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산문학상 예심은 총 세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최근 몇 년간 한국문학은 장편소설의 양적 증가를 이뤘다. 한편으로 이는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요청, 독자와 좀더 가깝게 소통하려는 작가의 욕망, 그리고 문학 시장의 요구 등에 부응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결과가 지난 한 해 동안 장편소설의 양적 증가에만 그치지 않고 질적으로도 수준 높은 작품의 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장편소설의 시대는 이제 말뿐이 아닌 구체적 현실이 된 듯하다. 그런 점에서 이미 2008년부터 장편소설만을 심사대상으로 하고 있는 대산문학상 소설부문은, 변화하는 한국문학의 지형도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동시에 그를 통해 한국문학의 미래를 앞서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전위적인 한국문학계의 시험의 장이 될 수 있다.
예심을 거쳐 본심 심사대상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구경미의 『라오라오가 좋아』, 김미월의 『여덟 번째 방』, 박형서의 『새벽의 나나』,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이문열의 『불멸 1, 2』,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 하성란의 『A(에이)』,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이상 가나다 순), 이렇게 총 여덟 편이다.
전체적으로 이들 소설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다양한 시선으로 포착하면서도 그러한 사유를 흥미로운 서사적 틀 속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장편소설의 미덕을 최대한 발휘했다고 본다. 이 중에서 김미월과 박형서의 작품은 이전의 단편소설 위주의 창작에서 벗어나 처음 쓴 첫 장편소설이지만, 장편소설 특유의 긴 호흡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세계를 조망하는 작가 특유의 개성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이미 그 작가적 역량을 문단 안팎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은 신경숙과 이문열의 신작 또한 더욱 깊어진 내공으로 여전히 예심위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이현, 하성란, 한강은 전작에서와는 다른 새로운 소재와 소설 작법을 시도하면서도 나름의 일정한 성과에 도달했다고 본다.
구경미의 경우 아직은 서사가 거칠고 느슨하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라오스 여성과 한국 남성 사이의 냉혹한 자본주의적 교환 관계를 유쾌하면서도 냉철하게 포착하는 새로운 서사적 시도를 높이 평가하여 본심 후보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일일이 거명할 수는 없지만 본심에 오르지 못한 좋은 장편소설이 많았다는 말만 덧붙인다. 그래서 그만큼 예심이 즐거웠다는 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