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많으면 냇물도 많다. 산이 많은 서울에는 그 진산(鎭山)에서 발원하는 여러 갈래의 냇물이 도심을 관통하여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서울이 대도시로 발전함에 따라 많은 시냇물이 복개되어 지하로 숨어버렸지만, 아직도 시내 한 가운데로 흘러가는 큰 냇물이 있고, 청계천처럼 복개되었다가 되살아나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 냇물이나 강물은 성급하게 직선으로 흘러가지 않고 구불구불 곡선을 그리며 완만하게 흘러간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긴 냇물이 있다.
개천 한 가운데 거대한 교각들이 서고, 그 위로 자동차전용 순환도로가 지나가는 바람에 자연의 경관은 훼손되었지만, 그래도 동네 한 가운데로 냇물이 흘러간다는 것은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이 개천가 나지막한 산턱 위에는 단속이 허술한 선거철을 틈타 갑자기 들어선 아파트와 연립주택들이 그나마 아기자기했던 천변을 볼품없이 만들어버렸다.
뒤늦게 냇물의 가치를 깨달았음인가. 관할 지방자치 단체에서 큰 돈을 들여 인공폭포를 설치했다. 개천 굽이의 산턱 위로 물을 끌어올려 인공 암벽의 아래로 떨어져 내리게 만든 것이다. 한여름에는 무더위에 지친 주민들에게 위안이 된다. 비록 가짜 폭포라 할지라도 보는 이의 시청각에 진짜 폭포의 이미지를 환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가파른 산비탈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세 개의 물줄기도 그렇거니와 떨어져 내리는 폭포소리가 마음을 시원하게 식혀준다. 냇물 한 가운데 가끔 재두루미도 노닐고 오리 열댓 마리가 자맥질을 하며 꽥꽥 거리는 모습이 자연에 목마른 도시인들로 하여금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동네를 산책할 때 나도 이곳을 지나가며 자연의 환각을 즐기곤 했다. 그런데 주민들의 반응이 좋다는 것을 알아챈 지자체에서 인공폭포 앞마당을 더욱 아름답게 꾸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기 시작했다.
폭포 옆에다 물레방앗간을 지었다. 강원도 어느 산골의 실물을 모델로 만들었다는데, 냇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물레바퀴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기로 굴대를 돌리고 물은 그저 모양으로 그 위에 떨어지는 꼴이었다. 쿵덕쿵덕 소리도 물론 들리지 않았다. 나이든 사람들은 그래도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지만, 어린 학생들에게는 이 오래된 동력이용 장치를 잘못 체험학습 하는 현장이 된 셈이다.
뒤이어 황포 돛단배 한 척이 물레방앗간 앞에 나타났다. 옛날에 마포 나루로 새우젓을 실어 날랐음직한 작은 범선이었다. 개천의 넓이와 물의 깊이로 보건대, 도저히 배가 다닐 수 없는 물레방앗간 앞에 돛단배를 조립해 놓은 상상력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장마 때 이 돛단배가 떠내려 가 교량 난간에 걸리는 사고가 나자, 이제는 물레방앗간 뒤쪽 언덕 위로 범선을 옮겨놓았다. 돛단배가 산골 물레방앗간 뒤에 상륙한 이 포스트모던한 설치미술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다음에는 폭포 앞 냇물 바닥에 쇠파이프를 까는 공사가 벌어졌다. 음악 분수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몇 달 뒤에 냇물 한 가운데서 백여 개의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높고 낮은 물줄기들이 상하좌우로 뒤흔들리고 거기에 오색 조명을 번갈아 투사하니 보는 사람의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고성능 확성기에서는 귀청이 찢어질 듯 요란한 반주 음악이 쏟아져 나왔다. 폭포의 모습은 인공조명에 가려지고 물소리는 소음에 뒤섞여 들리지 않았다. 이 음악분수의 작동이 시작 된 뒤부터 나는 인공 폭포 쪽으로 산책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뒤에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다보니, 문명의 이기가 또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초대형 액정 화면이 폭포의 왼쪽에 걸려있었다. 어느 댄싱 보컬 그룹의 공연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그 음향 또한 폭포 소리를 압도했다. 여기에다 음악분수까지 작동되면, 이곳이 바로 눈과 귀의 지옥이 될 것 같았다.
