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어 글쓰기 - 다문화세계 속에서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3일에 걸친 빡빡한 발제와 토론,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와 컨퍼런스홀을 가득 메운 청중들, 초청되어온 발표자들의 규모 등 대산문화재단의 이번 행사는 ‘국제적’이란 말에 어울릴 듯하다. 행사를 주관하는 주체답게 일단 국내의 발표자나 토론자가 영어나 불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동시통역의 수준도 나아진 듯하다.
그러나 영어와 불어가 통역어가 되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발표자들은 영어를 사용하였다는 점은 이 ‘국제문학포럼’의 서구중심성을 드러낸다(예산상의 문제 등 복잡한 문제들이 있었겠지만). 그리고 이 서구중심성은 주제 선정에서도 드러난다. ‘서구세계와 비서구세계에서의 글쓰기’라는 주제하에 두개의 분과가 열렸지만 서구의 헤게모니를 그대로 드러내는 ‘비서구’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었던 것같다.
영화와 대중의 만남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다양한 영화제를 다녀보면서 필자는 문학이 대중과 만나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었는데 이번 행사는 문학이 대중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자리였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문학도 ‘세계화’ ‘지구화’와 무관하지 않으며, 문학을 통한 ‘세계화/지구화’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연대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청중과 만나는 자리는 자리였지만 좀 더 진실되게 만나기 위해서는 후속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소잉카, 부르디외 등 몇명의 연사와의 다른 자리가 마련되었었지만 국내에 온 발표자들을 우리 문화계가 좀 더 활용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와서 활발한 토론이 가능해지려면 소수의 대학에서 마련한 자리 말고도 더 분화된 토론과 만남의 자리가 마련되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언론의 활용도 미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참여한 분과에 대해 말해본다면 다른 분과와 다른 점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주제였고 다른 하나는 참여구성원들의 성별이었다. ‘탈식민지적 상황에서의 글쓰기’라는 주제하에 발표자인 마가렛 드레블, 박완서 선생님 토론자인 최영 선생님, 필자 그리고 사회자 이영옥 선생님 모두 여성이었다. 전반적으로 이번 행사도 발표자의 성비, 그리고 발표 주제와 내용면에서 남성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남성/여성의 노동의 분화현상(남성발표자와 여성통역사)도 보여준 것을 생각하면 필자가 참여한 세션은 하나의 섬이었다. 필자가 참여한 분과의 주제가 여성/성이 아님에도 여성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였다. 아마 마가렛 드레블, 박완서 두분 소설가는 여성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쓰셨고, 많은 관심을 보여오신 분들이기 때문이리라 짐작해 본다.
그러나 이번 발제에서는 젠더의 문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식민지인으로서의 경험에 초점을 두신 박완서 선생님의 발표에서는 이중언어의 문제와, 지배국의 언어가 식민통치가 끝난 후에도 갖는 힘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드레블 선생님은 탈식민주의가 작품들을 발굴해 내었지만 탈식민주의 자체가 하나의 유행일 수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니까 도덕적 임무와 상업적 시류를 타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으며, 과거의 제국이 현재의 식민지가 되기도 하고 그 역이 될 수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니 작가는 그 어떤 유행에도 흔들리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면 된다고 말했다.
과연 작가의 진실이란 무엇일까? 최영 선생님이 제기한 국적을 넘어선 글쓰기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과 여성과 제국/식민의 관계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대해 두분 작가는 ‘작가의 진실’을 주장하셨다. 거기에 페미니즘같은 어떤 이즘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폭력적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작가가 진실을 전달하려는 전달자라면 이제 그 진실은 누구의 진실인가를 물어야 된다. 작가 자신의 진실이라고 말한다면 그 작가의 눈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느냐는 것은 문제가 된다. 이전에 제국과 식민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 작가들이 많듯이 현재도 그럴 수 있다는 전제를 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의식을 중요시 해온 이유가 무엇인가? 작가가 어떤 의식, 특히 어떤 역사의식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여성/남성의 문제를 포함한) 진실을 말하는 것과 탈식민에 관한 발제에서 제국과 여성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발제를 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소설가와 발제자의 간극인가? 제국/식민과 인간은 관계가 있지만 여성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생각의 발로인가? 소설과 그 소설가의 인식을 표현하는 발제문과는 무관할 것인가? 두 분 소설가가 여성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제국/식민과 여성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그런 소설을 쓰시기를 바라고 또 다른 소설가들이 이 대열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는 이러한 질문들을 제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