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2000 서울 국제 문학 포럼에서 ‘분쟁 속의 작가’라는 주제로 발표한 우리나라 작가는 김원일과 황석영이었으며, 외국에서 이 주제의 발표를 위해 참석한 문인은 프랑스의 알바니아 출신 망명작가인 이스마일 카다레와 미국의 버클리대 교수이자 평론가인 알레인 킴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분쟁의 문제는 바로 남북분단의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첨예한 문제의식으로 소설화한 대표적 작가를 꼽는다면 김원일과 황석영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발표는 이 주제에 아주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번 코소보 사태 때 알바니아인들을 인종청소의 대상으로 삼은 세르비아계의 만행을 규탄한 작가이자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알바니아인들의 삶과 정신, 비극적 역사와 관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카다레 역시 ‘분쟁 속의 작가’라는 주제에 걸맞은 작가로 생각된다. 이 주제의 발표자들 중 유일하게 평론가인 알레인 킴은 미국에서 발표된 한국계 작가들의 소설을 비교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동양계 혹은 아시아계 민족의 문화적 갈등과 내면화된 분쟁의 양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하였다.

9월 27일 오전에 열린 카다레와 김원일의 발표에서는 같은 시간에 열린 부르디외의 강연장 쪽으로 청중들이 몰리는 바람에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였지만, 오후에 열린 황석영과 알레인 킴의 발표에는 많은 청중들이 참석하여 이 문제에 대한 열띤 관심과 호응도를 드러내었다. 오전의 행사에서 첫 번째 발표자였던 이스마일 카다레는 문학의 원천이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문학과 삶의 차이라거나 문학과 현실의 간극이 보다 중요한 문제인만큼 양자 사이에 놓인 보호벽의 논리를 강조하였다. 그는 고대비극을 연구한 실러가 ‘문학은 보호벽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위대한 문학은 현실의 대중적 취향이나 시장의 지배에 굴복하지 않는 문학이라는 것을 역설하였다. 아무리 삶의 비중이 크고, 현실적 사건의 무게가 인간에게 절박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문학에 거침없이 수용될 수 없다는 논리, 즉 문학은 높은 ‘자율성’의 세계로 이뤄져 있음을 그는 일깨우려 했다. 알바니아의 비극적 역사와 민족적 고난의 깊이, 정치적 상황의 암울함에 대한 작가적 소명의식의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짐작했었는데, 그는 그러한 일반적 예상을 넘어서서 삶과 역사의 문제들과는 다른 문학적 특수성과 불가사의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발표를 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논지에는 무엇보다 문학에 대한 높은 긍지와 자부심이 근거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발표문이 충분한 보충설명을 곁들이지 않아 토론자에게나 청중들에게 그만큼 의아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되자 그는 ‘문학적 보호벽’과 관련된 자신의 주장에 오해가 없도록 당부하기도 했다.

김원일은 분단 현실의 특수한 한국적 상황에서 분단의 문제로 글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일반화시켜 말하면서 작가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했다. 그는 전쟁과 분단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작가 세대의 차이를 언급하고, 그 중 첫 번째 한글세대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문제의식과 작가적 체험을 ‘분쟁시대와 나의 문학’이라는 소제목의 내용으로 정리하면서 발표문의 내용보다 더 자세한 설명을 부연했다.

오후에 열린 강연회에서 비평가 일레인 킴은 강용흘의 『동양이 서양에 가다』(1937), 하인즈 인수펜클의 『나의 유령 형님의 기억』(1996), 페티 킴의 『리라이어블이라는 이름의 택시』(1996)등 한국계 미국작가들의 세 작품을 분석하였다. 그는 이 작품들에서 미국 사회의 모순을 포착하는 한국계 작가들의 관점과 세대의 차이를 주목하고, 그들의 문학적 작업이 이룬 성과와 앞으로의 가능성을 포스트 식민주의의 테두리에서 논의하였다.

이어서 발표한 황석영은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자유롭게 화두를 이끌어갔다. 그는 자신의 개인사와 20세기 한국인의 민족사가 연결된 지점에서 자신의 문학이 존재해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에 갈 수밖에 없었던 작가적 결단의 동기, 북한에서 그가 보고 느꼈던 일, 감옥에서의 체험 등을 솔직하고 열정적인 어조로 말했으며, 『오래된 정원』과 현재 쓰고 있는 『손님』의 작가적 의도를 설명하고, 과거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소설적 형식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나는 내 방식으로 세계를 보고, 내 방식으로 소설을 쓰겠다’는 식의 분명한 입장 표명에서 여전히 패기가 넘쳐흐르는 젊은 작가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