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대_시인. 1972년생 시 「판화처럼 나는 삽니다」, 에세이집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등
몇 해 전 일이다. 며칠을 심하게 앓은 후였다. 따뜻한 밥이 간절해 식당을 찾았는데 마침 설이라 문을 연 곳이 드물었다. 텅 빈 거리를 한참 돌아다녀서 겨우 발견한 곳은 평소라면 좀처럼 발길을 하지 않았을 꽤 널찍한 식당이었다. 평범한 밥 하나를 주문하는 게 미안할 만큼 천정은 높았고 테이블은 넓었지만, 나의 뱃속 사정은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식당에서 가장 간단하리라 생각되는 식사를 주문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고, 나온 음식은 생각밖에 푸짐하고 근사했다.
주문한 것이 맞는지 따져볼 겨를도 없이 나는 허기진 속을 채웠다. 그리고 서둘러 식당을 나서려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한사코 밥값을 받지 않았다. 그날 몸이 많이 좋아진 게 그 식당 밥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그 후 다시 그곳에 갈 수 없었거나 가지 않았지만, 매년 설 무렵이면 그 식당이 생각나곤 했다. 봄눈이 오면 그 식당 밥 냄새를 맡았다. 흰 눈밥을 먹고 세상은 봄이 오는 걸까.
등단 무렵, 어떤 말을 들었다. 아무도 시를 쓰지 않아서 네 차례가 온 것뿐이라는.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거나 믿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그 말을 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먼 곳을 헤매고, 텅 빈 곳을 앓았던 것 같다. 이제야 그 말이 틀렸다는 걸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맙다. 몇 해 전 그 식당에서처럼 따뜻한 밥을 먹고 있는 것 같다. 그날의 간절했던 밥처럼, 지금 쓰지 않으면 한 줄도 쓰지 못하게 될 것처럼, 쓸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드시 값을 치르고 싶다.
오랫동안 시어들의 서식지를 수소문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삶이 지상의 ‘잉여’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표현대로라면 저는 뒤쳐졌고 성장이 지연됐으며 대다수가 신봉하는 삶에서 스스로 유배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희망과 박수 받는 친구들의 가까운 미래는 지금도 저를 다녀가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처럼 유다른 동선을 가지게 된 배경이 늘 궁금했지만 그때마다 저는 또 시를 썼습니다. 길 위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던 모든 풍경에 대해, 풍경과 대화하던 기억에 대해, 기억 속에서 점차 죽어갈 얼굴들과 사건들에 대해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마다 한 가지 윤리를 떠올렸습니다.
이를테면, 저 음험한 도시와 그가 길들이는 사람들은 속도와 수치, 크기와 넓이 같은 계량화의 습관을 짓고 그에 저항하지 않는 삶에 대해서만 너그럽습니다. 그렇다면 제 시는 도시의 기율에서 소외된 삶에 대한 연민입니다. 과장을 걷어내고 말한다면, 제 시는 ‘지금 여기’의 저에 대한 변명이거나 위안입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 같은 것 말입니다.
채집한 시어들과 저는 서로를 엮어 온 사이입니다. 그러나 교류의 징표로 태어난 그간의 시들은 빛을 쏘이지 못했습니다. 일기처럼 제 컴퓨터 가장 깊숙한 곳에 누워있거나, 책상 맨 아래 서랍 속에 다른 잡동사니와 섞여 보관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하여 창작기금 수혜 사실이 알려지고 난 후 얼마간, 저는 저보다 외로웠을 제 시와 화해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무렵 저의 힘겨운 저녁을 구원해 주던 숱한 시집들이 다시 다녀갔습니다. 저는 그 시집을 흐르는 시인들의 고통에 많은 빚을 졌습니다.
심사위원님들의 결심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저도 누군가의 저녁을 달래주는 시들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 시작부터 많은 빚을 졌습니다. 설레는 무거움으로 감사합니다.
