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세계화”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지 벌써 예닐곱 해가 지났다. 도대체 세계화가 어쩌자는 것이냐를 놓고 열띤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참뜻은 늘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나 그 세계화라는 것이 우리에게 아주 쓴맛을 보여주었으니, 이른바 1997년의 외환 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아주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는 세계화의 참뜻을 익히기도 전에 그 쓴맛부터 보게 된 것이다. 이 외환 위기의 본질적 성격을 나 같은 문외한이 전문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재정금융 체제가, 그 국민의 의도나 소망과는 관계없이, 세계적 차원의 경제 질서의 일부로 편입될 수밖에 없는 오늘날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큰 낭패를 보고 혹심한 고초를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세계화의 기능 혹은 그 역기능이 경제 체제에서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정치나 외교도 범세계적 질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고 한 민족의 문화 또한 그 예외일 수 없다. 특히 이른바 정보화 시대를 맞아 상품화된 외래 문화가 밀물처럼 우리에게 몰려오고 있다. 이런 문화적 공세가 경제력을 편승할 경우에는 그 영향이 막강할 것이고 그런 공세를 당하는 쪽의 정신적 곤혹 혹은 피해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지는 모르나, 경제적 피해에 못지 않게 클 것이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우리의 문화적 대응이 경제적 대응에 비해 못지 않게 절실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화적 대응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물론 우리 자신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찾아 확립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 문화의 발굴과 개발이 필요하고 그 문화의 향유를 일반화하기 위한 사회적 지원도 필요할 것이다. 이런 노력은 해외로부터의 문화적 공세에 대처하는 하나의 필요조건임에 틀림없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세계화 시대에 경제적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이 해외 진출을 해야 하는 것처럼 문화적으로 해외 진출이 가능해야 비로소 세계화의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가 될 수 있다는 논리는 이 경우에도 어지간히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문화의 해외 진출에는 미술, 음악, 연극, 무용, 문학 등 문화의 모든 부문이 망라되어야 할 것이다. 이 중의 어느 한 분야가 다른 분야보다 더 중요하다든지 덜 시급하다든지 할 수는 없다. 다만 문학의 경우는 다른 문화예술의 분야와 비교할 때 그 해외 진출의 형태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 문학이 언어를 매체로 삼을 뿐더러 책이라는 형태를 빌려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얼른 보기에 문학의 해외 진출을 수월하게 해줄 듯하지만 실은 그 반대이다. 왜냐하면 번역이라는 필수적인 관문을 거치지 않고는 한 언어권의 문학 작품이 타 언어권의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러시아인의 심성과 영혼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체홉을 읽는 것이 차이코프스키를 듣고 샤갈을 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이처럼 한 민족의 문학이 타민족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은 크지만, 제정 러시아나 소비에트 러시아의 당국자들이 자기네 작가들의 해외 선양을 위해 돈을 쓰지는 않았다. 그 문학의 수요자인 우리가 자발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와 체홉을 번역․출판해서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도스토예프스키가 없고 괴테나 셰익스피어가 없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다. 유감스러운 것이 있다면 우리의 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아주 박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문학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지원은 어떤 형태의 것이든 늘 바람직하고 또 값지고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과 지원의 소산인 박완서의 영역 단편집 『A Sketch of the Fading Sun』(White Pine Press, 1999)은 우리의 환영을 받아 마땅하다. 한국인의 한과 정서를 감동적으로 그려내면서 리얼하고 생동감 있는 필치를 거침없이 구사할 수 있는 작가가 박완서말고 몇이나 더 있을까? 이 단편집의 번역이 현재 리-샐리라는 훌륭한 번역가의 손을 빌려 이루어졌다는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 문학 번역 진용의 층이 그리 두텁지 못한 영어권에서 그녀야말로 몇 분되지 않는 믿음직한 번역가들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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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육지 사이에 낀 바다는 강 너비밖에 안돼 꼭 한강 이쪽에서 저쪽을 바라보는 정도의 거리감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거기가 갈 수 없는 고향땅 개풍군이라고 생각하면 그 지호지간(指呼之間)은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거기가 오빠의 무덤, 어머니의 상처라고 생각하면 그 바다의 너비는 가이없었다. 당신 딴에는 자제하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어머니는 적어도 1년에 두세 번은 잇집네를 다녀오고야 말았다. 그 목적이 순전히 뒷동산에 올라 그 바다와 그 바다 건너를 하염없이 바라보고자 함이라니. 지친 듯 나른한 목소리로 「에그 독종들, 에그 독종들」 하고 중얼거릴 적도 있었다. 누구더러 그러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인두겁 쓴 건 다 독해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땐 아이들까지도 뜨악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으니까. (「엄마의 말뚝 3」(세계사 전집 제 7권), p. 118)

"Since the span of the sea between the land and the island appeared to be no more than the width of a river, it gave one a sense of the limited distance between himself and the opposite side, across the Han River. When I realized that across this short stretch of water, only a beckoning away, where we were not allowed to set foot, lay Gaepoong-kun, my home town, I'd be covered with goosebumps. But the distance appeared to be boundless when I thought of that place as the site of my brother's grave and Mother's pain. I sensed that Mother was trying to abstain from visiting the Yee's too often; yet, she visited there at least two or three times a year. The sole purpose of her visits, I found, was to reminisce by the sea and gaze from the hill behind the house over the horizon to the land which lay beyond.

Mother used to mutter in a low tone of voice, "You heartless ones, you unflinching ones!" as if she were totally defeated. It was unclear to exactly whom she was addressing these remarks. Everyone may have seemed hardhearted to her. Even her great-grandchildren looked at Mother with quizzical eyes whenever she mumbled this phrase. (『A Sketch of the Fading Sun』, pp. 188～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