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아 씨의 인터뷰 요청을 기쁘게 수락합니다. 그리고 집필실에서 인터뷰 끝나고 바닷가 생선 식당에서 함께 저녁 식사하면서 그 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나 할까요?”
필자가 모 방송사의 한국전쟁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로 터키 참전에 관한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게 되어 터키를 방문하는 김에 오르한 파묵 씨에게 ‘한국과 『순수 박물관』’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해외의 많은 언론이 소설 『순수 박물관』과 관련하여 파묵 씨에게 이스탄불에서의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그는 소설과 같은 이름의 ‘순수 박물관’ 설립 준비, 컬럼비아 대학에서의 강의, 집필 등등의 이유로 매번 인터뷰를 거절해온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큰 기대를 걸지 못하고 있던 차에 그의 수락 메일을 받고서는 여간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아니었다.
많은 작품들을 통하여 일관되게 정체성의 탐구를 천착해온 파묵 씨이기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유명인과 이벤트성 인터뷰, 알맹이 없는 인터뷰를 위한 인터뷰가 아니라, 그의 눈에 비친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하여 파악해보는 시간을 갖고, 한국과 터키, 특히 그의 조국인 터키가 한국을 위해 참전한 전쟁의 의미에 대하여 그의 견해를 살피며, 마지막으로 그의 최신작이며 한국에 소개가 임박한 『순수박물관』에 대한 인터뷰를 계획하고, 그 성사를 간절히 꿈꾸어 왔었다. 다음은 파묵 씨와의 인터뷰 요약문이다.
이난아 ㅣ 파묵 씨는 두 번 방한한 적이 있으셨는데,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떠신지요?
오르한 파묵 ㅣ 한국은 많은 면에서 터키와 닮았다는 인상을 가졌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중심부에 속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역사가 있으며, 자신들을 충분히 알리지 못하고, 자신의 문화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약간은 불만스러운 면이 있다는 점에서 터키와 비슷하다는 의미입니다. 터키 바로 옆에 유럽 문명이 있듯이, 한국도 중국과 일본이라는 존재가 있지요. 한국은 이 나라들과 관계를 가지며 정체성을 모색하려고 했고, 그 결과 현대에 그 고유성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에 대해 일련의 관심을 가졌던 것은, 제가 어렸을 때, 터키가 한국전쟁의 참전을 계기로 해서 터키 사회에 한국과 터키를 비교하는 분위기가 만연했기 때문이지요. 최근에는 15~20년 사이에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 경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지 경제적인 성장이 아니라, 문화적 성장, 거대한 서점들, 풍요로운 삶과 현대성 그리고 한국의 변화상이 제 관심을 무척 끌었고, 한국에 갈 때마다 이러한 것에 촉각을 세우고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과 터키의 닮은 점은 거대한 문명 옆에서 자신의 문화와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점, 그리고 세계에 한국을 충분히 알리지 못해서, 터키도 항상 이 부분이 불만이지만요, 그를 안타까워 한다는 점 인 것 같습니다.
이난아 ㅣ 저는 『순수 박물관』을 번역하며, 그 소설 속에 70년대 터키 영화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 주시기에 파묵 씨가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3년 전에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신 적도 있으시고요. 그렇다면 한국 영화를 보실 기회가 있었는지요.
오르한 파묵 ㅣ 네,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칸에서 저를 포함한 심사위원단에서 <밀양>에 상도 수여했지요(웃음). <밀양>은 제게 아주 감성적이며, 내면을 주시하는 세계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감독이 멜로드라마틱한 요소를 아주 노련하게 사용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희가 이 작품에 여우주연상을 수여하게 되었던 것에 아주 만족합니다.
이난아 ㅣ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전에 이미 한국에서 『새로운 인생』, 『내 이름은 빨강』, 『하얀 성』 그리고 『눈』이 번역되어 알려지셨는데요, 이 작품들 중 특히 『내 이름은 빨강』은 한국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파묵 씨의 작품이 한국에서 이렇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르한 파묵 ㅣ 물론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먼저 번역자인 이난아 씨에게 제 작품을 잘 번역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제가 과거에 동양세계가 공유했던 문화, 이제는 과거로 남은 그 문화를 발견하고, 과거의 전통과 현대적 정체성 사이에서 가슴 아파하지 않고, 이를 현대적인 언어로 창조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 이름은 빨강』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전통적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오늘 날의 삶과 관계를 맺어주는 작품이지요.
이난아 ㅣ 올해가 한국전쟁 60주년을 맞는 해인데, 파묵 씨는 한국전쟁이 터키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르한 파묵 ㅣ 한 때는 의미가 있었지요. 그 당시 세계는 냉전으로 인해 두 세계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한 편은 공산주의, 다른 한 편은 NATO, 미국 그리고 서구. 터키는 서구 세계에 자리 잡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었지요. 물론 이것이 이유였지만, 터키는 이를 계기로 한국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모부도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전투를 했지요, 여기서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계십니다. 지금은 연세가 80세가 넘으셨지요. 하지만 한국전쟁은 이제 터키인들에게 있어 대부분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지요. 왜냐하면 나이 드신 분들만 기억하니까요. 제게 있어 한국전쟁의 중요성은 우리가 아주 먼 나라에 가서 전쟁을 했다는 것, 그리고 양국 사이에 형제애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터키 문화와 한국 문화 사이의 연관성, 전쟁으로 인한 전우애와 우정도 있지요.
이난아 ㅣ 한국전쟁 이후 한·터 간의 관계가 기대했던 것만큼 발전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한국과 터키 간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길 희망하시는지요?
