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완서_소설가. 1931년생
소설집 『엄마의 말뚝』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친절한 복희씨』,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두부』 등
미술 전반에 조예가 깊을 뿐 아니라 특히 종교미술에 관해서는 뛰어난 해설자이기도 한, 은퇴한 교수신부님이 이끄는 문화탐방 팀의 일원으로 이태리를 여행한 적이 있다. 이태리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모든 관광지를 제쳐놓고 미술관과 성당만을 도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첫 번째 관람지인 바티칸박물관에서 나는 이미 녹초가 돼버렸다. 바티칸은 주마간산으로 대충대충 돌아보려도 어쩔 수 없이 발길을 잡는 그림과 조각이 많아 어차피 시간을 많이 들이게 되는데 거기에 신부님의 자상하고 열정적인 해설이 더해지니 그 피로감은 몇 곱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미(美)는 사람의 정신을 순화하고 고양시키기도 하지만 절정의 미가 한꺼번에 몰려올 때는 나약한 정신을 차마 견디지 못하게 하는 위력이랄까 공격성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바티칸박물관을 시작으로 신부님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신 이태리 내의 박물관 성당, 성지 순례의 마지막 기착지는 시칠리 섬의 팔레르모였다. 11일 동안의 행복하고 피곤한 여행을 마치고 귀국을 앞둔 마지막 밤의 저녁 식사시간이었던가, 신부님이 불쑥 말씀하셨다. 당신이 지금까지 보아오신 성화 조형물 중에 으뜸으로 아름다운 것은 철원 도피안사의 철불(鐵佛)이었노라고. 절 이름도 생소했고 철불은 더군다나 본적도 없었지만 신부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때의 기분이 그랬다. 그건 국수주의하고는 다른 거였다. 왜 있잖은가. 온갖 기름진 산해진미를 배 불리 먹고 나서 그 포만감을 이기지 못해 한다는 소리가 뭐니뭐니해도 맛 중의 으뜸은 어릴 적 우리 엄마가 우거지 넣고 끓여주던 된장찌개 맛이라고 말할 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받아들이는 쪽의 느낌은 그렇다 해도 말씀하시는 신부님의 태도는 그 이상의 진정성이 있었던 것 같다. 신부님 역시 피곤한 안색에 향수어린 생기가 떠올랐다. 심미안처럼 독창적이고 편협한 것은 없기 때문에 함부로 추종할 일은 아니지만 귀국 후에도 문득 문득 그 말씀이 떠오르곤 했다. 심미안이 뛰어난 분은 칭찬에도 인색한 법인데 더군다나 가톨릭 신부님이 어떻게 불상을 그렇게까지 극찬할 수 있을까. 속으로 한번 꼭 가봐야지 벼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냥 잊고 지내다가 금년 어느 화창한 봄날, 큰딸이 운전하는 차로 드라이브 삼아 교외에 나간 적이 있는데 아마 경기 동북부 쪽이었던 것 같다. 어느 지점에선가 철원으로 가는 도로 표지판이 나왔다. 철원은 38선 이북 땅이었다가 휴전이 되면서 휴전선 이남 땅이 된 곳으로 북녘 땅이었을 때의 노동당 당사 건물의 골격이 음산하게 남아있는 것을 아주 오래전에 본 기억 외엔 나하고는 전혀 연고가 없는 땅이었다. 철원 가는 길이 나오자 철원은 곧 철불을 연상시키면서 반가운 생각이 들어서 그리로 가보자고 했다. 신부님한테 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불이 있는 도피안사(到彼岸寺)에 가볼 작정이었다. 절 이름은 또 얼마나 특이하고 아름다운가. 살아서 도달할 수 있는 피안은 어차피 찰나의 환상일 뿐일 테지만 말이다. 도피안사는 철원에서도 북쪽 구철원 쪽에 있었다. 내비게이션 덕에 헤매지 않고 직통으로 피안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세월에 아름답게 마모된 석불이나, 탱화나 벽화 속에 화려하게 색칠한 부처님, 또는 전국의 수많은 사찰 연화대에 높이 올라앉은 눈부시게 금칠한 부처님은 많이 봐왔지만 철불은 처음이었다. 