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강형철_시인,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1955년생. 시집 『해망동 일기』 『야트막한 사랑』, 평론집 『발효의 시학』 등
충남 보령시에 있는 명천 이문구 선생의 생가를 찾아갔다가 생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었으며 거기에는 누군가가 2층의 양옥을 짓고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갈곳을 잃었다. 생가가 있던 곳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우부룩한 잡풀 너머로 발을 옮겼지만 내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명천이 어린 시절부터 특히 애착을 가졌었다는 등 굽은 소나무가 담장에 잇닿아 숲쪽으로 몸을 펼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2층으로 지어진 그 양옥의 담장이 쉽게 누구의 틈입도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또한 명천이 어린 시절 뛰놀았다는 집 뒤의 소나무 숲에서 나는 솔바람 소리 대신 길가를 오가며 어지럽게 일구는 자동차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집 앞에서 조금 떨어진 길가에서 간판을 내걸고 있는 몇 개의 가게가 보였고 멀리로는 서해의 갯벌이 포복하고 있을 강둑만이 보였다. 나를 안내한 안학수(아동문학가, 『박하사탕 반봉지』의 저자)씨는 그곳은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것이었고 대신 명천이 가끔 내려와 글을 쓰는 작업실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애초에 명천의 생가를 찾아 거기에서 지금의 명천이 쓰는 글의 원천을 찾아보고 느껴보겠다는 소박한 생각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내려가기 전에 명천으로부터 그곳에 가봐야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언덕길을 내려오며 나는 밭가에 뒹굴고 있는 호박덩굴과 그 밭가에 잎이 꺽인 채 가을을 견디고 있는 옥수숫대 몇을 보고 내려오면서 그 고장 한내문학회가 중심이 되어 세워둔 문학표지석을 읽었다.
이곳 관촌 마을은 윗갈머리(上冠村)와 아랫갈머리(下冠村) 중 아랫갈머리로서 연작소설 『관촌수필』의 무대이며 또한 저자 이문구 작가의 출생지이다. 마을 뒷산은 『관촌수필』에 나오는 부엉재이고 현 농지개량조합이 있는 곳은 왕소나무가 있었던 자리이다. 드넓은 농경지로 변한 마을 앞 철로 건너편은 조수가 드나들던 갯벌이었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소나무숲과 서독 언덕 위에 마을 처녀들이 그네를 뛰던 팽나무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 관촌마을의 토속적 향내를 달래주며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고 있다.
표지석을 설명하던 안씨는 이것도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고 한탄했다. 팽나무가 남아 있었다는 말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거짓말이 되고 말았으며 자신들이 조금만 힘이 있었으면 그렇게 무참히 사라져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쓸쓸히 웃었다. 개발의 이름으로 우리가 많은 기억과 추억들을 마구 버리는 곳이 어디 이곳 뿐이랴.
나는 마을 앞에까지 이어졌을 갯벌을 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 조개도 캐고 게도 잡았을 포구는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기사 누가 바닷물의 소금기를 제거할 것인가. 그렇지만 포구는 작은 수로처럼 좁아보였다. 군데군데 폐타이어가 쌓여 있었고 정박해둔 배가 마치 뻘밭에서 미끌어진 듯 고물을 바다쪽으로 기울인 채 밧줄에 목을 메고 있었다. 분명 저 뻘밭 어딘가에 명천이 어린 시절 뛰놀던 발자국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기우는 서해의 황혼 무렵 강둑에서 흔들리는 갈대를 바라보았다.
나는 안학수씨 부부의 안내를 받아 청라면 장산리에 있다는 작업실로 향했다. 승용차로 시내에서 약 20분 정도 더 가야하는 곳에 위치한 작업실은 남들이 보기에 그저 평범하다고 여길 정도의 스레트 지붕 단층 가옥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글을 쓰기에 참으로 안성마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를 끼고 돌아간 그곳에는 막 단풍이 나무마다 찾아가 깃들 곳을 묻고 있었고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문 철새가 다리를 옹종거리며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뭐라고 옹알대고 있었다.
안학수씨는 친절하게 나를 안내하면서 집 앞의 텃밭을 보여주었다. 콩을 털어낸 콩대가 널려있는 마당 한구석엔 농구골대가 서있었고 덤불이 쌓인 밭에는 애파(쪽파)가 심어져 있었다. 명천이 직접 심고 가꿨다는 애파는 서너 개의 밭두덕 중에 가운데 두덕에 심어져 있었는데 싹이 난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영양기라고는 전혀 없어보이는 척박한 땅에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그 모습은 묘한 감동을 주었고 문득 예전에 밥맛이 없을 때 가장 맛있는 밥은 날계란을 넣고 왜간장으로 비벼먹었던 밥이었다는 기억이 났다. 물론 그 간장에는 고춧가루도 조금 넣고 깨소금도 빻아 넣은 뒤 바로 저 애파를 뽑아다 으밀으밀 썰어 넣은 것이었다.
명천이 이곳에 와서 구식 워드프로세서의 자판을 두드리다가 틈이 나면 가꾼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문 옆에 걸려있는 호미나 삽이 낯설지 않았다. 그곳에서 안씨 부부는 커피를 한잔 내왔고 나는 방안을 돌아볼 수 있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방과는 달리 화장실에는 따다놓은 은행이 양동이에 담겨있는가 하면 간단한 살림살이가 널려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따지 않은 감이 몇 개 하늘에 걸쳐 있었고 호두나무는 벌래먹은 잎을 엄부렁하게 늘인 채 담밖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당 한구석에 몇 가지 나무들이 서 있었다. 나는 그 나무를 보다가 명천이 최근 펴낸 소설집을 떠올렸다.
충청도 방언이 그득하여서 쉽게 읽기가 어렵지만 그것은 눈으로 읽을 때의 이야기이고 충청도 억양과 톤으로 천천히 소리내서 읽다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현장이 되어버리는 책,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온 삶의 세계가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종합 예술관 같은 책을 떠올린다. 그 책은 사람들과 자연들이 따로 놀지 않고 삶의 세계 앞에서 서로 맞절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등장하는 사람들 또한 거창하게 행동하고 있지 않지만 세상사의 잇속과 이치를 그 안창까지 꿰뚫고 있어서 우리의 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웃음을 자아내는 그야말로 의뭉스런 희비극을 연출하고 있었다. 책에서는 나무와 사람이 하나였다. 또한 그 나무들은 이른바 재목감의 나무가 아니었다. 우리의 산하 어느 곳에서나 뒹굴고 나자빠져 있고 때로는 기어오르는 열매를 맺더라도 작거나 상품이 될 수 없는 열매를 맺고 있었다.
바로 그런 나무들의 실체를, 한반도를 관통한 역사와 거기서 생겨난 개인의 비극적 삶, 그리고 오늘 우리네 민중이 살고 있는 삶의 한 상징으로 찾아낸 명천이 오래 가슴에 품었던 나무들을 나는 뚫어지게 바라보았지만 내겐 그저 하찮은 나무일 뿐이었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나는 아직 문학의 초입에도 못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다는 말 대신 안씨 부부에게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