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안치운_연극평론가. 1956년생. 평론집 『공연예술과 실제비평』 『연극제도와 연극읽기』 등
1.
나는 이번 청소년 연극제 본선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우면산 자락,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흘 동안 2시, 6시 공연을 보았다. 그동안 전국에서 참여한 320개 고등학교 연극반 가운데에서 뽑힌 각 지역 18개 고등학교의 공연이 그곳을 수놓고 있었다. 심사위원은 행복한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이었다. 객석 맨 가운데, 심사위원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 자리에 앉는 순간 심사위원들은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들의 말투, 생각, 움직임, 소리, 꿈과 좌절, 옷과 머리모양 등을 통째로 볼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과 그들 사이에는 긴 시간의 차이가 놓여있었지만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말하는 방식은 ‘연극’이었다. 허구를 빌려 실제를 말하는 것, 약속된 시간, 정해진 공간에서 제 맘대로, 제 뜻대로 뜻을 펼치는 것, 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제 몸뚱어리, 제 말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연극은 지역, 나이, 문화의 차이를 가로지르는 가장 오래된 소통과 표현 방식이 아닌가. 미디어의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이 아픔을 주는 시대에 젊은 학생들이 연극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고귀하고 아름다웠다. 그들과 그들의 연극이 모여 아름다운 축제를 이루었다. 심사위원으로서 예선과 본선에 참여한 학생들과 학교선생님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2.
본선에 참여한 고등학교 연극반의 희곡은 대부분 우리나라 희곡이었다. 강원 북평여고가 몰리에르의 희곡, 울산 생활과학고가 각색을 한 외국 작품을 공연했다. 이번 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광주 살레시오여고의 작품 「만선」과 우수상을 받은 전남 목포 혜인여고의 작품 「작은 할머니」를 예로 들어, 이번 연극제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심사위윈들의 만장일치로 대상과 우수상을 받은 이 작품은 고등학교 연극의 미덕을 두루 담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여자 고등학교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공통적으로 무대 공간을 잘 활용했다. 「만선」은 주된 무대장치인 집을 정면이 아니라 약간 비스듬히 세워 무대 왼쪽과 오른쪽의 분할을 달리했고, 「작은 할머니」는 소품을 적절하게 사용했고, 의상과 조명이 잘 어울렸고, 무대 활용도 경제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두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은 우리말을 분명하게 발음했고, 말하는 것과 몸의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 점이 매우 훌륭한 데, 이는 반복되는 연극연습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품에 몰입하는 겸손한 태도에 힘입은 것이라고 심사위원들은 판단했다. 연극을 통한 타자와 삶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자신의 성숙, 사유의 표현인 말과 몸짓의 단련이야말로 청소년 연극이 지녀야 할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두 작품은 이 점을 두루 지녔기 때문에 큰상을 받게 되었다.
뒤집어 말하면, 몇몇 작품들은 배우들의 말하기가 서투르기 그지없었고, 혈기왕성함, 발랄함이 지나쳐 날 것의 거친 표현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언어가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언어의 혼탁은 곧 청소년들의 고된 일상의 삶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우리는 그 점이 매우 안타까웠고, 연극을 통해서 그들이 자신들의 말과 몸짓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3.
내년에도 청소년 연극제는 계속된다. 참가하는 고등학교가 더 늘어날 것이고, 그 만큼 고등학생들의 연극에 대한 열정은 커져서 우열을 가늠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심사위원을 맡은 입장에서 몇 가지 덧붙이고 싶다. 첫 번째는 희곡에 대한 것으로, 우리나라 고전희곡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고전희곡을 통해서 말과 글이 하나로 어울리는 표현의 정수들을 많이 경험하기 바란다. 두 번째는 우리말을 정확하게 발음하고 희곡에 담긴 말들의 수사(修辭)를 공부하기를 바란다. 희곡 속의 말들은 삶의 통찰력을 지녔다. 연극하는 행위는 언어와 몸짓을 가지고 삶과 세상을 드러내는 일이다. 연극의 미숙함과 남루함은 규모가 아니라 허튼 말과 행동 그리고 성찰의 가벼움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