눈부시지 않아서 마음 놓고 쳐다볼 수 있었다. 내 나름으로 본 철불(공식명칭은 철조비로사나불, 국보 제63호)은 인자함보다는 당당함이, 초월적이기보다는 현세적인 인상이었다. 우리가 자비라고 부르는 덕목 안에 내재한 위선적인 것을 철저하게 도려낸 것 같은 인상은 부처님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신라인이 이상으로 삼았던 인간상을 구현한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신라시대와 신라인에게 친근감까지 느껴졌다. 그 이상으로 감동했다면 그건 아마 과장이나 남의 감정의 모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드문 철불을 모신 도피안사는 해방 후엔 38선 이북 땅이었다가 정전 후 휴전선 이남 땅이 된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57년에 우리 육군이 지금의 아담한 절 모습으로 재건한 것으로 돼있는데 그 재건 설화에도 땅속인지 계곡인지에 반쯤 묻힌 철불이 발견됨으로써 비롯된다고 전해진다. 폐사지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철불은 발견 당시 하늘 가릴 천장 하나 없는 노숙의 신세였지만 신라 경문왕 5년(서기로 865년)에 조성됐다는 조상명기(彫像銘記)를 뚜렷이 간직하고 있음으로써 국보 반열에 올랐다.
그때 다녀오고 나서 다시 한 번 가봐야지 벼르기만 하고 아직 못 가봤는데 자꾸 그쪽으로 마음이 끌리는 까닭은 신부님의 최고의 찬사가 맞나, 나의 친근감이 맞나 비교해 보고픈 유치한 발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에 도피안사가 나오는 걸 찾아 읽어봤는데 이런 구절이 나온다.
‘별생각 없이 불상을 보아온 사람이라면 그 부처가 그 부처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당신이 본 불상의 모습은 오직 그 불상만의 모습일 뿐이다. 천이면 천, 만이면 만 개의 불상이 제각기 다른 모습이다. 부처의 모습이란 곧 절대자의 모습이다. 그 절대자는 한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절대자의 상도 한 가지가 아니다. 모든 불상은 그것을 제작했던 시기와 발원했던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절대자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치면 신부님도 옳고 나도 옳다.
도피안사에 다시 가볼 것 없이 철불과 재회할 기회가 있었는데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후였다. 텔레비전으로 연일 스님의 생전의 모습이나 일화를 비춰줄 때였는데 스님의 속세에서 마지막 거처였던 오두막도 나왔다. 오두막 벽에 사진이 한 장 붙어있는데 철불 사진이었다. 스님의 거처가 서발 막대 거칠 것 없는 무소유 그 자체였다는 것은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이미 전해들은 바였지만 어쩌면 작은 부처님 한 분도 안 모셨을까. 하긴 스님은 길상사 주지스님이기도 했으니 스님들이 법당 외에 침소를 꾸밀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화면으로 본 철불이 도피안사의 철불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유홍준 교수에게 들은 바로는 또 다른 철불(858년에 제작된 전남 장흥 보림사의 철조비로사나불)이라고 했다. 남한 땅에 철불이 한 분뿐인 줄 알았는데 또 한 분 있다는 것도 역시 유홍준 교수를 통해서였다. 법정스님의 마지막 거처 벽에 남아있던 불상 사진이 꼭 도피안사 철불이 아니어도 반가웠다. 두 제조연도가 10년도 안 되는 근소한 차이가 날 뿐인 두 불상은 신기할 정도로 서로 닮아 있었고, 더 신기한 것은 법정스님이야말로 신라시대 철불과 가장 닮은 골상과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워낙 준수하게 타고 난 골상에 위선과 세속의 헛된 욕망의 군살이 붙는 걸 철저하게 경계한 엄격한 수도의 결과일 것이다.
