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동호_평론가, 고려대 국문과 교수. 1948년생. 평론집 『현대시의 정신사』『불확정시대의 문 학』『삶의 깊이와 시적 상상』 등
9월 26일 ‘자연, 시, 동아시아 전통’에 관한 발표가 있었던 오후 2시부터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는 예상을 넘어선 많은 청중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로 인해 열기가 넘쳐, 여기서 한판 문학의 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얼굴이 익숙한 사람들도 있었고, 낯선 사람들도 있었으며, 젊은층에서부터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청중들이 계단과 복도에서 웅성거렸다.
사회자 이상섭 교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시작된 발표는 나이 때문인지 게리 스나이더의 사양으로 인해 김종길 교수부터 말문이 열렸다. 김 교수는 지난 몇 달간 공들여 준비한 탓인지 열정적인 목소리로 자연에 대한 동양적 의미를 서두로 말머리는 풀어나갔다. 서양의 미메시스(mimesis)와 다른 ‘인지(認知)’로서 동양의 시에 대한 개념적 차이를 설명하고 중국의 유종원의 한시 「강설(江雪)」, 일본의 바쇼(芭蕉)의 하이쿠 그리고 다시 왕유, 이백 등의 한시를 논하면서 정지용의 「구성동」이 ‘자연고묘(自然高妙)’의 경지에 달한 뛰어난 작품이며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소월의 「산유화」 등에 대해 한국인들의 자연 인식을 분석했다. 김소월의 「산유화」에 대해서는 자연시와 인간의 고독에 관해서 논하면서 자연에의 초월이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현대인의 좌절을 읊은 것이라는 종전에 들어보지 못한 견해를 피력했다.
첫 번째 질문자로 나선 김지하는 자연에의 은거와 반대편에 있는 유랑의 삶, 이동성을 중시하는 삶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며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자연이 이루는 가장 탁월한 관계를 찾는 것이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정재서는 동양은 시가, 서양은 서사 중심으로, 발표자가 분류했으나 동양의 경우 특히 중국의 경우에 당나라 이후 시가가 점점 쇠퇴하고 서사문학이 성행하였으며 서양의 경우도 고전시대에는 시가가 부흥하다 이후에는 서사문학이 성행했다는 중요한 쟁점을 제시했다. 최동호는 소월의 「산유화」가 자연에의 초월이 좌절된 현대인의 고독을 읊은 것이라면 자연과 인간이란 관점에서 이를 한국 현대시사에서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유종원의 「강설」에서 ‘눈을 낚는다’는 해석이 ‘낚시를 드리운다’에 비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질문했다. 마지막 질문자 홍기삼은 자연시를 언급하면서 발표자가 이미지즘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근대적 경험의 산물인 현대시와 그 이전의 산물인 바쇼나 유종원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의문점으로 제시하였다.
두 번째 발표자 스나이더는 「산중에 숨은 산들」을 통해 한국인들로서는 낯선 일본의 선사 도겐(道元)의 사상에 나타난 생태학의 정신이 현대의 위기에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스나이더의 수상집 『야생의 실천』과 장시 「끝없는 산과 강」에서 발췌된 발표문은 스나이더가 동양에 대해 느꼈던 것처럼 청중들의 서양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한 것이었다.
특히 일본에서의 선(禪) 수업과정, 그리고 그가 태어난 북아메리카 서부지역에서의 자연 체험들은 그로 하여금 자연에 귀기울이게 하였고 동양에 발길을 돌리게 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발표는 학술적이라기보다는 솔직한 자기고백과 같이 들려왔다. 그의 발표는 동시통역으로 진행되었는데, 소박한 어투지만 울림이 강한 그의 영어 발음들은 음악적 물결을 타고 청중들에게 전해졌다.
김지하는 이에 대해 유불선 사상과는 다른 독특한 풍류, 자연사상을 가진 한국의 선시와 한국의 자연사상에 대한 발견이 필요하다고 아쉬움을 표했으며, 정재서는 스나이더가 공자의 인문주의를 비판하였으나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말한 바 있는 공자의 인문주의는 서구의 인문주의와 차별되는 것인데 이에 대한 발표자의 견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최동호는 발표자가 말한 야성(wildness)에는 문명에 대비된 개념, 즉 문명이 전제된 것처럼 쓰이는데 이는 동양에서 말하는 ‘자연(自然)’과는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야성과 무성(no Nature)을 구분함으로써 말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홍기삼은 발표자가 잠자리와 물고기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의 관점에 묶이지 말 것을 경고하였는데 이러한 잠자리와 물고기의 마음을 다 아는 듯한 도겐의 발언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교만을 느끼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의인화 방법은 그 자체가 인간 중심주의적이며 의인화의 오류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오히려 반성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다섯 시간 가까이 진행된 발표와 질의가 계속되는 동안 장내는 팽만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장의 해결책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생태학적 위기, 그리고 문학의 위기를 모색하고자 하는 청중들의 관심이 집중된 근자에 드문 국제적 문학포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