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람들은 전기나 자서전을 즐겨 읽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전기문학이 발전하지 못했다. 자서전에 있어서는 거의 황무지. 체면에 얽매이는 경직성이 문제인 것 같다.
영어권에 치우쳐서 프랑스 정치인들에 소홀했던 터에 몇 년 전에 나온 미테랑 대통령의 평전을 손에 대고는 정말 재미있게 완독하였다. 저자가 유명한 자크 아탈리이니 정치 거인과 당대 수재의 합작품으로 뛰어날 수밖에 없다. 아탈리는 미테랑을 길게는 25년 도왔으며 그 중 10년 간은 최측근 참모로 보좌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복지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 모델이 자주 운위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딕 모델이 더 모방하고 싶은 것이지만 프랑스의 경우도 그 유럽 모델의 전형이다.
『미테랑 평전』에서 우선 진보정치의 이론이 아닌 실제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세계화된 경제에서 어느나라나 막강한 금융 자본의 영향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 진보정치도 그점에서는 한계가 있다. 미테랑은 이렇게 말한다. “전 세계의 금융업자들이 우리에게 맞서 뭉쳐 우리가 더욱 급진적이 되거나 아니면 배반하도록 압박할 것이오.” 그런 주제적 연관 속에서 “경제는 시장, 사회는 사회적 관리”라고 말하기도 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정책을 추진해 나가기란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제정치적 역할도 미국 위주로만 읽어 오다가 프랑스의 경우를 알게되니 흥미롭다. 특히 핵 정책에 관심이 갔고, 소련이나 독일에 대한 외교도 참고가 되었다. 국가 이익이 앞서는 것이지만 진보주의에 있어서는 조금은 국제주의적 면이 보인다.
아탈리는 유대인이다. 미국 책을 보면 되도록 유대인 언급을 회피하는 듯 한데 이 책에서는 프랑스 안의 유대인, 이스라엘에 대한 정책 등에서 별로 거리낌이 없다. 마침 우리 정치에서 개헌 문제가 클로즈업되어가며 권력구조 문제가 무슨 퍼즐게임인 양 논의되고 있다. 프랑스 헌법은 대통령과 총리 간의 동거정부(코아비다시옹)가 가능한 통치 형태다. 그리고 미테랑 집권 기간에 한 번은 아주 까다롭게 또 한 번은 비교적 무난하게 동거정부가 있었다. 그 메커니즘을 읽는 것도 크게 참고가 될 줄 안다.
에피소드도 많다. 미테랑이 소련의 체르넨코와 대화하는 자리에 고르바초프가 늦게 참석했다. 그를 마땅치 않아하던 체르넨코가 이유를 물으니 지방의 농업회의에 갔다가 늦었단다.
“거기 무슨 일이 있소?” “농업 상황이 처참한 지경입니다.” “언제부터 그렇소?” “1917년부터입니다.” 미테랑은 고르바초프가 보통이 아님을 알았단다.
프랑스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서술, 특히 아탈리 같이 뛰어난 지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묘사도 많다. 때로는 자학적이기까지 하다.
“미테랑과 드골의 경우 외에도 프랑스는 착각하게 만드는 능력을 발휘하여 많은 덕을 보았다. 프랑스는 몇몇 약삭빠른 지도자들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나치에 저항했다고 다른 나라들이 판단하도록 만듦으로써 전승국의 하나로 인정 받았고……”
우리에게 친일이란 과거가 있다면 프랑스인에게도 독일에 투항한 비시정권에의 협력자문제가 있다. 미테랑이 잠시 그 비시정권 밑에서 전쟁포로문제를 다루다가 레지스탕스의 투사로 변모한 모양이다. 자기 우상의 그 약점을 뒤늦게 알고 서술하는데 아탈리는 최고도의 문장기술을 발휘한다.
「자신의 받침대에서 떨어진 영웅」이란 소제목에서 이 까다로운 문제를 고민 고민 설명해나가던 끝에 “아무리 위대한 인물일지라도 한 인간의 삶은 약점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모자란 점에 맞설 줄 아는 것은 우리 각자가 가진 위대함의 한 형태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라고 그렇게 밉지는 않은 문장의 기교를 부린다. “프랑스 특유의 회색분자의 기질”이란 구절도 있는데 그런 기질로하여 문장이 기교나 세련도가 있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현지 특파원을 지낸 이의 친절한 번역 쪽 주석도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그 유명한 아탈리가 보태졌기에 미테랑 전기는 클린턴이나 대처의 것을 훨씬 능가하는 작품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