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살면서 한국문학 소개 및 번역에 거의 십여 년 이상을 바쳐온 필자는 현지 독자들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문학 장르 혹은 작품을 찾기 위해 늘 고민해 왔다. 언론이나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일본이나 중국의 문학작품들을 보면 괜히 질투가 나는 반면 번역 출판되었다는 데만 종종 의미를 갖는, 서점가에 선조차 보이지 못하거나 아니면 한 구석진 곳에 얼마간 꽂혀있다 사라져가는 대부분의 한국작품들을 보면 속상하기도 했다. 이에, 장르를 망라하고 보다 많은 프랑스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는 한국 작품을 찾아내어 현지에 소개하는 것이 필자의 주 관심사가 되었다. 서점가에 들르면 반드시 아시아 문학코너를 훑어야만 직성이 풀리고 문학 잡지들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독자와 전문가의 주목을 받는 작품들의 주제와 테마를 열심히 체크한다.
한국의 문단 상황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추리 및 서스펜스 소설이 결코 저질 또는 통속 문학으로 폄하되거나 가치저하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반 소설 못지 않게 탄탄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고, 비평계의 관심 또한 동등하게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필자의 관찰에 의하면, 다양한 나라의 추리물들이 심심찮게 소개되고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었는데, 이는 문화와 관습의 이질성을 뛰어넘는 추리 형식의 플롯이 보편성을 유지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판단되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필자는 2007년 초부터 한국의 추리물을 찾기 시작했고 당시 한국문학번역원 작품선정 목록에 올라와 있는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품의 배경인 조선의 18세기 사회상이 현지 독자들에게 너무 낯설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우려도 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튼튼한 추리형식의 플롯에 커다란 기대를 걸었다.
다행히도 이런 필자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우선 필자의 공동번역자인 프랑수아즈 씨가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어서 이 책을 출판한 프랑스 출판사 편집인인 필립 피키에 씨도 요약문과 번역 샘플을 보고서 바로 출판 승낙을 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된 지 약 2개월이 된 지금 서점가의 반응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고 (심지어 어떤 대형 서점은 이 책을 인터넷 사이트에 베스트셀러 작품들과 나란히 선전할 정도이다) 이름난 프랑스의 유명 문학지인 Lire와 Page, 그리고 몇몇 다른 작은 잡지들에도 비평이 실렸을 정도이다. 특히 Page에 실린 기사는 ‘이 책은 단순한 추리 소설을 뛰어넘는 야심작이며, 문화적인 이질감과 시간적인 격차에도 불구하고 독자로 하여금 아주 쉽게 18세기의 조선사회로 들어가게 하는 힘을 지녔음은 물론 풍부한 반전과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가졌다’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Notes Bibliographiques라는 잡지는 ‘이 소설은 아주 매혹적이면서 그리 복잡하지 않은 추리형식의 플롯이며 생생하고 우아한 대화와 투쟁 장면 그리고 섬세하고 살아있는 듯한 등장 인물들이 빛나는 작품이다……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라고 칭찬했다.
『방각본 살인사건』의 번역은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많은 시간과 숙고를 요한 작업이었다. 허구와 사실을 결합한 역사 추리소설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실들을 일일이 검증하는 작업,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고전 작가 및 작품 그리고 그 시대적인 상황 파악, 고시 번역, 한자 문구 풀이 등 상당히 깊고 까다로운 연구작업을 요했다. 다행히도 작품의 튼튼한 플롯과 작가의 명쾌하고 정성들인 문체 덕분에 전체적으로 한국 문장의 의미를 불어로 전달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군데군데 나오는, 한국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모르는 서양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에 대해서는 공동 번역자와 많은 토론 과정을 거쳐 주석 및 부연 설명 등을 활용해 프랑스 독자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번역이 되도록 노력했다. 또한 작가, 한국 편집인 그리고 프랑스 편집인과의 상호 의견 교환을 통해서 현지 독자들에게 자칫 난해할 수 있거나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하는 부분들은 과감히 삭제했다. 이런 꾸준하고 지속적인 의논과 중재 작업이 있었기에 오늘날 프랑스 독자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조선이라는 머나먼 나라의 18세기 사회에 별 이질감 없이 진입할 수 있었으리라.
아시아 문학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필립피키에 출판사 내에 2007년부터 한국문학 컬렉션을 맡아서 관리해오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제 한국문학을 프랑스에 소개하는 데 있어 좀 더 유리한 입장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번역가인 동시에 현지 편집인이기도 한 필자의 꿈은 그림 앨범 및 아동 소설에서 장르를 망라한 성인 문학에 이르기까지 좀 더 다양한 한국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며 3년 전부터 이를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다. 또 하나의 꿈은 한국 작품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우선 잘 팔리는 작품들이 있어야 현지 출판사들이 계속적으로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러한 작품들에 힘입어 소위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순수 문학도 소개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상업성이 있다
함은 현지 독자들에게 널리 읽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 문학으로서 현지 수용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장르는 판타지와 추리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이라는 지역적 생소함과 문화적 이질감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보편적 주제와 플롯 구성 때문이다. 판타지 소설로서 프랑스 아동문학 시장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 한 좋은 예가 바로 김진경 작가의 『고양이 학교』이다. 이러한 성공이 오늘날 프랑스의 여러 아동문학 출판사들로 하여금 한국 작품들에 눈을 돌리게 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십여 년 전에 비해 한국 문학의 프랑스 진출이 양적, 질적 면에서 상당한 진보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프랑스의 많은 출판인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문학이라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 작품에 대해서조차도 한국 재단의 재정적 지원이 아직까지도 필요함을 말해준다. 김탁환 작가의 방대한 작품 『방각본 살인사건』이 프랑스에서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필립피키에 출판사와 프랑스국립도서센터의 지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대산문화재단의 재정적 기여가 컸음을 밝힌다.
『방각본 살인사건』은 단순한 추리 소설을 뛰어 넘어 한국 18세기의 정치, 문화, 사회, 법률 그리고 당시 지성인들의 정서와 고민들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독특한 수작이다. 필자는 이런 훌륭한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한 데 대해 그리고 그에 대한 현지의 호평에 대해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며 앞으로도 상업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들을 찾아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필자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방각본 살인사건』을 불역(프랑수와즈 나젤 공역)하여 2010년 프랑스 필립피키에 출판사에서 출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