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이윤기의 소설집 『두물머리』에는 「오리와 인간」, 「두물머리」를 포함해 13편의 중단편소설이 묶여있다. 분량으로 보아 1,2위을 다투는 「진홍글씨」와 「울도 담도 없는 집」이 첫머리와 끝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이것 저것 다 정리하고 양수리(두물머리)같은 서울 근교에서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번 쯤 갖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를 안겨 주는 단편 「두물머리」를 표제작으로 취한 데는 고유어로 된 지명에서 쉽게 ‘낯설게 하기’가 올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에서 비롯되었든 그의 작품들은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근자의 어느 작가의 어떤 소설들보다 분명하게 살려 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특히 「진홍글씨」, 「세 동무」, 「오리와 인간」, 「울도 담도 없는 집」 등이 잘 일러 주고 있는 것처럼 독자들이 다음 장면이나 사건을 예측할 수 있게 허용하지 않으며 대강 읽고 스토리를 건져 내는 것으로 바르게 읽었다고 자신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는 작품 도처에 예기치 못한 것들이나 상상치 못한 것들을 심어 놓아 독자들을 계속 긴장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이윤기는 독자들을 긴장시키기 위해 소설을 쓴다. 독자들의 신경을 활시위 당기듯 팽팽하게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은 모든 작가들의 꿈일진대, 요즈음같이 잠재적 독자들이 보는 것도 많고 듣는 것도 많은 세상에서는 이러한 꿈을 제대로 현실에 옮겨 놓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윤기에게는 어떤 비법이 있어 그의 소설이 흥미진진하게 독자에게 다가 오게 되는 것일까, 또 이윤기에게는 어떠한 기운이 있어 그의 소설이 근원적 사고의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일까. 앞서 나온 소설집 「나비 넥타이」에서 이미 선보이고 있는 것처럼 이윤기의 소설쓰기는 ‘철학하기’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지식제공의도를 담고 있다. 특정존재나 현상에 대한 새로운 지식의 제공은 ‘철학하기’의 전략일 수도 있다. 새로운 지식은 새로운 인식으로 나갈 수 있음을 그는 실천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다. 「진홍글씨」에서는 아마존의 행태, 미국 유학생들의 생활방식, 일본의 큐슈단시, 교육학과 시뮬레이션 등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된다. 이런 지식들은 잘 연결되어 「진홍글씨」의 남성우월주의 비판의지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한다. 「세 동무」에서는 사찰의 구도, 사지(寺址), 부도, 대나무, 국화주 등에 대해 예사롭지 않은 지식을 안겨 준다. 때로는 쓸데 없는 박식자랑이라는 느낌이 안 드는 것도 아니지만 작중의 서술과 묘사는 풍부한 지식과 탐구욕을 근거로 하고 있어 힘이 넘치며 그만큼 설득력을 갖게 된다. 「오리와 인간」의 경우, 특정 분야의 박식보다는 청둥오리와 물오리의 생태에 대한 끈질긴 탐구욕이 동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탐구욕은 생존경쟁이니 개인과 집단의 대립이니 하는 문제를 새롭게 보게끔 안내한다. 「손가락」은 이윤기가 식물학적 지식도 풍부하고 또 식물에 대한 탐구심도 왕성함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좌우지간」을 통해서는 상례(喪禮)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이것저것 얻어 들을 수 있다. 이때의 상례에 대한 지식은 원칙론적 차원에서 제시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우를 설정해 놓고 그에 알맞는 상례가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것을 보여 주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서 이윤기는 이 작품의 끝을 좌우지간이니 지호지간이니 하는 말로 인생을 새롭게 규정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좌우지간이란 말에 이렇듯 심오한 철학을 담아 놓는 작가의 솜씨는 뛰어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함지산에 대한 지질학적 지식이 돋보이는 「숨은 그림찾기 3」은 「하얀 얼룩말」, 「손가락」, 「세 동무」처럼 어떤 것이 바로 보는 것이냐 또 무엇이 참이냐 하는 물음을 해결하려는 논리학을 감추어 놓고 있다. 그 논리학은 눈치가 어지간한 독자들이라면 쉽게 파 낼 수 있을 정도로 얕게 묻혀 있다. 이윤기는 이러한 논리학적 과제를 본격적인 관념소설이나 사상소설의 담론으로 추구하고 있지 않다. 그는 근본지(根本知)라든가 난문(難問)에 속하는 문제들은 부드러운 언술로 또는 쉬운 담론으로 풀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상식철학이나 생활철학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소설에서는 삶이란 무엇인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구하기보다는 그 답을 구해 내려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진홍글씨」, 「손가락」, 「울도 담도 없는 집」, 「세 동무」 등이 바로 그 장(場)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