유종인_시인. 1968년생 시조 「촉지도(觸地圖)를 읽다」 「왕버들 목침(木枕)」 「봄」 등
이 여름에 나는 한 꽃나무를 만났다. 처음은 제주도 삼무공원(三無公園)의 늦은 아침에 작취미성(昨醉未醒)의 눈길로 마주쳤다. 다음은 대구 범어동 한 언덕의 작은 교회 마당에 딸애의 손을 잡고 어슬렁거리던 열대야의 혼곤함 속에서 재장구쳤다. 그것은 무엇엔가 이끌려 가까이 다가가면 콧등이나 눈두덩이 피침형(披針形) 잎 끝에 찔릴 것만 같은, 그러나 크지도 작지도 않은 담홍색 겹꽃을 가진 협죽도(夾竹桃) 나무였다. 제주도의 것은 십 몇 년은 족히 됨직한 수피(樹皮)를 가진 나무였고 대구의 것은 같은 목본임에도 화분에 담겨서인지 초본처럼 느껴지는 수세(樹勢)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이 반가운 꽃나무를 올해 처음 만난 것은 아니었다. 나의 반가움은 오래된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초면(初面)의 매혹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나의 이런 반가움이 새것처럼 느껴지는 건 의외였다. 아마도 그 처음의 느낌을 넘어서는 그 ‘너머의 것’을 나는 막연하게나마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느낌은 곧, 상투(常套)의 감각과 사유에 얽매어 있던 한 꽃나무의 슬픔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는 방증처럼 들린다. 나의 반성과 회의는 그간 한 꽃나무의 비애를 씻어주는데 구정물에 탁족(濯足)할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언젠가 나는 어느 소감에서 ‘자유시를 쓰는 시인에게 시조(時調)는 외도(外道)가 아니라 본도(本道)’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나는 이 출사표를 한동안 잊고 있었다. 실상 시조를 쓰면서 그런 내 의중은 마음 한 켠에 있는 듯 없는 듯 스며두었다. 그걸 독을 품은 협죽도 꽃처럼 재장구치는 계기를 얻었다.
용렬한 시조를 일깨워준 세 분 시인 선생님의 과분한 낙점에 감사드리고, 누가 되지 않도록 협죽도 그늘을 얹은 버력에도 마음을 새겨보련다. 대산문화재단의 드넓은 후의에도 또한 감사드린다.
『좀비들』은 3년 전, 한 문장에서 시작된 소설입니다. “좀비를 처음 만난 건 안테나 감식반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당시 저를 사로잡았던 두 개의 단어가 바로 좀비와 안테나였습니다. 오래 전부터 좀비라는 존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디선가 불쑥, 멍한 눈동자의 좀비가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걸어오는 상상을 해봅니다. 세계는 전멸 직전이고, 도로에는 차 한 대 없고, 좀비들이 바닥에 떨어진 빈 깡통을 차면서 저에게 천천히 걸어옵니다.
많은 영화나 소설 속의 좀비들은 ‘소멸시켜야 할’ 존재들이지만 저는 그 존재들이 애달프게 느껴졌습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여 있는 그 존재들이 가여웠습니다. 저는 소설 속 좀비를 통해 삶과 죽음의 불가해한 관계를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테나 감식반이라는 단어는 휴대전화기 연구원과 인터뷰를 하다 우연히 생각하게 된 직업입니다. 실제 비슷한 직업이 있기도 합니다. 유럽 전역을 돌면서 휴대전화기의 감도를 확인하고 새로운 기지국 설립을 검토하는 직업입니다. 안테나를 찾기 위해 전국을 떠돌아다닌다는 설정이 매력적이었습니다.
3년이 지나고야 겨우 장편소설로 완성했습니다. 꾸준히 쓰지는 못했지만, 3년 동안 『좀비들』은 언제나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즐거웠습니다. 이 작품을 쓰면서 글을 쓴다는 게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즐겁게 쓰려고 합니다. 이 작품으로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게 되어 더욱 즐겁습니다. 어깨를 두드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사랑이 깊으면 병이 된다고 하죠. 사소한 말실수를 하고 난 후에도,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한 다음에도 저는 그것이 작가로서 혹은 글을 쓰는 시민으로서 충분히 성찰하지 못한 탓일까 봐 시름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고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문을 걸어 잠그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인생, 고독해서 슬플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목적 없이 기계적으로 쓰는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글을 쓰는 목적이란 대체 무엇이어야 한단 말인가, 해답을 알 수 없어 괴롭기도 했습니다.
