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이 당선되었다. 이른바 등단이다. 그때 나이 서른다섯, 7년여 직장생활을 하다 문득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 1년 남짓 집중적으로 창작 수련을 거친 후의 달콤한 과실이었다. 열다섯 살에 처음 소설을 써 본 때로부터 치면 창작에 마음을 둔 지 20년만이었다. 등단 경로가 많아지면서 요즘엔 마흔을 훌쩍 넘어 창작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서른다섯만 해도 여전히 늦깎이라 할 만하다. 문학의 꿈을 한 시절의 추억으로만 기억하며 조금씩 생활인으로서의 터를 잡아가던 때, 매월 카드 할부금 신경 쓰고 내 집 마련 계획에 충실해야 할 시기에 덜컥 등단이었다. 이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 거지?
아무려나 등단을 하고 보니 싱숭생숭했다. 일 저지른 김에 몇 달 후에는 직장까지 그만두었다. 대한민국에 작가 한 사람 늘었다는 걸 가족과 친구들 몇 명 말고는 알지 못하는데 유일한 생계수단인 직장을 그만두다니, 너무 들떴다. 이래서 부모님들은 어린 자식이 글 나부랭이나 끼적거리고 있으면 ‘커서 뭐 되려나’ 근심하는 것이다.
아무려나 전업작가가 되었다. 다른 직업 없이 글로만 먹고살겠다는 선언 혹은 객기였다. 그 후 어떻게 먹고살았는지는 생략한다. 요행히 어느 소설이 영화화되어 목돈 원작료를 받았던 해에 개인소득세를 내본 것이 등단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에 글값으로 세금 내 본 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기야 소득세 면제 대상인 가난한 소설가라는 것에 은근히 자부심마저 느끼며 살았으니 새삼 생계 문제의 고단함을 넋두리 할 처지는 아니다. 몇 해 전에야 번쩍 정신을 차려 대필 사무실을 차리고는 지금껏 남의 글 써 주는 일로 끼니를 연명해 온 일도 자세히 할 이야기는 아니다.
감히 ‘나의 삶, 나의 문학’ 이야기는 못하겠고, 창작 활동 언저리에 늘 깔려 있던 문학적 고민들 몇 마디 해보려 한다. 작가라는 호칭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나름대로는 진지하고 비장하게 창작생활을 해 온 지난 시절, 나는 문학이라는 걸 어떻게 생각했고 무엇에 가장 고민했던가 하는 것. 등단 초기에 내 어깨를 눌렀던 건 ‘공인 의식’이었다. 문단 말석에 이름 하나 올렸다고 공인 의식이라니 우습다. 어쨌거나 당시 내 고민은 심각했다. 이제부터 내 글을 누군가 돈 주고 사 읽는다는 것, 친구들에게 읽혀주며 으쓱하고 말 글이 아니라는 것, 말하자면 프로 세계에 들어섰다는 것. 조심스러웠다. 조금 과장하면 무서웠다. 내가 쓴 글이 과연 돈을 내고 사 읽을 만한 글인가?
삶과 죽음, 존재, 이념, 정의, 행복, 초극, 신성. 그 동안 친구들끼리는 이런 심오한 명제들을 잘도 갖고 놀았고, 남보다 무언가 조금 더 아는 체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삶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알고 있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어떤 ‘觀’이라는 것을 나는 갖고 있기나 한 걸까? 글 이거 아무나 쓰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고등학교 문예반에서 나눠 읽는 글과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공적인 지면에 글이 실리는 건 하늘과 땅만큼 차이나는 일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진정한 문학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이다. 문학이 이 세계에 무엇인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되어야 하는지, 문학이 정녕 삶의 구원이 되고 존재 탐구의 열쇠 같은 것이 될 수 있는 그런 대단한 것이라면 나에게 과연 그것을 수행할 자질이 있기는 한 건지, 나는 그런 물음을 내 자신에게 던지며 ‘문학과 세계’ 의 관계를 사유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내가 구체적으로 사유했던 건 ‘세계관’ ‘치열성’ ‘주제의식’ 이런 것들이었다. 문학수업을 받던 때에 귀 따갑게 들어온 말이었으나 정작 나의 글쓰기와 진지하게 연계시켜 보지는 않았던 단어들이다. 숱하게 들어온 이 말들을 나는 등단하고 나서야 내 문제로 인식하였다. 많이 번민했다. 나의 무지와 한계에 대하여 나름대로 맞장을 뜨며 나를 밀어붙였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위에서 말한 것들이 문학과 창작행위에 어떤 식으로 걸쳐지는지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되었다.
