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이면 과수원에 하얀 귤꽃이 장관이겠지요. 시퍼런 바다가 무릎을 잠길 듯 다가와 있는 곳. 등 뒤로는 사철 푸르른 한라산이 떡 버티고 앉아 옹골찬 어깨로 당신의 무덤을 감싸고 있을 거예요. 머지않아 당신의 세 번째 기일입니다. 세월이란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가와선 한 순간 타는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며 사라진답니다. 당신의 흔적도 세월과 함께 차츰 바래져 가겠지요. 무서운 게 사람의 기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을 떠나보내고 첫 기일도 넘기지 못하고 저는 새 삶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답니다. 내가 선택한 남자 그리고 그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기 모두 당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니 당신이 남긴 사진 몇 장으로 어렴풋이 장인의 얼굴은 알겠지만 그뿐 장모 곁에 앉아 생생한 목소리로 안부를 묻는 장인어른은 상상하지 못할 겁니다. 그에게 당신은 평생 사진 속 초로의 남자이거나 과수원 한 귀퉁이에 쓸쓸한 무덤의 주인으로밖에 기억되지 않겠지요. 갓 돌을 맞는 내 딸아이 역시 말입니다.
객지 생활 10년째. 저는 당신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가족을 감싸안을 든든한 어깨를 가지시지 못했어요. 당신은 늘 그늘 같은 존재였어요. 그렇다고 당신의 존재를 가족을 위한 당신의 성실성을 쉬이 부정하지는 못합니다. 당신 덕분에 5남매 모두 남한테 미운 소리 듣지 않는 사람들로 자라났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의 흔적이 5남매 사이에 고스란히 살아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1년에 한두번쯤 출가한 자식 내외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어김없이 술상이 차려지고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 만취한 주당들 사이로 당신의 불안과 우울을 봅니다. 누구보다도 근면하셨던 분, 내성적이면서 다소 신경질이 묻어있는 표정을 짓곤 하셨던 분, 애주가이면서 술집에서는 술 한병 마음놓고 마시지 못했던 분…
가로수의 가지를 치는 미화원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당신을 추억한답니다. 뒤늦게 과수원을 시작하신 당신은 귤나무에 온갖 정성을 들이셨죠. 때문에 저희들은 휴일마다 과수원에 나갈 수 밖에 없었구요. 무슨 일이든 배워 놓으면 세상 살아가면서 꼭 쓰일 때가 있다셨던 당신. 농사는커녕 시골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으리라 던 저는 당신의 말에 코방귀로 응대했답니다. 왜 그때는 그리도 당신에 대한 반발심이 컸던지. 어쩌면 과한 음주와 음주 후 여지없이 무너지는 당신의 모습에 커다란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웃자란 가지들을 능숙한 솜씨로 잘라내면서 내게 물으셨죠. 왜 낮과 밤이 생기는고? 나는 조밀하게 자란 하얀 귤꽃들을 한 움큼 솎아내며 성의 없이 대답했어요. 지구가 자전하니까 생기는 거죠. 자전? 자전이 뭐꼬? 아휴 아버지 자전도 몰라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야 당신이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딸의 퉁명스러움에 무안해 하지도 않으셨어요. 그러니 내게 설명 좀 해봐다오. 그날 당신은 오십 줄이 다 되어서야 낮과 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생기는 이치를 아셨어요. 당신은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 분이셨죠. 딸에게 듣는 걸 어려워하지 않았던 분. 그러나 저는 그때마다 당신이 참 작아 보였어요. 왜 그런 게 있잖아요. 남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을 때 느끼는 터무니없는 우월감이요. 아버지라고 예외는 아니었나봐요.
