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계문학 담론의 첫장을 여는 대규모 국제 문학포럼이 지난 9월26일부터 3일동안 열렸다.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2000 서울 국제문학포럼 The Seoul International Forum for Literature”은 참가자의 면면이나 규모, 그리고 논의된 대주제와 각 세부담론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계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언론들은 같은 시기에 열린 시드니올림픽에 비유하여 ‘정신올림픽’이라 부르기도 했고, 또 ‘건국이래 최대, 최고수준의 문학축제’ ‘다양성 속에 연대와 우애를 추구하는 국제주의의 한마당’이라 평하기도 했다.
서울 국제문학 포럼은 우선 외양상으로 볼 때 ▲참가한 국내외 작가 ▲논의된 주제 혹은 담론 ▲행사의 규모 및 구성 등 3가지 측면에서 종래에 볼 수 없던 문학행사였다.
이번 포럼에 참가한 해외 초청작가는 10개국 19명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석학, 문호이거나 해당 언어권에서 상당한 문학적 위상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들이었다. 영어권에서는 1986년 노벨문학상을 아프리카 검은 대륙에 처음 안긴 월레 소잉카, 선불교와 환경, 생태주의에 깊은 관심을 갖고 미국시단에 큰 흐름을 형성한 시인 개리 스나이더, 영국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마거릿 드래블, 미국서 왕성한 아시아문학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계 평론가 일레인 킴과 일본계의 마사오 미요시 등이 발제자로 참여하였으며 뉴욕 화이트파인출판사 발행인이자 시인인 데니스 멀로니가 토론에 참여했다. 프랑스와 불어권에서는 전환기 비판적 사회과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프랑스로 망명한 알바니아의 대문호 이스마일 카다레, 프랑스 구조주의 시단의 거두이자 수학자인 자크 루보, 마르티니크 태생의 소설가 라파엘 콩피앙,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파스칼 카자노바 등이 발제자로 나섰다. 독일에서는 중견작가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와 동독출신으로 주목받는 신진시인 우베 콜베가 발제자로 참가하였고 호주 시드니대학 교수이자 비평가인 앤서니 스티븐스가 토론자로 참가했다. 스페인어권에서는 칠레의 유력한 중진작가 폴리 델라노가, 중국에서는 중국을 대표하는 젊은 비평가 왕휘와 장이우가 발제를 맡았다. 일본에서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 발제자로, 코넬대 교수이자 손꼽는 일본사상가인 나오키 사카이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번 포럼에 눈길을 끄는 주요한 특징중 하나는 국제적인 모임이나 학회하면 미국중심으로 구성되기 마련인 일반적인 통념을 깬 ‘파격’이다. 영어권에서 참가한 작가 5명 가운데 순수한 미국작가는 개리 스나이더 1명에 그치고 있고 그마저도 미국 중심의 문학이 아닌 동아시아와 자연, 선불교에 심취되어 있는 ‘동양적’인 시인이다. 한편으로는 참가작가 가운데 상당수 작가들은 망명이나 내전 등의 이유로 2개 이상의 문화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어서 ‘경계를 넘어 글쓰기’에 대한 한층 깊이있는 이야기와 교류가 기대되었고 실제 가능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 한국측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평론가, 학자 56명이 참여했다. 유종호 김종길 정현종 황동규 김우창 김원일 황석영 황지우 이문열 박완서 서정인 김성곤 도정일(이상 발표순) 등이 발제를, 고은 이청준 김지하 홍기삼 최동호 윤흥길 김병익 김채원 이호철 최윤 최인석 신경숙 조정래 최수철 박상륭 반성완 최장집 고종석 오생근 이상옥 등이 토론과 사회자를 맡았다.
논의된 주제와 담론 또한 우리 문학계의 시야를 넓히고 논의의 틀을 확대시키는데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경계를 넘어 글쓰기 - 다문화세계 속에서의 문학 Writing Across Boundaries : Litreature in the Multicultural World"을 대주제로 하여 ‘세계화와 문학’ ‘작가와 글쓰기’ ‘자연, 시, 동아시아의 전통’ ‘대중문화사회의 시인’ ‘세계시장경제체제에서의 글쓰기’ ‘분쟁 속의 작가’ ‘전환기의 글쓰기’ ‘포스트 식민지적 상황에서의 글쓰기’ ‘서구세계와 비서구세계의 작가’ 등은 우리에게 한정된 문제가 아닌 지구적 차원에서 당면한 매우 긴요한 논제들이었다.
행사의 규모와 구성에 있어서도 문학행사로서는 파격적이라 할만큼 크고 다양했다. 포럼이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와 컨퍼런스홀에서 3일동안 동시에 진행되었다. 교보빌딩 10층에서는 26일부터 29일까지 매일 오후 4시에 피에르 부르디외, 월레 소잉카, 이스마일 카다레, 개리 스나이더의 강연회와 작품낭독회가 열렸고 참가작가들은 서울대, 고려대, 서강대, 숙명여대, 외국어대, 단국대, 홍익대 등 주요대학에서 강연회나 세미나, 출판기념회 등을 가졌고 신문, 방송, 잡지 등과의 인터뷰, 좌담 등에 참석해 일반독자들과 직간접적으로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포럼장의 청중석이 각각 4백석과 2백석을 넘는 적지않은 장소였는데도 연일 주제마다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고 상당수의 청중은 서거나 바닥에 앉아 세계적인 문인과 석학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는 포럼실황에 5만여명이 넘게 접속한 점과 교보빌딩과 주요대학 등지에서 열린 작가별 행사 등에도 많은 청중들이 찾은 것은 문학에 대한 일반의 애정과 새로운 시대의 문학의 위상과 담론에 대한 갈증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번 포럼은 문학의 위기가 공공연히 논해지는 시대에, 나아가 문학의 죽음을 선언하기도 하는 시대에 울린 비장한 장송곡이 아닌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찾는 대서사극이라 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