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닌 암 것도 모르면서. 칫.” 솔이는 할머니가 마당에 내놓은 화분을 품에 끌어안으며 혼잣말을 했어요. 햇살이 따가운 7월이었어요. 솔이는 화분 속 붉은 꽃잎을 들여다보았어요. 힘이 없는 것 같아요. 덥고 목이 마른가 봐요. 그러니까 이렇게 뜨거운 마당에 내 놓으면 안 돼요. 암 것도 모르는 할머니 때문이에요.
칠 벗겨진 파란 대문 옆에 손바닥만한 할머니의 정원이 있어요. 정원의 가장 안쪽에는 담장을 넘을락 말락 키가 자란 해바라기가 있고요. 그 아래로는 빨갛게 익어가는 토마토가 두 세 그루 있어요. 나팔꽃 넝쿨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요.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송화도 참 예쁘지요. 요 손바닥만한 정원을 가꾸는 건 할머니의 취미생활이에요. 그런 할머니를 구경하는 건 솔이의 취미생활이구요.
며칠 전의 일이었어요. 솔이는 정미네 집에 놀러갔어요. 정미는 새로 지은 커다란 아파트 단지에 살아요. 솔이네 집에서 큰 찻길을 건너야 하지요. 꼬불꼬불 솔이네 동네의 골목길에 비하면 아파트 단지 안의 도로는 운동장처럼 넓었어요. 높다랗게 솟은 아파트 꼭대기를 보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했지요.
정미네 집은 22층이에요. 귀가 먹먹해질 때까지 오르고 또 오르던 엘리베이터가 땡, 소리를 내며 멈추었어요. 정미가 여봐란 듯이 열린 엘리베이터 문을 나섰어요. 그리고 삑삑삑 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었어요. 솔이는 괜히 주눅이 들어 정미 뒤에 가만히 서 있었어요.
“네가 솔이구나!” 정미엄마가 솔이를 반갑게 맞이했어요. 솔이는 운동화를 가지런히 벗어 놓고 솔이네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내가 우리 집 구경시켜 줄게.”
정미는 솔이의 팔목을 잡고 이방 저방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커다란 거실에 피아노가 있는 방, 반짝거리는 텔레비전까지. 모두 신기하긴 했지만 솔이는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지금 서 있는 바로 여기가 22층이라는 생각만 하면 속이 울렁울렁 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 거렸거든요.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솔이는 작은 탄성을 질렀어요.
“우와, 예쁘다.” 솔이가 본 건 거실 바깥의 베란다였어요. 정미네 집 베란다는 온통 초록색이었어요. 갖가지 화분이 가득 놓여 있었거든요. 솔이의 발걸음이 저절로 베란다로 향했어요. 정미도 뒤따르며 조잘대기 시작했죠.
“예쁘지? 정말 예쁘지? 우리 엄마가 우리 아파트에서 화분을 제일 예쁘게 키워.” 솔이는 할머니의 정원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계절마다 갖가지 꽃이 피고 가끔 나비도 날아오는걸요. 그런데 이제 보니 이렇게 집안에다가 정원을 만들 수도 있는 거였어요. 이렇게 만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나가지 않아도 꽃을 볼 수가 있을 거예요. 솔이가 베란다에 서서 화분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자 정미 엄마가 솔이에게 다가왔어요. (중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