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청호_소설가. 1967년생. 소설 『단 한 편의 연애소설』 『소년 소녀를 만나다』 등
구제금융 시대가 시작된 1997년 말 나 역시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출판사가 아사 직전에 돌입한 것이다. 나는 친구들과 회사의 부채를 나누어 맡는 것으로 하고 일에서 손을 뗐다. 가끔 은행에서도 전화가 왔다. 빚을 갚기는커녕 신용카드 결재대금조차 갚기 힘든 상황이었다. 포부를 가지고 새로 시작한 사업이 망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나라 전체가 도산할 판인 바에야 내게 닥친 일은 그저 개인의 불행일 뿐이었다. 아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뼈에 사무치도록 절실히 느껴지게 된 것이다. 한국인으로 살기. 참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구제금융은 우리의 의식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저 열심히 일하면 보답을 받겠거니 생각하며 다니는 직장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며 묵묵히 일하던 사람들에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늘 돕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한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생전처음 경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경제라는 놈이 단순히 자가 발전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권력의 힘에 의해 조정된다는 사실도 뒤늦게서야 피부로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은행에는 돈이 가득한데 나라 전체는 부도가 나는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방구석에 처박혀서 이 구제금융이 빨리 끝나기를 빌었다. 동시에 이 시기가 내 인생에 없는 시간이기를 완전히 단절된 지워진 시간이기를 꿈꿨다. 그래서 쓰여진 것이 「Time DMZ」였다. 그것이 갱스터스 파라다이스의 첫 번째 연작이었다. 그 다음 나는 역사의 단절 상태 즉 DMZ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고, 본격적으로 DMZ 시리즈를 쓰기 시작하였다. DMZ와 DMZ에 대한 젊은이들의 생각과 행동들을 작품으로 쓰고자 했던 것이다.
미국에 공황이 왔던 20년대 후반 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화 「대부」에서 나오는 마피아도 아마 이때쯤 생겨났을 것이다. 나는 범죄집단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정부나 정치집단과 대결하는 대항세력이라면 대환영이다. 마피아는 밀주를 만들어 팔았다. 밀주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왜냐하면 술이란 일반 서민들도 즐기는 일상적인 음식(?)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술을 금지했는데 마피아는 술을 몰래 만들어 팔았다. 물론 범죄지만 사람들의 식생활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으며 동시에 정부의 시책에 반발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성과가 있다. 하지만 마피아가 마약에 손을 대면서부터는 일반인들과의 괴리감이 더 커졌다. 마약은 음식도 아니고 마약 판매가 마약을 금지하는 정부에 대항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약 거래는 말 그대로 범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갱스터스 파라다이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갱노릇을 해서 DMZ를 통째로 사겠다는 황당한 꿈을 꾸고 있다. 그들은 급기야 한국은행을 턴다. 한국은행은 국가의 부의 상징이다. 이는 DMZ가 분단현실이자 이데올로기와 역사의 상징인 것과 같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통일을 위한 뒷거래 역시 경제적인 논리로만 진행되고 있다. 역사야 어찌됐든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니까 남북의 정상이 만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DMZ엔 곧 호텔이 들어서고 놀이동산이 만들어지고 사파리 관광이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할 무렵인 97년 후반에는 이렇게 빨리 현실이 바뀌리라고 생각지 못했었다. 그래서 오히려 역사나 이데올로기에 똥침을 찌르고 싶었는데 이제와 생각하면 오히려 막돼먹은 경제논리에 따귀를 갈겨주고 싶다. 역사적인 깊은 이해 없이 지나치게 현실적인 경제논리로 DMZ를 훼손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DMZ는 현재의 모습으로, 지뢰나 수류탄이 굴러다니고 들짐승들이 뛰어다니다 불꽃놀이를 하게 되더라도 그냥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으로 오래도록 보존되었으면 한다. 나의 꿈이 너무 허황된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