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는 목구멍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의 안으로 꽉 잠긴 노랫소리가 또 저자 바닥에 깊이깊이 스며들었고, 사람들은 몰래몰래 그것을 따라 불러 꿈만이 떠도는 밤에도 잠꼬대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황석영의 단편 「가객」 의 한 대목이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 수추(壽醜)는 가객이다. 수추가 노래하면 사람들은 물론 짐승까지 다가온다. ‘그의 노래는 아늑하고 힘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정과 말할 수 없는 용기를 돋아나게’했다. 그런 노래를 고을의 장자(지배자)는 마뜩찮아 했다. 장자가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노래 부르는 것은 허용해주겠다고 하자 수추는 ‘제 노래를 원하는 사람들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장자는 그를 하옥시켜 버리고 악기마저 밥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수추는 노래를 불렀다. 장자는 그의 혀를 잘라 감나무에 매달아버렸다. 그래도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장자는 수추의 목을 베어버렸다. 물리적인 차원에서, 수추의 노래는 멈추었다. 그러나 고을 사람들은 들려오지 않는 수추의 노래를 듣기 원하였다. 그런 마음 때문에 수추는 죽었으나 그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몰래몰래 그것을 따라 불러 꿈만이 떠도는 밤에도 잠꼬대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래란 그런 것이 아닐까. 노래는 귀로 들려오지 않고 몸 속으로 스며든다. 어릴 적, 당신은 길을 걸었던가, 아니면 버스를 탔을 수도 있다.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오고 그것은 당신 마음 속의 숱한 감정의 현(絃) 가운데 하나를 건드린다. 몸 속으로 들어온 노래의 정체를 알기 위하여 골목 어귀의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 분명치 않은 선율을 악착같이 기억해내면서 “아저씨, 이런 노랜데요, 도대체 제목을 모르겠어요”라고 하면 레코드 가게 아저씨는 이것저것 음반을 꺼내 들려준다. 몸속으로 들어온 노래는 쉽게 나가지 않는다.
더욱이 ‘노래가 된 시’ 혹은 ‘시가 된 노래’라면 달리 무엇을 덧붙이랴. 엄정한 율과 고도로 집중된 격이 시를 이루는 근간이되 이로써 시는 노래가 될 바탕을 본디 완성한 셈이지만 더러는 ‘산문시’나 ‘이야기시’처럼 정형에서 벗어난 시라 하더라도 그 내재의 율과 마음들, 특히 무엇보다 시가 그려내는 정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곧 노래의 혈액형과 다를 바 없는 것. 그런 점에서 나는 정호승이나 안도현 같은 빼어난 서정시인의 수작이 노래의 옷을 입는 순정한 풍경에 더하여 누군가 있어(이를테면 백창우나 이지상 같은 가객들) 최두석의 「성에꽃」 또한 따스한 노래의 옷을 입기를 바라왔었다. 예컨대 「성에꽃」 의 다음 한 구절.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물론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시와 노래는 의미의 차원에서는 형제지간이지만 전혀 다른 영역의 독자적인 지평을 가진 예술이다. 서정시가 노래가 될 개연성이 높다지만 노래를 염두하고 시를 쓰는 시인은 없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고은의 「가을편지」, 서정주의 「푸르른 날」 등이 시와 노래가 어울린 고전적 아치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은 두 가지의 절실함 즉 시인과 가객의 절실함에 더하여 바로 그 시와 그것을 허공으로 실어 나르는 선율의 절실함이 밀도있게 ‘어울릴 때’ 아름다운 것이다.
이를테면 정지용의 「고향」. 시인 김지하는 회고록 『흰 그늘의 길』에서 ‘실존’과 ‘아방가르드’와 ‘저항’과 ‘쉬르리얼리즘’이 뒤섞인 대학 문청 시절에 정지용의 시집을 탐독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정지용의 시가 ‘복고적 향수’의 세계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희대의 모더니스트이자 정갈한 언어 속에 격렬한 감정을 응축시킨 시인 정지용의 면모가 상당한 대중성을 가진 노래 「향수」로 특징되면서 ‘복고 시인’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을 김지하는 ‘제14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소감문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그분의 시 세계는 세 가지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가톨리시즘, 하나는 모더니즘, 하나는 향토색 짙은 사실적인 민족주의입니다. 이 세 가지는 분열되어 혼거하고 있습니다.” 김지하는 덧붙이기를 어떻게 이 세 가지가 혼란, 갈등, 대립하지 않고 ‘작위적 노력 없이도 한 차원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가 의문이며 바로 그 점 때문에 ‘죽었다 깨어나도 「백록담」 을 쓸 수 있는 시인은 아직 없다’고 말한다. 「백록담」이란 정지용의 1941년 시집이자 대표작이기도 하다.
