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해 살고 있는 언니 집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수컷 에밀리는 새끼 때 언니 집 현관문 앞에 누군가가 모래 상자와 함께 버려놓고 간 고양이었다. 아주 추운 12월이었고, 외출하려고 현관문을 열자 기습적으로 쪼로록, 하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고 했다. 추위에 벌벌 떨며 문이 열리기만을 내내 기다렸다는 듯, 제 집인 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들어와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고 했다. 마음 약한 언니는 제 발로 들어온 고양이를, 그것도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를 추위 속으로 다시 내몰 수 없어서 키우기로 마음 먹었다. 새끼 고양이는 건강에 문제까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주인한테 버림받은 모양이었다. 많은 애완 동물들이 아프거나 늙었다는 이유로 버려진다. 여태껏 고양이를 키워본 적 없던 언니가 고양이를 받아들이기로 한 건 아픈데다 버림까지 받은 고양이를 다시 한번 버림받게 할 수 없어서였다. 언니는 새끼 고양이를 치료해주며 ‘에밀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혼자 살고 있는 언니에게 에밀리는 든든한 가족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언니 눈에는 그런 에밀리가 외로워 보였던 모양이었다. 어느 날 내게 고양이 한 마리를 집으로 더 들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당시 언니는 족보 있는 고양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바뀌게 된 건 고양이 관련 사이트를 통해 안타까운 새끼 고양이 사형제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인간에 의해 쓰레기통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 네 마리. 고급 샵에서 분양 받는 것보다 사연 있는 고양이를 데려다 기르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 언니는 그 중 막내 ‘내내’를 입양했다. 내내는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는 고양이어서 언니 집에 가더라도 좀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볼 수 없는 녀석이었다. 그때 나는 언니에게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며 녀석의 이름을 다시 지어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언니도 이름을 고민하고 있었던 참인지 며칠 후 내가 전화를 했을 때 내내를 ‘앨리스’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이 좀 맘에 들지 않았다. 나의 장편 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때문이었다. 언니가 앨리스 있지, 하면 꼭 내 장편 소설 앨리스를 말하는 것 같아 대화 중 잠시 생각이 끊기곤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발음하기가 힘들고 헷갈린다는 이유로 이름을 다시 바꿀 것을 권했고, 언니도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름을 바꿀 기회 같은 건 찾아오지 않았다. 앨리스가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앨리스가 앓고 있는 병은 희한하게도 어떤 치료도 약도 소용없는 지점에 빠져들었을 때서야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병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앨리스 몸 속에 잠복해 있었던 것이었다. 엄마 젖도 제대로 빨아보지 못한 채 병균이 우글거리는 쓰레기통에 버려졌으니 건강한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이틀을 넘기기 어려워 보인다는 언니의 울먹이는 전화를 받고 난 뒤 나는 앨리스를 떠올리며 기도를 했다. 제발 부탁이니,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런 건 일어나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를 닦고 있을 때 문자메시지 수신음이 울렸다. 앨리스가 편안하게 갔다는 언니의 짧은 문자였다. 나는 이를 마저 닦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10개월의 삶.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앨리스를 본 건 고작 서너 번이 전부였다. 그 서너 번 동안 녀석의 얼굴을 제대로 본 건 두 번뿐이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파서야 녀석은 내게 얼굴을 보여준 것이었다. 녀석을 마지막으로 봤던 때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바짝 마른 몸으로 누워만 있던 앨리스. 나는 언니 집을 나오기 전 앨리스의 가느다란 손을 잡고 말했다. 앨리스야, 다음에 볼 때는 살도 많이 쪄 있고, 건강해져 있자. 그게 내가 녀석한테 건넨 마지막 말이었다.
지금은 앨리스가 ‘앨리스’란 이름을 간직하고 떠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앨리스의 생활방식’을 떠올리면 이젠 ‘소설 앨리스’가 아닌 ‘고양이 앨리스’가 생각날 것이기 때문이다. 녀석은 나와 무관하지 않은 고양이인 것이다. 10개월 동안 한국이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아프게 살다 간 앨리스. 앨리스가 지금 살고 있을 그곳은, 이곳처럼 이상한 나라는 아닐 것이다. 언니는 앨리스를 묻은 곳에 꽃씨를 심었다고 했다. 어떤 예쁜 순이 올라왔을지 내일, 가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