯하다. 그의 작품에 관해서 정작 중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오히려 금서조치까지 당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의 예를 보더라도 필요하고 충분한 여건이 먼저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은 일이다.
그러면 그런 상을 받을 만한 여건은 무엇일까.
우선 세계무대에서 한국문학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만큼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점을 들고 싶다. 우물 안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이 없다.
지난번 서울 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한 20명 가까운 외국 작가들은 대부분 자기나라에서 한국작품을 접해본 일이 없었는데 이곳에 와서 많은 작가를 만나고 훌륭한 작품 소개를 들으면서 감명받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외국에서는 근래에 동양학 연구가 활발하고 각 대학도서관에 동양학 코너가 있게 마련인데 대부분의 서가는 일본과 중국 서적으로 가득차 있고 한국 서적 코너는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놓여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코너에도 정치․경제․역사책들이 태반이고 문학작품은 더욱 빈약하며 그중에서도 외국어로 번역된 우리의 시와 소설을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다. 정부에서도 그러한 현실을 알고 오래전부터 문예진흥원을 통해 한국문학 번역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몇 년 전에는 한국문학 번역금고를 만들어 번역지원을 강화하고 있으며 민간재단으로서는 대산문화재단이 유일하게 번역지원과 국제문학교류 사업을 펼치고 있다.
통계를 보면 그동안 문예진흥원이 2백56건 지원에 1백73건 출판, 번역금고가 52건 지원에 5권 출판, 대산문화재단이 114건 지원에 43권 출판의 기록을 나타내고 있고 출판사들의 독자적인 번역본을 합하면 5백여권은 충분히 됨직한데 외국도서관에서 우리 작품의 번역본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왠일인가.
번역사업의 내막을 들여다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3개 기관이 대체로 같은 패턴인데 우선 한국인 번역자와 원어민(native speaker) 번역자의 공동번역을 원칙으로 하고 이들에게 적지 않은 번역지원금을 주어 1～2년 사이에 번역을 마치게 되면 그것을 어권별로 현지 출판사를 물색하여 출판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지원금을 주어가며 책을 내게 된다.
출판사를 고를 때에도 가급적 현지에서 유명한 대형출판사를 희망하는데 그러한 출판사들은 한국 작품을 좀처럼 출판하려들지 않는다. 결국 군소출판사에서를 통해 대체로 2천부 정도의 책이 나오게 되면 지원기관에 2백부 정도 보내오고 나머지는 현지 서점에 팔려야 하는데 이 책들도 대부분 창고에서 낮잠 자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없어지고 만다. 번역지원금과 출판지원금을 보내면서 몇 년에 걸쳐 나온 책들의 운명이 그렇게 되어가는 것을 보면 지원하는 측으로서는 허탈감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그래도 펌프에 물을 부어 지하수를 유도하는 심정으로 언젠가는 우리 작품이 세계문학계에서 주목받을 만한 때가 오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끈기있게 번역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작년부터 우리 재단에서는 외국에 나가있는 공관이나 상사의 책임자들에 일일히 편지를 보내 기왕에 외국인들에게 선물할 일이 있으면 우리나라 작품의 번역서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고하면서 어권별로 책명과 현지 출판사의 주소, 전화 등을 알려주고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현지 문학계의 여론지도층에 우리 번역서를 기증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구차한 일을 한없이 계속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우리도 머지않아 한국문학을 전공하는 외국학생들이 지원금을 받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한국문학작품을 번역하고 유수한 외국 출판사들이 자진해서 우리 작품을 출판하는 날이 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기까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작품의 번역작업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또 한국문학을 전공하는 외국학생들의 수가 늘어나며 그 질이 높아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