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일본의 아쿠타카와 수상 작가인 나카가미 켄지(中上健次)는 1992년 사십대 중반의 아까운 나이에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70년대 후반부터 그와 남다른 친분관계를 맺어왔던 나로서는 그의 부음을 접하고 한동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도 한국을 좋아했고 일본 문화의 원류가 되는 한국 문화를 늘 괄목상대했으며 벽에 부닥친 일본 문학의 활로를 생동감 넘치는 한국 문학을 통해 찾으려 했던 그의 죽음은 일본 문단의 손실일 뿐만 아니라 나 개인에게도, 그리고 한일 양국의 문학교류를 위해서도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죽음 그 자체만이 내게 충격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후에 벌어진 추모 열기에 나는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신문과 방송, 잡지 등 각종 매체가 총동원되다시피 해서 일제히 요절 작가 나카가미 켄지의 추모 특집을 꾸미느라 한바탕 법석을 떠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도 특집에 수록할 추모의 글을 청탁하는 연락이 왔고 인터뷰 요청도 왔다. 나는 울면서 가까스로 추모의 글을 써 보낸 다음 지독한 상실감에 빠져 한동안 아무런 글도 쓰지 못했다.

일본열도를 휩쓰는 대규모의 추모 행사를 멀리서 지켜보면서 나는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내 친구 나카가미는 일본에서 훨씬 더 큰 존재였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아는 나카가미에 관한 정보는, 문단 연조로 보면 중견작가, 실력으로 보면 일본 소설문학의 장래를 짊어질 촉망받는 작가, 일본 문단의 반역아 등등의 평판 정도가 고작이었다.

나카가미 켄지에 대한 추모는 죽음 직후의 단발행사로 그치지 않았다. 그의 3주기를 전후해서 또다시 추모의 열기가 일본에 불어닥쳤다. 공영방송 NHK는 취재팀을 구성해서 2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그의 3주기에 맞추어 전국에 방영했다. 한 출판사는 그의 전기를 출판하기 위해 중견작가를 집필자로 선정해서 일본과 한국 각지로 장기간 취재여행을 떠나보냈다. 다른 한 출판사는 그의 3주기 기념으로 『中上健次』란 제목의 작가론 및 작품론집을 출간했다.

짧은 인터뷰를 위해 원거리를 마다 않고 차례로 찾아오는 방송 취재팀과 전기작가를 상대하는 동안 나는 솔직히 말해서 유명을 달리한 그 일본인 친구에게 부러움을 느꼈다. 그가 살아서 누렸던 영예보다 죽어서 누리는 영예가 훨씬 더 크고 값져 보이는 까닭이었다. 젊은 나이에 아깝게 세상을 떠난 한 작가에게 바쳐지는 일본인들의 뜨거운 사랑과 그가 작품으로 남긴 업적에 대한 일본 문단과 매스컴의 높은 평가와 열정을 쏟아 창작에 전념하느라 건강을 망쳐야만 했던 그의 생전의 노고를 지속적으로 기림으로써 그의 혼을 위로하는 일본 독자들의 문학 애호가 내 눈엔 예사로이 보이지가 않는 것이었다. 문득 우리나라의 경우에 생각이 미쳤다. 만약 나카가미 켄지 만한 나이의, 그만한 문단 연조의, 그만한 작품 이력의 한국 작가가 사망했을 경우 한국 문단과 매스컴에서는 그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처리할까.

요 몇 년 사이에 우리는 김동리와 황순원이라는 한국 문단의 두 거목을 차례로 잃었다. 원로작가로서 한국 문단에서 차지하는 두 분의 비중은 나카가미 켄지가 일본 문단에서 차지하는 그것에 결코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분 원로작가가 타계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보여준 추모행사는 어떠했던가. 규모와 형식과 내용 면에서 일본 중견작가의 그것과 도무지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단발성에 그친 짤막한 뉴스 또는 제자가 쓴 추모사를 싣는 것으로 추모 작업을 마감하는 형식이었다.

바로 그런 차이일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타고 못타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이 평상시에 문학을 얼마나 애호하고 일상의 삶 속에서 얼마나 문학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문학 수준은 결정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웃나라 일본은 문화적 선진국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은 문화적으로 선진국에 속할까, 후진국에 속할까.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나면 마치 배지도 않은 아이 빨리 안낳는다고 윽박지르듯 한국 작가들을 싸잡아 비난하곤 하던 그 관행이 사라진 것만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긴다. 큰 상이 받고 싶다고 받아지는 것이 아님을, 큰 상을 받으려면 큰 뒷받침이 따르는 것이 필연이라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뒤늦게 알아차린 것만도 그나마 큰 소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