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을 번역하여 해외에 소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작품을 선정하여 제대로 번역하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어려운 작업을 마쳐도 출판이란 마지막 단계가 남아있다. 아직까지는 한국문학을 선뜻 출판하겠다는 해외출판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영어권의 경우 더욱 그렇다.
미국 화이트 파인(White Pine) 출판사의 데니스 멀로니(Dennis Maloney, 50세) 사장. 한국 문학을 출판하는 몇 안 되는 미국의 출판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2000 서울 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
“정말 오래 걸렸어요”
수수한 옷차림의 그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한 말이다. 동경을 거쳐 서울로 오는 항공편이 결항과 지연을 거듭하여 뉴욕 버팔로에 있는 집을 떠난 지 꼬박 이틀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시인 개리 스나이더(Gary Snyder)의 발표를 듣기 위해 포럼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으로 달려가는 멀로니의 모습에서 그 역시 7권의 시집을 낸 어엿한 시인이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스나이더 시인도 자신의 시집을 출판한 멀로니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다음 날 멀로니는 ‘세계시장경제체제 속에서의 글쓰기’ 세션의 토론자로 나섰다. 세계 각국의 문학을 출판하고 있는 출판인으로서 한 작가의 작품이 번역, 출판된 후 민족과 국경을 넘어 세계 속에 알려지게 되는 과정과 방법을 설명하여 주목을 끌었다. 그는 이번 포럼에 참여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서울 국제문학포럼은 한국 문학을 좀 더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참여한 다른 나라의 작가들과 만나 서로의 의견을 나눈 것도 다문화 국가의 책을 펴내고 있는 저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번역가로서도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멀로니는 1973년 화인트 파인 출판사를 설립하여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유럽 등 미국을 제외한 지구촌 곳곳의 시와 소설을 번역, 출판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 동안 칠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The Stones of Chile 칠레의 돌』『The House in the Sand 모래의 집』『Seaquake 해저 지진』을 비롯하여, 후안 레이몽 히메네즈의 『Light and Shadows 빛과 그림자』, 안토니오 마카도의 『The Landscape of Soria 소리아의 풍경』, 요사노 아키코의 『Tangled Hair 헝클어진 머리』등 다수의 시집을 번역, 출판하였다. 지금까지 출판한 2백50여종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인기있는 작품들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재정적으로는 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다른 나라의 수준높은 문학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가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3년에 이청준 등 여섯 작가의 단편들을 모은 『The Snowy Road - And Other Stories 눈길』을 출판하면서부터 이다. 이어 98년에 김지하 시선집 『Heart's Agony 중심의 괴로움』, 99년에 박완서 작품집 『A Sketch of the Fading Sun 저문날의 삽화』를 출판했다. 그는 한국문학이 가치있는 오랜 전통(long and valuable tradition)을 지니고 있으며, 한국의 작가들은 한국의 문화를 지켜내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문학이 비록 지금은 영어로 번역된 것도 많지 않고 홍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일본과 중국 문학에 뒤져 있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미국인들도 한국 문학의 우수성을 인정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번 방한 기간 중 한국의 작가와 번역가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는 그는 앞으로도 한국 문학을 지속적으로 출판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다음 번에 출판할 작품은 황동규 시집 『Great Wind at Mishi Pass 미시령 큰바람』이다.
뉴욕으로 돌아간 멀로니는 처음 방문해서 만난 한국 사람들의 친절함과 옛 궁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다음에 꼭 다시 와서 보다 많은 지역을 돌아보고 싶다고 전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