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제 1세션인 ‘세계화와 문학’에서는 나이지리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에모리대 석좌교수)와 평론가 유종호(연세대 석좌교수)가 기조발제를 맡아 각각 “정전(正典) 개방”과 “세계화 시대의 문학”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서울 국제문학포럼의 시작을 선언했다. 사실 정전문제와 세계화 문제는 포럼의 전체주제인 ‘경계를 넘어 글쓰기 : 다문화 시대의 문학’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 가장 적절한 논의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어서, 시, 소설, 평론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중후한 작가들이 맡았던 제1분과의 발표와 논의는 포럼 참석자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다.

우선 소잉카 선생은 정전과 관련된 진정한 문제는 고전이나 성스러운 문학 텍스트와 관련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존 세력의 권위와 그 권위를 거부하는 창조적 의지 사이의 부단한 투쟁에 있다고 지적했다. 즉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정전 그 자체가 아니라, 정전과 금서목록을 만드는 교리문답적 태도, 또는 소잉카가 “비난과 배제와 검열의 정전”이라고 부르는 배타적 태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잉카는 이제 모든 분야에서 서구 중심으로 만들어진 폐쇄된 정전을 열어놓고, 그 동안 제외되어온 비서구의 비정전 텍스트들도 조명하고 포함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측 발제자인 유종호 선생은 고도의 경제성장과 극단적 상업주의, 그리고 향락적 소비주의와 찰나적 감각주의로 인해 속절없이 밀려나고 있는 문학과 인문학이 겪고있는 위기에 대해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과거의 경제성장 신화는 우리 민족의 진정한 정신적 신화를 밀어내었고, 최근의 세계화 물결은 우리의 고유문화 및 문학의 보존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유종호 선생은 인문학과 문학 고전의 중요성과 가치를 역설했는데,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수준 높은 고급문화를 창출하는 문학에 대한 그의 그러한 신념은 청중석의 문학도들과 작가들에게 큰 희망과 격려가 되었다.

토론자로 나선 소설가 이청준(순천대 석좌교수) 선생은 유종호 선생의 그러한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불러올 수도 있을 오해를 간과하지 않았다. 예컨대 이청준 선생은,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유종호 교수의 견해가 자칫 정전의 옹호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대중문화와 전자매체에 의한 “문학개념의 해체”에 대한 유교수의 우려도 자칫 전통 문학의 폐쇄적․배타적 권력의 수호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작가로서 이청준 선생은 문학 내부에 정전을 재구성하는 “해방의 정전”과 “꿈의 정전”의 개발을 주창했다. 왜냐하면 모든 정전에는 지배문화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담겨있고, 문학이란 궁극적으로 모든 억압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해방의 공간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토론자로 나온 시인 고은 선생은 동양의 고전이나 경전들이 그 동안 서구인들에게 이국적 호기심 이상이 되지 못했다며, 이제는 소잉카의 말대로 정전들은 타자를 배제하지 말고 다른 정전들과 동거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고은 선생은, 소잉카의 발제는 마치 전방위적인 서사시와도 같았고, 유종호 교수의 발제는 문학의 기본적인 옹호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그 두 발제의 차이들이 서로 대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은 선생은 두 발제자들의 정전 논의와 문학 위기론이 궁극적으로는 한가지로 결합되고 조화되는 절박하고 중요한 당면과제라고 말함으로써, 두 발제자의 발표를 멋지게 하나로 통합해주었다.

지금은 정전의 경계도, 또 민족국가(nation-state)의 경계도 급속도로 해체되어가고 있으며, 동시에 모든 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열려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 때 어떻게 하면 해체된 정전과 경계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해서 진정한 “해방과 꿈”의 정전을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인가? 제 1세션에서 발표하고 토론한 네 사람의 작가들 - 소잉카, 유종호, 고은, 이청준 - 은 모두 이 시대에 우리가 당면한 바로 그러한 핵심적인 문제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제기했으며, 그 해결책과 전망을 탐색함으로써 모두 9개의 분과로 나누어 사흘동안 계속되는 서울 국제문학 포럼의 서막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