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한 외국작가들과 국내문인들은 지난 9월 29일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를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 남북한 관계에 대한 전망, 세계화 등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얘기들이 오고갔다. 청와대를 방문한 문인들은 외국작가로 피에르 부르디외, 월레 소잉카, 이스마일 카다레, 게리 스나이더 등 17명, 국내작가 김우창, 김종길, 박완서, 고은 등 6명이었다. 이날 김 대통령과의 대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 김 대통령 : 세계적인 작가들을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영광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 하는데 문화는 확실히 사회의 동력이다. 한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문화를 중요시하면서 그 역할을 다해온 역사이다. 토착문화로 시작돼서 5～6세기에는 불교, 그리고 유교, 14세기는 유교가 절정에 달해 국교가 되었는데 중국에서 들어온 불교, 유교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 해동불교와 조선유교로 재창조하였다. 한국은 선진문화를 항상 창조적으로 받아들여 발전시켜왔다.
주변 민족이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세 가지 타입이 있다.
첫째는 북방민족과 같이 약탈을 일삼고 파괴함으로서 결국 문화적으로 낙후를 면치 못한 경우가 있고, 둘째는 만주족이 중국을 점령하여 청나라로 270년간 통치했는데, 중국문화를 재창조하지 못하고 원형대로 유지하다가 이제는 만주족 자체가 없어진 상태이다. 셋째 한국민족은 그와 다른 길을 걸어 중국문화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되, 이를 재창조하였다. 그러한 재창조의 힘으로 중국화 되지 않고 7천만 민족이 독자적인 민족문화를 이어오게 된 것이다.
문학작품은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서구문명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한국문화는 샤머니즘과 불교, 유교, 서구문화 등 4개의 문화가 어우러진 창조적인 문학작품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가장 세계적인 작품이 나오고 있는데 언어의 장벽 때문에 번역 등을 통해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노력부족으로 귀중한 작품이 널리 소개되지 않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문화예산을 증액해서 지원하고 번역사업을 강화해 나가겠다. 이러한 시기에 세계적인 문학포럼이 열림으로써 자극이 되고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믿으며 한국문화 전체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하고 청와대를 방문해주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곳에 머무는 동안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견문을 넓히며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되기를 바란다.
- 개리 스나이더 : 한국의 문화사를 요령 있게 압축해서 말씀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미국의 역사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인간은 문화장벽을 넘어 동질감을 느낌으로써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한국이 겪어온 인내심과 독립성, 동질성과 확고한 소신 등을 존중하며 특히 나는 지난 100년 사이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한국의 활기 넘친 문화정신이 세계문화 발전에도 기여하게 되리라 믿는다.
-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 : 대통령의 간단한 이력을 보니 수많은 수난과 억압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그러한 힘이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는가. 그 신체적, 정신적인 힘은 종교적인 힘이었는가. 그리고 아울러 독일에서 온 사람으로써 남북 통일의 전망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 김 대통령 : 사실 나는 이곳에 내려오면서 여러분은 세계최고의 지성들이기 때문에 어려운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첫째 질문에 대한 답은 종교적인 신념과 역사에 대한 신념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카톨릭이기 때문에 항상 하느님과 같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1973년 일본에서 납치되어 결박된 상태에서 물 속으로 집어넣으려는 순간, 나는 예수님을 만났다. 하느님에게 순종하며 사는 길이 고난극복에 도움이 되었다. 세계 역사를 통털어 인간의 존엄, 정의, 자유 등의 기본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 사람 치고 역사 앞에서 패배한 적이 없다. 현실에서의 성공을 포기하더라도 역사는 영원히 승리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목숨을 내놓을 용기와 사명감이 생긴다. 그런 힘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인간은 누구나 영원히 살지못하고 그 자리에 영원히 있지 못한다. 우리 두 사람은 남북한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이다. 후세 역사에 우리가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평화통일을 지향하자. 남북이 각각 이기는 Win-Win 정신으로 전쟁하지 말고 평화 공존하면서 일해나가자”고 이야기했다. 통일은 궁극적인 목표이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이 땅에 평화를 확립하기 위해 교류협력해야 한다. 이산가족, 경제, 문화, 스포츠의 교류가 필요하다. 긴장완화와 교류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돌리면 된다. 내 임기 중에 그 이상은 할 수 없다. 10～20년 후에 이만하면 되었다고 할 때 통일로 간다.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이 없는 양측 합의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 월레 소잉카 : 나는 청와대 방문이 두 번째이다. 10여년 전에 방문한 바 있다. 오늘 김대통령의 확고한 신념과 파란의 정치역정을 알게되어 다시 방문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즉흥적인 질문 하나 드리겠다. 나는 국제작가회의 의장직을 맡고 있는데 세계의 탄압 받는 작가의 피난처로 프랑스, 포르투갈, 멕시코 등이 제공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시에라리온에서 탄압 받은 작가들이 보호받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에는 이런 피난도시가 한 군데도 없다. 한국은 지금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라 할 수 있는데 관용과 포용의 문화를 만들어서 서울도 탄압 받는 작가들의 피난처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실 용의가 없으신 지 제안하고 싶다.
- 김 대통령 : 개인적으로 흥미 있는 제안이다. 나도 고은 시인과 같이 1980년에 감옥에 같이 갔고 다른 문화인들도 감옥에 가고 망명한 역사를 갖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자유롭게 창작활동하지 못하고 망명작가로서 고난받고 있다는 것은 남의 일 같지 않고 동정심이 간다. 작가는 국적을 떠나 인간, 양심, 영혼의 소리를 대변하는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 제안을 한국작가들과 협의해서 정식 제안해 온다면 정부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
- 피에르 부르디외 : 소위 세계화 시대에 많은 나라들이 그 정체성을 위협받고 있다. 한국도 그러한 도전을 받고 있는가? 그러한 도전을 받으면서 재창조 할 수 있는가? 극복하는 방안은?
- 김 대통령 : 선진 문화는 양날의 칼과 같다. 잘 소화하면 자기 문화 발전하고 세계화되지만 그에 동화되어 버리면 매몰되고 소멸되어 버린다.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가 부를 창조하는 원천이 된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은 세계화의 홍수 속에서 더욱 소외될 우려가 있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내가 세계은행총회에서 행한 연설이 공감을 얻어 의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개발도상국들도 정보화를 동시에 이루어내 부의 분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불평등이 없도록 해야한다. 개발도상국들도 부의 분배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교육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먹고살기 급급한데 자기 문화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도 정보화 시대의 네트워크에 참여시켜 부의 창출에 동참하도록 해야한다.
21세기에는 인구, 노동, 토지가 부가 아니라 사람의 두뇌가 부의 원천이다. 교육기회를 확대하면 부를 강화시킬 수 있다. 교육은 지적 각성과 연결되고 세계가 거둔 열매를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여러분은 문화의 지도자들이다. 개발도상국의 문화적 유산과 정체성을 발굴하여 지적 각성을 하게 해야한다. 예를 하나 들겠다. 우리 나라에는 판소리라는 전통문화가 있다. 1960년대에는 그것이 중요시되지 않았는데 어떤 기회에 프랑스 공연에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되자 그러한 평가가 다시 국내에 들어와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문화적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각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