첫 소설책을 갖게 되었다. 작가후기를 쓰라고 한다. 1인칭으로 던지는 작가의 말이다 보니 나는 또 ‘문학과 세계’를 생각해 본다. 며칠을 끙끙거려 적절한 비유 하나를 얻었다. “내 소설이 구운몽이 되기를 바랐다.” 이렇게 썼다. 파란만장하게 한 생을 살고 나니 모두가 한여름 오후의 꿈이었다는 것, 깨고 나자 꿈에서 누렸던 부귀와 오욕칠정이 다 부질없음을 깨달았다는 이야기. 구운몽처럼, 한 편의 소설은 스스로 생 한 번을 산 듯 한 감흥을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그랬을 때 독자는 저 구운몽의 사내처럼 불현듯 인생의 실과 허를 깨닫는다고, 그것이 문학의 가치요, 효용성이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또 그런 소설이야말로 독자 이전에 작가 자신을 먼저 변화시킬 것이라고, 좋은 소설은 쓰기 전과 후의 작가가 달라지는 그런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등단 5년이 넘어가자 ‘프로 작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초보 작가는 자기 이야기를 쓰고, 프로 작가는 비로소 픽션을 창작한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자기 경험과 정서에서 나온 것이 아닌, 이 세상에 현재 어떤 이야기가 필요한가를 통찰한 끝에 만들어지는 본격 3인칭 시선의 본격 픽션, 그것이 프로 작가다운 창작이라고 생각했다.
등단 10년쯤에 했던 고민은 넘어간다. 늘 그랬듯 진지, 엄숙했고, 늘 그랬듯 머리만의 사유였다. 가짜 사유는 아니었으나 흔연치 않았고, 무언가 자꾸 정리하려는 것은 안 좋은 버릇이라는 느낌이 조금씩 들었다. “일단 말로 표현된 것은 처리된 것이다, 이게 바로 문인들이 내세우는 신조입니다. 전세계를 말로 표현하면 그것으로 전세계는 처리되고 구원된 것이 되며, 따라서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이지요” 라고 토니오 크뢰거는 이미 오래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올해 초에 문학상 하나를 받았다. 수상소감을 준비하라는 말에, 곧 기자 인터뷰도 있을 거라는 말에, 아직도 버릇을 고치지 못한 나는 또 ‘문학과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선생님은 문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이라도 나오면 무엇이든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았다. 문학, 이 물건은 대체 무엇일까? 어디에 쓰는 걸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람들의 내 집 마련 꿈도 하찮게 보고, 돈 떨어지면 죽으면 되지 뭐, 하는 허황한 말이나 던지며 매달려 온 문학, 이것이 대체 뭐지?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 같은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하는 대답을 준비했다. 거리에서 누가 철철 울면서 걸어가면 사람들이 돌아본다. 왜 울까? 무엇이 저리 서러울까? 어디로 가는 걸까? 사람들은 그의 사연을 궁금해 하고, 자기도 언젠가 저리 울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잠깐 연민을 느끼고, 사람들 다 비슷하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일이 잘 풀려 울지 않게 되기를 빌어주기도 하고, 그리고는 자기 갈 길을 간다. 일 분만 지나면 잊는다. 삼 년 후쯤에 느닷없이 떠올릴 수도 있다. 울면서 걸어가던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게 서로 연민을 나누고, 자기와 다른 생을 이해해보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것이 문학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보면 문학은 특별한 길이 아니다. 위로나 이해는 구두를 잘 고치면서 그 일을 좋아하는 어느 구두수선공도 할 수 있다. 문학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면 다른 길을 걷는 사람도 할 수 있다. 문학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길이라고 말한다면 꼭 과장된 도취는 아니다. 그러나 세상사람 누구나 자기만의 십자가를 지고 있다.
그저 다행이라면, 인물을 만들고 이름을 붙여주고 사연을 만들어주는 이 일을 내 스스로 재미있어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재주도 없는 터에 이 일을 직업으로 가져도 좋을 만큼은 남보다 조금 재능이 있는 듯 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쓰고 있기는 할 것이다.
이제는 나의 인물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보려 한다.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나, 함께 걷고 있으니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길에서 걸어오다 잠시 스치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흔들어 줄 것이다. 그의 등에도 어김없이 매달려 있을 십자가에 경의를 표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 집에 이르기를 기도해 줄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같은 집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