어느 날 당신은 과수원 일도 마다하시고 하루종일 술을 드셨답니다. 당신은 술을 참 무섭게 드셨어요. 1리터들이 소주병을 다 비우고도 모자라 동생에게 술 심부름을 시켰으니까요.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 하루종일 계속되었고 혼자 우시다가 노래를 부르시다가… 어머니는 당신의 매서운 손길에 이미 다른 곳으로 피신하셨어요. 저의 가슴 속에서는 적의라는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어요. 당신은 우리 가족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죠.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당신의 감옥에 갇혀 사는 분. 당신의 유일한 미덕인 성실함마저 천성에 가까운 행동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은 대뜸 시를 읊을 테니 받아쓰라고 하셨어요. 저는 당신이 술에서 깨면 잊어버리곤 하는 흐트러진 모습을 생생히 들려주고 싶었어요. 당신의 주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적어나갔어요. 당신은 눈물까지 보이시며 시라는 것을 읊으셨어요. 맥없이 받아쓰던 저는 조금 놀랐어요. 제법 시다운 것이 만들어지고 있었거든요. 가슴 한 곳이 찌르르르 아팠어요. 당신의 비밀스런 상채기를 보아버린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때의 인상은 계속되는 주사에 가려져 버렸어요. 당신은 이해받아야 할 존재이기 보다는 피해야할 존재로 내 마음에 새겨졌어요.
당신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비행장에 내려섰을 때 제 발목을 세게 휘어 감고 지나가는 바람이 있었어요. 마치 당신의 손길이거나 한 듯 심상치 않은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병실에 누워 있던 당신. 당신은 이미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새까만 현무암빛 머리가 새하얗게 바래 있었고 노동으로 굳어진 팔뚝이 뼈만 앙상하게 드러나 보이더군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오히려 당신은 그런 저를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셨어요. 당신은 당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믿으려하지 않으셨죠. 퇴원을 권유하는 의사에게 병을 완치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고집을 피우셨어요. 밤 열시 퇴원 결정이 내려지고 몇 시간 사이 딱딱한 시신으로 변해가는 당신의 몸이 앰뷸런스에 실렸답니다. 고향에서는 밖에서 숨을 거두면 집 장례를 치를 수 없는 풍습이 있잖아요. 시골 어른들에게 병원 장례는 여전히 불경스러운 일로 보이셨어요. 방안으로 들이는 당신의 몸이 왜 그리도 무겁던지. 평생 당신을 짓눌렀던 짐이 그리도 무거웠나요. 당신은 새벽 한 시 가까운 시각에 숨을 거두었답니다. 가족묘지 대신 과수원에 묻히고 싶다는 이해할 수 없는 유언을 뒤로 한 채 말입니다. 그때 평생 당신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자괴감이 엄습하더군요. 당신은 말년에 자식들에게 알리지 않고 중국과 일본 여행을 다녀오셨더군요. 육순이 다되어 운전면허증도 따셨고, 시내 향교에 다녀서 훈장자격증도 받으셨구요. 왜 그러셨나요? 핏줄을 이어받은 자식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에요.
『지상에 숟가락 하나』(현기영 作)라는 소설책을 보았어요. 당신과 같은 시대를 보낸 동향 소설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더군요.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당신이 어렴풋이 들려주었던 이야기의 조각들을 맞추어 보았어요. 당신은 ‘사태(내 고향에서는 4․3항쟁을 이렇게 부른다)’를 만나 훈장이셨던 할아버지를 잃고 열세살 나이에 홀어머니와 6남매의 가장이 되셨어요. 그때부터 당신은 책가방 대신 곡괭이를 들고 자갈밭을 일구어야 했습니다. 꿈많고 호기심 많던 열세살의 소년은 자기 등에 얹혀진 엄청난 짐의 무게를 투정할 틈이 없었어요. ‘숟가락’의 냉혹한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죠. 당신의 나이는 그 때 이미 정지해버렸어요. 당신은 열세살의 소년으로 평생을 살아오셨어요. 아! 가엾은 나의 아버지. 신음같은 세월을 사셨을 아버지. 당신 생애 행복한 순간은 없었나요? 대답 없는 당신의 무덤이기에 위안한답니다.
※ 위 글은 재단과 교보문고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전국 주부글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