그의 시가 노래가 되어, 이를테면 「향수」가 대표적인 사례로 연중에 꼭 서너번은 미디어를 통하여 듣게 되는데, 내 감상으로는 「고향」, 특히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르는 ‘쓰디 쓴’ 노래만큼 절창은 달리 없다.
정지용은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영문학을 배웠고 귀국하여 휘문고보와 이화여대에서 그것을 가르쳤으며 특히 윌리엄 블레이크와 월트 휘트먼의 시를 국내에서 소개한 당대 시단의 모더니스트였다. 그런 한편 정지용은, 블레이크나 휘트먼들이 그러했듯이, 전통의 언어 속에 급속히 변모하는 근대의 열병을 담아냈다. 문청 시절에 김지하가 자주 읽었다던 시 「카페 프란스」에서 ‘나는 子爵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 남달리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 //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 大理石 테이블에 닷는 내 뺌이 슬프구나!’라고 썼던 정지용의 ‘당대성’이란 시 「고향」의 절창으로 이어지는데, 따라서 이 시를(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노래를) ‘복고 상품’으로 요약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나는 채동선이 작곡한 정지용의 시를 조수미의 노래로 듣는다. 다른 녹음들이 없지 않으나(그리고 조수미의 음악 활동을 전반적으로 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가창의 한 대목, 그러니까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는 바로 그 대목에 이르면 정말로 마음 깊이 ‘쓰디 쓰다.’ 이것은 조수미 목소리의 애틋함이다. 그리하여 다시,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하는 첫 대목까지 온통 ‘쓰디 쓰다.’
시가 노래와 만나고(혹은 노래가 시가 되고), 그것이 어느 가창자의 목소리와 어울려 ‘쓰디 쓴’ 정경을 그려내는 것이야말로 단편 「가객」의 주인공 수추가 도달했던 경지가 아닐는지. 그러니까 ‘사람들은 몰래몰래 그것을 따라 불러 꿈만이 떠도는 밤에도 잠꼬대의 노랫소리’가 되는 경지야말로 우리가 흔한 소리로 말하는 ‘시와 노래의 만남’이 도달해야 할 상태인 것이다.
이렇게 재삼 강조하여 말하는 것은 시의 속삭임과 노래의 읊조림을 그 겉모습의 독특함만 교합하여 적당히 노래인 듯 하면서 정녕 노래가 되지 못하고 적당히 시인 듯 하면서 시의 껍데기만 슬쩍 빌린 ‘시와 노래의 이벤트적인 만남’이 도처에 너무도 흔하여 정색하여 말해본 것이다. 굳이 시가 노래를 만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최두석의 「성에꽃」은 이미 시의 형식 안에 노래의 애틋함을 담고 있다. 조용필의 노래 「그 겨울의 찻집」은 어떠한가. 이 노래의 작사가인 양인자가 소설도 쓰고 방송작가로도 활동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는 달리 시의 형식을 빌릴 필요도 없는, 노래 속으로 스며든 시가 아닌가.
이처럼 시와 노래라는, 엇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양식이 ‘만남’을 하려면 저마다 서로 상대방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내면적인 애틋함과 미적인 절실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블랏 오쿠자바, 칠레의 메르세데스 소사, 한국의 김민기가 하나같이 그런 절실함의 한숨들 아닌가. 그 밖의 일이란 단지 이벤트일 뿐. ‘쓰디 쓴’ 그 무엇이 절실하다.
예컨대 1985년에 조동진이 발표한 「제비꽃」은 무엇인가. 조동진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와 앙드레 슈발츠 바르트의 『고독이라는 이름의 여인』을 탐독하면서 두 작품 속 인물들의 꿈, 사랑, 절망, 눈물을 제비꽃으로 형상화하고 이를 노래하였는데, 곧 시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 절실함으로 다시 「고향」을 들으니,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정말로 마음 깊은 곳까지, 쓰디 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