대산창작기금을 받게 되었다는 낭보를 듣고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끊임없이 반성하고 고독해하고 괴로워하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무도 대신해줄 수도 없고 옮고 그름을 평가할 수도 없는 저의 길이고 행복이라는 것을요. 어떤 인생이 더 가치 있는 것인가는 보편적인 잣대로 나뉠 수 없는, 오로지 개개의 삶에서만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일 것입니다.
길고 긴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길 한가운데서 지치지 말고 더 가보라는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신 대산문화재단에 감사합니다. 동경과 희열로, 때로는 뜨거운 한 방울의 눈물로 읽었던 소설들, 그런 소설들을 써오셨던 세 분의 선배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도둑놈 잘 키워 작가 만드신 대산!’ 도둑질에 맛 들린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입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500원짜리 만화책을 한 권 두 권 훔치면서 시작된 도둑질은 한 달 뒤에는 동네서점에서 2000원짜리 ≪다달학습≫을 훔칠 정도로 커져갔습니다. 6월호를 잘못 훔쳐 7월호로 다시 바꿔 훔쳐올 정도까지 되었으니 전과도둑, 사전도둑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급기야, 누나를 따라 몇 번 가본 적이 있던 ‘교보문고’로 원정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면목동에서 광화문까지 131번을 타고, 빈 쇼핑백 하나 달랑 들고 말이죠.
≪소년중앙≫에서 광고로만 보았던, 동네서점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던, 꿈에서만 몇 번 보았던 이희재 화백의 명작 『골목대장 악동이』 전3권 세트를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교보문고는 어린 저에게 비현실적 공간이었습니다. 책이 많아서도 그랬지만 달콤한 냄새가 나서 좋았습니다. 그 것이 사먹을 수도 있는 빵 냄새라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아무튼 도둑놈은 두근두근 어린이 만화코너 가판대 앞에 섰습니다. 분홍색, 초록색, 보라색 세권의 악동이는 아름다운 비닐 랩에 통으로 묶여 ‘어서 날 가져가’ 환하게 웃고 있더군요. 악동이 앞에 바짝 다가선다, 아무도 모르게 재빨리 주변을 살핀다, 악동이를 집어 자연스럽게 쇼핑백 안으로 떨어뜨린다, 자, 성공이다, 이제 악동이를 볼 수 있다?
“나는 너를 아는데 너는 나를 왜 모르니?” 당시에도 한물간 유행어가 뭉툭하게 들려왔습니다. 이미 어깨 위에는 묵직한 팔 하나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스킨 냄새. 올려다보니 쌍꺼풀 진한 양복이 윙크를 하더군요. “가자.” 끌려간 곳은 커다란 책장 뒤의 작은 쪽방. 아저씨는 나같은 도둑놈들 잡는 교보문고의 비밀요원이었습니다. 울며불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반성문과 각서를 쓰고 풀려났습니다. 이후 학교나 집으로 혹시라도 전화가 걸려 올까봐 애간장이 녹아들어가는 한 계절을 보냈습니다. 저의 도둑질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자랑은 아닙니다만 그 후로는 절대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있습니다.
아, 교보문고. 아, 대산! 소도둑이 될 뻔 했던 저를 착한 어린이로 만들어주시더니 이제 희곡 잘 썼다고 상까지 주시다니요. 감사합니다.
한 때 신용호 선생의 호를 ‘너무 과한 거 아냐’ 비아냥거렸던 적이 있습니다만, 절대로 과한 호가 아니라고, 대산은 진정한 우리 문학의 大山이라고! 의전을 넘어 허리 숙여 인사 올립니다. 뽑아주신 장성희, 홍창수 심사위원님,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형형하게 살아계신 영원한 마음의 스승, 박경리 선생님과 토지문화관에 감사의 마음 띄웁니다. 「연변엄마」를 쓰던 석관동 옥탑방. 덥고 덥고 더웠던 여름. 기꺼이 한 대 뿐인 선풍기를 내어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1,000만원! 잘 쓰고 잘 쓰겠습니다.
지리산 화엄사 인근에 있는 한 숙소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머물렀던 3일 중에 이틀 동안 비가 내렸다. 계곡을 내려가는 물소리에 둘러싸인 채 이 산 저 산 출몰하는 구름을 보면서 한나절을 보내기도 하고,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면 사찰 경내에서 우두커니 앉았다 오기도 했다. 우중(雨中)에도 사람들은 꾸준히 사찰을 찾았고, 대개는 그곳의 고요함을 존중했다. 이곳저곳에 흩어진 사람들을 모은 것은 종소리였다. 소리가 사람들을 불렀고 종을 치는 젊은 스님의 모습은 정갈했으며, 화엄사는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다.