법정스님을 공적인 자리에서 뵌 적은 몇 번 있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까이에서 뵀을 적에도 다른 불자들이 하는 대로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을 뿐 인사말을 건네거나 하지 않았다. 길상사에 법문을 들으러 간 적도 없다. 그분이 남긴 수많은 저서 중에 서너 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더 여러 권 있었는데 스님이 입적하신 후 빌려달라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내주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책은 읽으라고 있는 거니까 아깝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단 한 번 사사로운 자리에 스님과 함께 초대받은 적이 있다. 내가 종종 고향집처럼 들르는 곤지암의 한 도예가의 집이었다. 그 도예가는 흙 장난이 좋아 흙으로 도자기를 빚고 농사도 짓는다고 말하지만 농사도 도예도 장난이 아니다. 농사도 밭농사 논농사 합해 거느리는 식솔은 물론 친지들에게 무공해 농산물을 아낌없이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는 알부자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같잖은 인간들을 깔아뭉개기 선수인 독설가고, 자기 작품에 자부심이 대단한 장인이다. 도예가가 고집하는 옛날식 가마(窯)에 불을 지피는 날은 친지 애호가 문하생들로 그의 집 너른 마당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날은 고사도 지내고 음식도 나눈다. 법정스님은 특히 그가 만든 다기를 좋아하셔서 곁에 두고 애용하신다고 그가 자랑삼아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가 만든 다기의 특징은 겉은 질박한 흙빛이고 안은 티끌하나 없이 청명한 하늘빛이다.
그날도 아마 가마에 불붙이는 잔치가 있는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야외에서 사람구경도 하고 불구경도 하고 싶었지만, 그날은 특별하게 작업실 이층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법정스님과 스님을 모시고 따라온 젊은 스님 두 분이 앉아계셨다.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의 바깥보다 훨씬 어려운 자리가 될 것 같았지만 그 즉시 돌아 나오진 못하고 합장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스님 옆자리에 앉았다. 거북하지만 약간은 얌전을 빼고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옥색 비단 보자기에 싼 상자를 든 중년부인이 이층으로 올라왔다. 그는 불 때는 걸 보러 온 게 아니라 스님이 납신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게 확실했다. 그 부인이 입은 치마저고리는 더워오는 계절에 맞는 수수한 숙고사나 은조사 계통의 옛날 비단이었던 것 같다. 부인의 한복태가 좋아서 그랬던가, 근래에는 그렇게 아름답고 품격 있는 한복은 처음 본 것처럼 느꼈다. 그것만으로도 눈부신데 부인은 들고 온 상자를 스님 앞에 공손하게 받치고 나서 날아갈듯이 가볍고 우아하게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그게 불자들이 고승에게 드리는 예법이라는 걸 나는 나중에 들어서 알았다. 재배를 마치고 난 부인은 옥색 보자기를 풀고 상자 뚜껑을 열었다. 약과였다. 감탄사가 나오게 장식이 아름답고 기름이 잘잘 흐르는 약과였다. 절로 침이 넘어갔다. 우리 고향(개성)에선 부잣집에서 딸을 시집보낼 폐백 음식으로 약과를 썼다. 딴 음식도 썼겠지만 약과는 특히 손이 많이 가고 비싼 재료가 많이 들 뿐 아니라 실패할 확률도 많아 각별히 신경을 써서 친척 중에서도 솜씨 좋은 이가 불려 다니기도 하는 걸 봐왔기 때문에 한눈에 그 약과에 기울인 부인의 정성과 솜씨를 알아볼 수 있었다.