인간은 두 개의 열려진 귀를 가지고 있다. 입은 하나밖에 없는데 귀가 두 개인 까닭은 적게 말하고 많이 들으라는 조물주의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안경을 쓴 사람은 안경다리를 걸치려면 귀가 두 눈의 양 쪽에 붙어있어야 한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고, 음악 애호가는 음향을 입체적으로 듣기 위해서 수신기가 최소한 두 개는 있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어느 것이 꼭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귀가 청취할 수 있는 소리의 세기가 한정되어 있음은 사실이다. 이 음역을 초과하면 우리의 고막이 심각한 고통을 느끼고, 과도한 경우 구토를 유발하기도 한다. 주한 외국 문화원의 밀폐된 강당에서 사물놀이 공연이 절정에 달했을 때, 어떤 외국인 여자 청중이 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시가 흐르는 저녁’이라는 문화 행사에 초청 받아 서울 광장에 갔었다. 시화 전시회장을 돌아보고 간이 무대 앞 초대석에 자리를 잡았다. 시낭송은 원래 시의 조용한 울림에 귀 기울이며 거기에 담긴 깊은 뜻을 음미하는 언어 예술 행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꼭 시와 음악을 연결시킨다. 시낭송회 개막 행사로 어느 록 밴드가 등단하여 정열적인 연주를 시작했다. 그 음량이 광장 주변으로 지나가는 퇴근 차량 소음을 완전히 압도할 만큼 컸다. 고성능 확성기 때문이었다. 나는 금방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아 일어섰다. 옆자리 동료 시인에게 먼저 가겠다고 한 마디 했는데, 이 말도 그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음악의 소음이 요란했다. 소리의 폭력이 인간을 고문하고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우리 동네 인공 폭포 앞마당이 바로 이 경지에 육박하고 있다.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와 확성기의 소음이 한꺼번에 울려나오고, 삼지 사방으로 솟아오르는 분수 물줄기에 천박한 원색 조명이 뒤섞여 귀와 눈을 참을 수 없이 괴롭히는 이 장면은 일부러 연출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이 희한한 상황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근본 의도는 주민들의 감관을 학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낙원처럼 기분 좋은 주민들의 쉼터를 마련해보려던 것이었으리라.
문제는 이들이 문화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오해하는 데서 생긴 것이다. ‘문화’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자연 +/ - 알파’ 라는 공식을 빌려 표현할 수도 있다. 태초부터 존재해온 자연에 인간의 힘을 작용하여 변용시킨 것, 즉 ‘인공(人工)’의 소산이 바로 문화 아닌가. 인간의 힘이 자연에 더해진 것을 ‘경작(耕作)’에서 볼 수 있고, 그 반대의 예를 ‘취락(聚落)’이나 ‘도시 건설’에서 볼 수 있다. 문화는 이처럼 자연의 모태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공 폭포의 설치는 진짜 자연을 훼손하면서 가짜 자연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 가짜 자연까지 파괴하는 잘못된 환경 문화의 예를 우리 동네의 인공 폭포가 보여준 셈이다.
주민의 세금으로 전기 요금을 지불 하면서 가동되는 인공 폭포가 일종의 환시와 환청 효과를 통하여 주민들에게 약간의 위안과 휴식을 주었다면, 그것은 재두루미와 오리 떼가 등장하는 단계에서 멈추었어야 한다. 주민과 지자체 사이에 그 정도의 타협은 암묵리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전혀 쓸모없는 인공사족(蛇足)들, 즉 물레방앗간, 황포 돛단배, 음악분수, 고성능 확성기, 액정 화면이 뒤따라 설치됨으로써 엄청난 경비를 들인 시설이 주민들의 혐오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예산이 남아돌아갔기 때문일까, 아니면 환경 문화를 저속한 개그콘서트나 시끄러운 노래방이나 나이트클럽의 조명무대 정도로 오해했기 때문일까.
문화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필요하다. 모든 문화 행사에 고성능 확성기가 설치되고 노래와 춤과 개그가 필수 프로그램으로 등장하는 요즘의 관행은 수정되어야 한다. 바닷가의 관광 유람선에서부터 대학가의 개교기념 축제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견딜 수 없는 소음으로 시종 일관하는 오늘의 세태를 보면, 아무리 우리가 가무를 좋아하는 민족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소음의 폭력임에 틀림없다. 인간에게 부드러운 위안을 주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섬세한 청각을 연마할 기회를 이렇게 함부로 빼앗아 버린다면, 결국 세계 수준의 문화 예술인도 나오기 어렵고, 그것을 향유할 줄 아는 청중의 기반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 세기 전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100데시벨에 육박하는 모든 소음이 엄격히 규제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멀지 않아 고막 보호 귀마개를 쓰고 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도시 생활은 그 자체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전자 기기를 사용하여 그 몇 배의 인공 소음을 확성 전파하는 것은 우리 삶의 터전을 지옥으로 만드는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에 인공 폭포가 생기기 전이 바로 우리의 소박한 낙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소리, 매미와 여치와 귀뚜라미의 합주, 새소리와 물소리가 그리운 사람들에게 왜 돈을 들여가면서 소음 폭탄을 퍼붓는 것일까. 시끄러운 음악에 도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특정한 실내외 공간을 찾아가면 된다. 요즘 유행어를 빌린다면, 지자체에서 납세자들과 환경 문화 개선에 관하여 소통을 시도하지 않고, 왜 일방적으로 마구잡이 시설을 덜컥 덜컥 만들어 예산을 낭비하고 주민을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