소리 속에서 지낸 삼일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프런트에서 격분하며 불만(complain)을 제기하는 어떤 이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신은 숙소에 들어온 것인데, 왜 문화재관람료를 내야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많은 이들도 한번쯤은 생각했을 법한 문제이니만큼, 그의 논리는 충분히 논리적이었다. 직원들은 수세적이었고, 그는 끝내 예약을 취소하고 화엄사로 올라갔다.
어떤 자리에서 나는, 비평이 작품에 대해 말을 더하는 일이어서 피로하다고 쓴 적이 있다. 어떤 작품에 관해 발언하는 일은 조리 있게 따지고 생각하는 것 위에서 이루어지지만, 어떤 비평은 작품 너머에 대한 이야기로 말의 조리, 그 조리가 지닌 마음의 위세를 어느새 넘어선다.
나의 글이 스스로의 논리 속에 갇혀 있거나 성을 내는 비평은 아니었는지를 생각한다. 따지고 현실에 맞서는 일을 언제쯤 너머의 풍경으로 말할 수 있을는지. 많이 부족한 글에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좋은 작품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서련다’ 내가 동시를 읽고 쓰는 일은 웅크리고 있던 순수를 깨워 기지개를 펴게 하는 일이다. 자연을 보고 그 신비로움과 자연스러움에 감탄하는 일, 갖가지 사물과 교감하는 일, 복잡한 관계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일, 늘 곁에 두고도 보지 못한 것들을 알아내고 고마워하는 일이다.
그리고 가끔은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일이다. 집 앞에는 유치원을 비롯한 4개의 학교가 나란히 있는데 그 아이들이 내 동시 속으로 기꺼이 들어와 주인공이 되어주었다. 시 속에서 아이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노라면, 어른인 나보다도 오백배 쯤은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아이들 마음에 꼭 드는 작품을 써서 다가가고 싶다.
이런 기쁨의 장을 마련해 준 대산문화재단과 한껏 빛이 나게 해주신 심사위원님께, 혜암 최춘해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겸손하게 더 좋은 작품을 쓰도록 노력하겠다.
어릴 때 어머니는 막내딸인 제게 늘 옛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 때, 엿을 고을 때, 콩고물 묻힌 인절미를 입에 밀어 넣어줄 때, 털실로 목도리를 짤 때, 콩국수를 먹고 모기장 속에 들어가 자려고 누웠을 때, 찐 옥수수, 감자, 고구마를 먹을 때.
시할아버지, 시부모 모시고 살며 시동생들 결혼시키랴, 오남매 낳아 기르고 농사지으랴, 이야기할 시간은 어디서 났을까 싶습니다.
아기장수 이야기, 어머니의 조상 수로왕비 허황옥 이야기, 장자 연못 전설, 구미호 이야기, 은혜 갚은 이야기, 천벌 받은 못된 권력자 이야기.
마치 실제 일어났던 이야기처럼 실감나게 말하셨습니다. “우리 친정동네 옆에 석장골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거기 아무개라는 사람이 살았단다. 하루는……”
지금도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대학에 들어간 뒤, 그 이야기들이 어머니 친정 동네에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 민담, 설화라고 잘난 척을 했을 때, 어머니가 어리둥절해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턱을 받치고 앉아 이야기를 듣던 어린 시절 그 때처럼 그냥 어머니 친정동네 이야기인 척 속아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어머니에게서 여의주를 빼앗아 싸구려 유리구슬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어머니 얘기 속에 녹아있던 눈물, 한숨, 웃음, 고통, 분함, 슬픔들이 내 마음 속에 싹을 틔우고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동화가 되었습니다.
시간과 기회가 충분했는데도 뒷날로 뒷날로 미루기만 하다, 영영 떠나보내고 만 딸의 안타까움과 죄송스러움을 어머니가 알아 주셨으면.
부족한 작품을 칭찬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강정규 선생님과 인사동 <시와 동화 학교> 선생님들, 무어라 고마운 마음을 전할 길이 없습니다. 부모 형제들, 이영교 씨, 솔빛, 진우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