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오늘날 문학비평은 여러 종류의 지식활동들 가운데서도 가장 문제적인 또는 주목받는 분야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어째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생각건대 문학비평은 각 분과의 학문들에서 발생한 사상적 조류와 방법론들이 가장 첨예하게 접전을 벌이는 격전장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니체와 훗설, 프로이트와 소쉬르를 발원지로 하는 이론의 물길 뿐만 아니라 근년의 페미니즘과 생태주의도 자기 고유의 영역을 넘어서 비평적 글쓰기의 영역을 주요한 활동무대로 삼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문학비평은 예전처럼 막연하게 문학을 좋아하고 독서를 취미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할 수조차 없는 극히 전문적인 분야로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한편으로 아주 그로테스크한 상황을 연출한다. 왜냐하면 문학이론 내지 비평의 이름으로 문학이 다양하고 철저하게 설명되면 될수록 오히려 문학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난날 우리는 문학이 ‘인생의 거울’이라는 명제를 믿은 적이 있었다. 오늘의 포스트모던한 현실 속에서 이 명제는 아주 진부해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문학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기도 하다. 어떻든 해체주의적 사유의 첫걸음만 익힌 사람도 전통적인 격언적 명제들의 허점과 불완전성을 간단하게 폭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문학이 인생의 거울이라는 명제는 비록 디지탈적 분석을 견뎌낼 수 없을 만큼 소박한 것이라 하더라도 아날로그적 수준에서는 문학에 관한 일정한 인식을 제공한다. 이에 비해 현대비평의 문학에 관한 대안적 인식은 극히 불투명하고, 심지어 인식가능성 자체를 부인한다. 표현방식이 알아듣기 쉬울수록 그리고 거기 담겨진 서술내용이 진리에 가까울수록 좋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인데, 이런 상식에 반하여 현대비평은 까다로운 개념구사와 복잡한 논리구성에 의해 한없이 어렵게 느껴지면서도 그 어려움의 장벽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이 판단정지 또는 불가지론 같은 공허함 뿐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관한 공연한 요란함(much ado about nothing)’의 기만극 같다는 말이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는데, 현대비평의 이와 같은 딜레마를 염두에 두고 오생근 교수의 최신 평론집 『그리움으로 짓는 문학의 집』을 읽어 보면 그의 책은 비록 현대비평의 핵심적 난관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도대체 그러한 돌파의 가능성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해야겠지만) 현대비평의 폐해에 오염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무엇보다도 그의 글에서 감지되는 것은 문학에 대한 애정과 작가들에 대한 옹호적 태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들이 그의 앞선 평론집 제목들(『삶을 위한 비평』『현실의 논리와 비평』 등)에도 나타난 바 삶과 현실에 대한 적절한 관심과 결합함으로써 그의 비평은 극단과 편향에 치우치지 않은 온건함을 실현한다.

그러나 그의 글의 온건한 외관이 결코 절충주의나 미온적 태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책의 머리말에서 오생근 교수는 “문학은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아버지의 세계에서 어머니의 언어를 추구하는 행위이다”라고 규정하고 나서 그 말을 다시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규율의 세계에서 자유롭고 진정한 것, 인간적인 것을 꿈꾸고 그리워하는 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인간의 자유와 삶의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언어적 활동으로서의 문학은 오늘날 사실상 그 존립의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 문학에 적대적이었던 것이 지난날에는 봉건적인 억압체제이기도 했고 제국주의의 침략이기도 했으며 한때는 군사독재이기도 했다. 요컨데 외부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은 문학적 추구의 목표 자체가 와해되거나 희화화됨으로써 진정한 글쓰기의 정신적 기반이 근본적으로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생근 교수의 온건함은 타협주의와 반대되는 지적 치열성의 반영이라고 보여진다.

이 책의 제 1부는 일반론에 가까운 내용이다. 여기서 저자는 ‘집’ 또는 육체라는 이미지를 매개로 현대 사회의 왜곡된 욕망과 인간상실의 현실을 진단한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그는 보들레르, 김수영, 김광규의 시들을 분석함으로써 현대성의 경험과 거기에 내재된 모순을 밝히고자 한다.

제 4부는 말하자면 문학이론 내지 비평방법론에 대한 서평 형식의 검토이다. 계발적인 내용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명환 교수의 『문학을 찾아서』 서평의 모두에 있는 언급(“외국문학을 왜 공부하는가? 외국문학 연구는 우리 사회와 문학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가? … 상황이나 분위기가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외국문학 연구자는 늘 자신의 일에 대한 회의와 반성에 빠지기 쉽다”)이 좀더 일관성 있게 논의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의 비평적 능력과 문장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시인과 소설가들의 세계를 따뜻한 눈으로 그러나 치밀한 논리로 분석한 제 2부와 제 3부이다. 제 1부와 제 4부에서의 이론비평적 불충분성이 이 실천비평적 부분에서 보상되고도 남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오생근 교수의 이번 평론집은 오늘의 한국비평이 도달해 있는 하나의 수준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현대비평이 처해 있는 이론적 곤경을 암시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