스님은 말없이 그 아름다운 약과 상자를 내 앞으로 밀어놓으셨다. 맛보라는 뜻을 눈으로만 나타내시면서. 아마 몇 살이라도 연장자에 대한 예우였다고 생각된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 윤기 나는 약과 한 개를 손으로 집으려는 찰라 부인이 질겁을 하며 약과 상자를 다시 스님 앞으로 밀어놓는 것이었다. 감히 부처님에 올린 신성한 것에 먼저 손을 대려는 무례에 대한 질책과 자신의 정성을 몰라주는 스님에 대한 섭섭함이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그 부인과 스님, 나 이렇게 이상한 삼각구도 속에서 가장 무안하고 난처한 건 내 입장이었다. 나는 얼른 손을 오므리고 얼굴을 붉혔다. 스님은 말없이 담담한 표정 하나 흔들림 없이 당신 앞으로 돌아온 상자에서 약과를 하나 집어 드시고는 다시 넌지시 상자를 내 앞으로 밀어놓으시는 것이었다. 나도 스님처럼 약과를 한 개 집어 들고 나서 상자를 다시 스님 앞으로 돌려드렸다. 스님은 내가 먼저 약과를 맛보기를 기다리시는 것 같길래 그렇게 했더니 스님도 그제서야 약과를 입에 넣으면서 약과 상자를 다른 스님들 앞으로 돌리시는 것이었다. 그때 스님의 태도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 부인도 섭섭하지 않게 나도 무안하지 않게 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고 약과 맛도 잊었지만 그때의 그 물 흐르듯이 유연했던 넌지시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법정스님은 대중적인 인기가 많은 스님이었다. 정기적으로 행하신 길상사에서의 법문을 들으러 중생들이 구름 같이 모여들었고 법문을 듣고 정화되고 깨우친 느낌은 혼자만 간직하기 아까운 듯 열정적으로 전파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그 많은 저서 중 내 개인적으로는 법구경 해설을 가장 좋아하고 딴 저서들도 사람의 도리를 부처님 말씀에 비추어 그분처럼 쉽고 따스하게 설한 분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분은 일관되게 무소유를 설했을 뿐 아니라 몸소 실천하셨고 마지막 모습까지 그걸 실천적으로 보여주셨다. 관도 없이 몸을 덮은 천 위에는 다만 比丘 法頂(비구 법정) 네 글자만 있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넉자, 비구 법정은 우리의 관습화된 진부한 정신을 찌르고 전율스럽게 한다. 평생을 두고 설한 무소유의 완성, 절정을 보는 느낌이다. 저서를 절판시키라는 유언도 남기셨다. 이승에서 진 말의 빚이란 말씀 속엔 마지막 길을 철저하게 자유롭고자 하는 그분의 결곡한 성품이 느껴지는 한편 나 또한 글을 많이 퍼뜨린 저자의 입장에서 시시로 엄습하는 행여 내 글에 사기성은 없었는지, 군더더기나 동어반복은 없었는지와 같은 불안과 말이나 글로 표현되어질수록 진실과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 읽히고 싶다는 욕망 안에 도사린 함정 등을 돌아보게 했다.
유언이 지켜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고, 그것이 출판계의 도덕성의 문제인지 법적인 해석의 차이인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중생이 마음으로부터 그 분의 말씀을 목말라 한다면 책이 계속해서 출판되는 걸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절로 발생하게 되는 인세라는 돈의 문제가 과욕이나 불필요한 다툼이나 불화를 유발시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스님은 길상사 주지로 있었고 ‘맑고 향기롭게’의 화주이기도 했으니까 사후에도 그분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좋은 일에 쓰이리라 믿는다. 생전에도 스님은 생색을 내가며 남을 돕는 걸 원하지 않으셨다. 넌지시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례를 나는 여러 건 전해 들어서 알고 있다. 넌지시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자비도 되겠지만 기독교가 최고의 미덕으로 치는 ‘오른 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에 해당하는 게 아닐는지.
스님은 연예인 못지 않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면 누릴수록 그걸 버거워하고 때로는 지겨워하면서 한시도 공부와 고독한 자기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혼자만의 사색과 공부의 시간을 얼마나 원했는지는 불일암이 번다해지자 더 깊은 산속 오두막에 숨어 사신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어쩌면 깊은 산 속 옹달샘이고자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깊은 산 속 옹달샘은 자기만 더럽혀지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존재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깊은 산 속에 옹달샘이 없다면 산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가 어떻게 목을 축이고 길을 찾아 살아 돌아 올 수 있겠는가. 작은 옹달샘도 차면 어차피 흐르게 돼있다.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 마침내 큰 강에 이르렀지만 큰 강은 이미 오염물질로 더럽혀져 죽어가고 있다. 사람의 목숨에도 생과 사 사이에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臨界點)이라는 것이 있듯이 죽어가는 강에도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부로 오염시켜도 아직은 강이 아주 죽지 않고 살아날 가망이 있는 건, 작지만 어디선가 졸졸 흘러드는 맑은 물이 아슬아슬하게 강의 임계점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어디엔가 높은 정신이 살아있어야 그 사회가 살아있는 것과 다름없는 이치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