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시인의 작품에는 ‘나’ 가 있고 ‘우리’ 가 있다. 이 점은 주로 시인의 언어를 눈에 보이는 대로 옮기면 된다. 그러나 『아, 입이 없는 것들』에 몇 안 되는 ‘우리’라는 지칭 가운데 “시집간 우리 누이들처럼”(시 69)에서 우리는 ‘우리’를 ‘나’로 옮겨 불시(佛詩)의 밀도를 조절했다. 프랑스 독자 입장에서 실제 시인의 누이들이든, 더 넓은 의미로 우리 모두의 누이들이든 그 부분에서 구태여 오래 머물 것 같지는 않다. ‘나’와 ‘우리’사이의 문화적 무게를 달던 시간 덕분에 <대산문화> 여름호 “번역서 리뷰” 타이틀에서 ‘나’와 ‘우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리뷰를 읽으면서 시 번역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기대와, 시를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일반적 통념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해결책을 찾기까지 힘이 드는 부분이 있지만 일단 시를 번역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접고, 주어진 조건에서 가능한 표현을 찾으며 번역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시 번역 자체의 불가능을 말하기에 앞서, 간단히 번역이란, 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 어느 순간 불가능이 극복되는 것이라 믿는다.
내 안의 모든 복합적인 번역 이론들과 내가 쓰는 언어가 생성하는 결과물을 번역이란 이름으로 공동번역자에게 넘기게 되는데, 한국의 독자가 원작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프랑스 독자가 그대로 받아들일 거란, 받아들여야 한다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삼가고 시작한다. 그리고 프랑스 독자가 번역된 한국 문학에 대해 보여줄 반응을 기다린다. 우리의 시가 우리에게 울리는 심금을 상대방 독자의 역사적, 문화적, 개인적 삶의 시공에 대한 고려없이 상대방에게 기대한다면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앞설 수 있다.
다만 현대적 의미의 시를 옮길수록 문화, 언어적 공통분모가 많은 것은 우리의 생활이 이미 서양과 통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라면 한국과 프랑스의 활발한 교류는 프랑스 독자들이 이룰 공감대에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다.
그런 프랑스 독자들을 위한 번역에 있어, 한국의 번역 비평은 어디까지 번역가들에게 창작의 자유를 허락할 것인가. 공동번역의 경우, 한국인 번역자가 제시하는 1차적 언어자료에서 출발하여 원어민 번역자가 시적 영감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영역까지도 한국의 비평계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창작과 시적 영감은 아직은 수준 미달의 번역을 하는 경우와 번역이 아닌 자기의 글을 쓰는 작가와는 상관이 없다. 프랑스 문학계에 한국 문학을 방어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원어민 번역가군(群)이 있다하더라도 혹 우리의 비평계가 특유의 잣대로 번역에 동참한, 동참하는, 동참할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경계심을 유발하게 해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번역자가 결정한 언어를 조심스레 대해주는 비평의 분위기이면 좋겠다. 특히 출판된 책을 두고 만의 하나 번역가가 수긍할 수 없는 비평가의 편파적인 지적이 있다면 번역가는 외롭다. 한 언어권을 담당하는 비평가가 곧 번역 심사위원이기도 한 점을 고려하여, 번역심사 단계에서 비평가와 번역자의 의견이 교환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 입이 없는 것들』 을 번역하면서 심사위원의 도움을 구체적으로 받았다는 느낌에 감사한 부분이 몇 군데 있다. 출판에 앞서 재확인 작업도 훨씬 용이하였지만, 그 중 하나는 당연히 알면서도 자칫 책이 되어 나오기까지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다는 느낌에 정말 소중했다. 그러나 심사를 하는 분이 번역자에게 걸어오는 대화가 호의적이지 않은 경우를 본 적도 있다. 번역자가 한국문학 소개를 위한 협력자의 일원임을 생각해 비평가도 비평을 위한 비평이 아닌 우애로 번역의 책임을 공유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한다. 번역가들은 번역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전방위적으로”(시 85)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다.
※불역 『아, 입이 없는 것들』 은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프랑스 시르셰에서 출판되었다. ※이 글은 지난호에 실린 본 번역서의 ‘번역서 리뷰’에 대한 번역자의 변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