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로부터 ‘언제부터 글을 쓰게 됐는가?’ 혹은 ‘왜 글을 쓰는가?’ 하는 물음만큼 작가들에게 곤혹스러운 질문은 없을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와 ‘왜’에 대한 정확한 연유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등단한 이후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적절한 답을 찾기 마련인데, 스스로에게 가장 그럴 듯한 답을 찾아, 스스로 기억을 왜곡 시키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자신의 기억을 정당화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낸 답을 얘기하곤 한다. 비교적 모범적인 답안을 찾기 마련인데, 물론 내 경우도 마찬가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 질문이 없다하더라도 작가는 종종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스스로 ‘내가 왜 작가가 됐을까’ 고민에 빠져든다. 자신이 써내는 글이 ‘과거의 기억 어디쯤에서 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때론 자신이 ‘작가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한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고심하며 망각의 바다가 되어버린 과거 저편을 어슬렁거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잠잠하기만 했던 내면의 수면 위로 볼록 튀어 오르는 것들은 도무지 기억하고 싶지 않고, 잊어버리고 싶고, 생각하기도 싫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모두 다 아픈 기억들이다. 그것들이 자신을 성스럽고 고통스런 고행의 문학으로 인도한 듯 느껴진다. 문학의 시작은 그 고통스런 기억에 대한 복수에서 시작된 것 같다.
솔직한 작가들은 정직하게 이제는 하나의 콤플렉스가 되어버린 기억들을 자신의 작품, 작가가 된 자신의 원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담담하게 아픈 기억과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작가 개인의 내면을 작품 안에 풀어놓는다. 한 작가의 무수한 작품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단 하나의 작품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가능성이 크다. 독자들은 작품 안에서 작가의 개인적인 내면의 고통을 보게 된다. 독자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각인된다. 무수한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인 콤플렉스나, 아픈 기억의 트라우마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니, 나는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이후에 발생한다. 상처받은 내면이 문학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동기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평생 동안 동기만으로 글을 쓸 수는 없다는 데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기억의 고통과 내면의 상처는 작품의 집필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치유된다.
독자들은 작가 내면의 고통을 보고 한 작가의 이미지와 작품의 이해를 연관시키고, 이는 때때로 성공적이지만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지는 하나의 테마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처음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성스러운 고해성사와 거듭남 이후, 작가들의 촉수가 외부로 향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즉, 작가는 고해성사 이후, 타인의 고통에 주목하게 된다. 자신을 지배했던 내면의 상처가 완벽하게 치유되었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 변이되는 과정이 작가에겐 중요한 과정이다. ‘타인’ 안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작가의 탄생이라는 말은 이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말일 것이다. 독자들은 작가를 기억하게 된다. 이른바, 작가의 탄생. 작가는 타인의 고통을 재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읽게 된다면 독자들은 작품을, 그리고 작가를 기억하게 된다. 자신의 내면에 대한 고해성사로 이루어진 작품은 작품이 남지만, 타인의 고통을 재현한 작품은 작가가 남는다. 우리가 아는 리얼리즘을 이렇게 이해하면 너무 오버하는 것인가.
운 좋게도 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아니, 이것도 조작되고 과장된 기억일 지도 모를 일이지만, 분명 나는 서두에 말했던 질문을 받을 때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우연히 만난 한 여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적이 있다. 명절 때마다 고향에서 오랜만에 해후한 친구들과 연례행사처럼 벌이는 놀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커피를 배달시켜 먹는 일이었다. 여관방을 잡고 대여섯 되는 친구들과 나는 밤새 카드놀이를 하며 귀향의 심심함을 달래고는 했다. 샌님들이라 커피배달 온 여자들과 말도 잘 섞지 못했지만 시도만큼은 언제나 열성적이었다. 여자가 커피를 배달해오면 둘러앉아 점잖은 질문 같은 것을 쏟아놓곤 했다. 사실 그녀들에게 우리는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다. 달랑 커피 몇 잔을 시켜놓고 오래 잡아두려고 하니 그녀들은 언제나 시간을 재촉하곤 했다. 그날, 단편 「구두」의 ‘안마사 주혜’를 만났다. 소설에서는 직업을 안마사로 만들었지만 실제는 다방 종업원이었다.
여자는 내가 살면서 본 여인들 중 가장 박색이었다. 그것이 우리들을 당황케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덤덤하게 커피를 타던 여자가 갑자기 자기의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친구가 나를 소설가라고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잘 듣고 자기 얘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부탁도 이어졌다.
요약하면 여자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신에게 농약을 사오라고 심부름 시켰는데, 농약을 사다주자마자 그 자리에서 벌컥벌컥 마시고 자살을 했다. 모두 다 가난 때문이었다. 올려다보는 여자의 눈에 잠깐씩 햇빛이 어려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고 했다. 여자가 일곱 살 때였나, 어린 여자는 고통에 겨워 무릎을 꿇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 등 위로 가만히 내려앉은 햇살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고.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을 삼백만 원에 팔아먹은 얘기도 들려줬다. 여자가 커피 배달을 해야만 하는 이유. 여자는 곧 섬으로 팔려갈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빚이 늘어 이제는 도시 어디에서도 예쁘지 않은 자기를 사줄 곳이 없다고 했다. 한편으론 자기가 예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도 말했다. 그녀의 표현대로 ‘그 더러운 일’이 얼굴이 예쁜 여자들보다는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마지막 술잔을 넘기며 말했다. “섬이라고 뭐 다르겠어요. 사람들 사는 세상이 다 그게 그거지.” 여자는 한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소설만 쓰려면 박색의 여자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환경이 만들어내는 개인의 비극은 고도화된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부에서 소외된 환경은 개인사의 비극을 양산해낸다. 비루한 환경과 사회에서 자꾸만 내몰리며 고통 받는 그들을 내가 구원할 수는 없지만, 소설 안에서 그들의 삶을 다시 되살릴 수는 있다고 믿는다. 독자들이 내게 종종 화까지 내면서 묻는다. 그렇게 인물들을 비극적인 상황에 던져 놓기만 하면 어떡하냐고.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대안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론 흥분하고 화나고 분노하지만, 또 어떠한 대안에 동조하지만 그것을 창조해내는 일은 내 것이 아님이다. 그것은 정치와 법, 시스템의 몫이다. 문학으로는, 글로는, 소설로는 아무런 대안을 그려놓을 수가 없다. 사람들을 구원할 수가 없다. 본디, 문학이라는 것이 온통 질문만으로 채워진 까닭이다.
그녀가 말했던 ‘사람들 사는 세상이 다 그게 그거지’라는 말이 화두처럼 울리던 때가 선명하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은 그와는 좀 달랐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를 만난 이후, 그녀의 세상이 소설의 공간이 되어야한다고 믿게 되었다. ‘타인의 고통’을 처음 이해한 순간, 내 소설의 시작이다. 그녀가 내 글쓰기의 스승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