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ㅣ김기택_시인.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57년생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등
한국전쟁에서 시작되어 현재진행형인 해외 입양도 비극적인 우리 현대사가 낳은 디아스포라 중의 하나이다. 일제 식민통치나 한국전쟁 중에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밀려나가거나 끌려간 이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하고 파괴적이었는가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해외 입양인들은 이 문제에서조차 비껴나 있는 소수자이다. 하물며 그들의 문학 작품을 읽고 논의하는 일이야 어떠하겠는가.
해외 입양인의 경우 스스로 판단할 능력도 없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낯선 곳에 일방적으로 던져져 외국인이 되기를 강요받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이 성장하면서 맞닥뜨리는 심각한 정체성의 고민을 해결할 모범 답안과 선례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들의 고통은 강제로 이주하거나 끌려간 해외 이주민들의 경우에 비해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 입양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고, 설사 문제를 인식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더 시급하고 큰 문제에 가려져 사회적·문화적인 문제로 부각시킬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해외 입양이 시작된 지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입양인의 수도 늘어났고, 그들이 입양된 사회의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함에 따라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표현할 정도로 의식도 성장했다. 그들의 이중적인 삶과 정체성의 불구적인 특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도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고 그 작품의 문제성과 미적 가치도 조금씩 해외 주류 문학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가 고아를 수출해놓고 잊고 있는 사이, 그들의 목소리는 낯선 문화에 뜨겁게 용해되면서 역동적인 힘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특집은 입양문학의 특징과 중요성에 주목한 학자들의 글과 입양인 작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민은경은 입양문학을 개관하면서 입양문학이 성립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사정을 밝히고 그것이 감추어지고 가려진 우리 문학의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입양문학의 ‘발견’이라는 말에서 실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처럼 여겨져 왔던 현실에 대한 반성적인 인식도 읽을 수 있다. 유희석은 제인 정 트렌카의 두 소설을 소개하면서 두 개의 자아가 동거하는 내면 풍경을 조명하고 그 고통이 어떻게 객관화되는지 보여준다. 입양인 소설가인 제인 정 트렌카는 입양인으로서의 삶, 입양에 대한 글쓰기,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 활동 등을 생생한 육성으로 들려준다. 입양인 시인인 제니퍼 권 답스는 입양인들이 고향의 ‘상실’보다 더 근본적인 정체성의 ‘말소’를 경험하고 있다고 하면서 입양인 시인들이 어떻게 시를 통해 이 ‘말소’에 저항하고 내면화하는지를 증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