오르한 파묵 ㅣ 일단, 양국은 무역의 수입수출 면에서, 지리적으로는 멀지만 어떤 식으로든지 상대를 모델로 삼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아주 발전된 테크놀로지가 있고 터키는 한국의 이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요. 작가로서 저는 제 작품들이 한국 독자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아주 행복합니다. 물론 제가 단지 터키 독자나 한국 독자를 위해 글을 쓰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우애가 있다면 그것이 상호 공동의 관계를 맺게 되는 초석이 되기도 하지요.
이난아 ㅣ 이제 『순수 박물관』이 어떤 소설인지 잠시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오르한 파묵 ㅣ 제가 가장 최근에 썼고, 곧 한국에서 출간될 『순수 박물관』은 짧게 말한다면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설은 사랑을 칭송하거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설명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유행가에 많이 등장하는 가벼운 사랑 이야기도 아닙니다. 무척 무거운 면이 있는 소설이지요. 사랑이 우리 마음에 어떻게 어떤 작용을 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심했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난아 ㅣ 소설 제목이 왜 『순수 박물관』인지요?
오르한 파묵 ㅣ 소설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단 한가지의 대답은 없습니다. 제게 있어 소설 제목들은 소설 안에 있는 비밀에 무엇인가를 한 수저 더 넣는 것입니다. 소설의 심장부에 약간은 ‘순결’이라는 화두가, 이는 터키 문화에서, 중동 문화에서 혹은 모든 세계에서 중요시 여기는 덕목이겠습니다만, 자리하고 있지요. 이러한 ‘순결’은 ‘순수’와 관련이 있지요. 그리고 저는 소설에서 저녁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는 ‘순진’한 사람들을 우회적인 방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서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이 작품 속 사람들은 삶에 대한 ‘순수함’을 잊고, 살아가기 위해 교활한 행동을 하는 면도 있지요. 소설이 이 모든 소재 주위를 돌고 있지만, 왜 제목이 이러한지 정확하게 한 단어로 말할 수는 없군요. 저는 독자들로 하여금 제 소설을 기억하도록 만들고, 그 독자들이 소설에 대해 자문을 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독자들이 책을 다 읽은 후(분량이 600페이지 정도랍니다) 어, 그런데 이 소설이 왜 ‘순수’에 관한 것일까, 라고 되뇌며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난아 ㅣ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세계의 많은 박물관을 방문하셨는데, 그 박물관들에 대한 인상이 소설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언급해 주시지요.
오르한 파묵 ㅣ 『순수 박물관』은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사랑에 빠졌지만, 그 응답을 받지 못해 자신이 사랑한 여자의 물건들을 모으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남자는 자신이 모은 물건들로 박물관을 세웁니다. 소설 역시 마치 이 박물관, 그리고 그 안에 진열된 물건들을 설명하듯 서술됩니다. 저는 이러한 것을 쓰면서 세상의 수많은 박물관을 돌아다녔습니다. 서양인들이 수집가라고 부르는 것이 왜,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이 수집가들의 영혼의 상태를 연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수집 혹은 물건을 모으고자 하는 감정이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물건들을 모아 수집하는 것은 서양 문명의 발견이지요. 우리들, 서양 문명 밖에 있는, 혹은 주변부에 사는 사람들은 그저 이에 감탄을 하지요. 박물관은 이런 수집품들에 존경을 표하고 전시를 하는 곳이지요. 하지만 꼭 그 규모가 크고 민족적 요소가 깃든 박물관만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 우리 인생의 슬픈 사건, 비극들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도 박물관을 세웁니다. 저는 세상의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이러한 관점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마음속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그 고통, 그 상처, 마음속에 숨겨두고 있던 욕구 때문에 물건을 수집하고, 운이 좋다면 그것들을 전시하며 그에 관한 이야기를 설명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박물관을 단지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전시하고 표현하면서 이야기를 해주는 곳일 뿐 아니라, 슬프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곳으로 이해합니다. 특히 저는 민족적, 역사적 박물관보다는 주변부에 있고, 개인이 세운 박물관들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의 소설은 바로 이러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난아 ㅣ 소설과 같은 이름의 “순수 박물관”이라는 박물관이 곧 개장할 예정인데요, 아마도 소설을 재현한 박물관으로는 세계 최초인 것 같습니다.
오르한 파묵 ㅣ 네, 이 박물관에 저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순수 박물관』은 전 세계에서 출간되었고, 곧 한국에서도 출간될 제 소설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이스탄불에서 개장될 박물관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남자 주인공 케말이 사랑 때문에 모은, 사랑하는 여자가 만졌던 모든 물건들을 박물관에 전시할 예정입니다. 물론 단지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의 물건들뿐 아니라, 이스탄불 문화의 많은 특징적인 것들도 함께 전시될 겁니다. 저는 이 생각을 소설을 구상했던 10년 전에 했고, 이를 박물관으로 재현하려는 생각을 키웠고, 이를 실현할 건물도 샀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있고, 제 시간과 노력을 정말 많이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네요. 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오리지널하고 새로운 것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박물관 개장 준비를 하고 있고요.
이난아 ㅣ 파묵 씨의 작품들을 사랑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시지요?
오르한 파묵 ㅣ 저는 한국 독자들이 제 작품을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자랑스럽습니다. 한국 독자들은 제 작품을 다른 나라 독자들보다 먼저 발견했고, 읽었고, 사랑해주었습니다. 한국 독자들이 제 작품을 읽을 때, 다른 나라 독자들은 아직 저를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두 번 방문했는데, 한국 서점, 한국 출판 산업이 아주 풍성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작가로서 한국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이난아 ㅣ 그런데 파묵 씨, 제가 아직 ‘순수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없어서 무척 궁금합니다. 가서 봐도 될까요? 소설을 번역하면서 많은 상상을 했답니다.
오르한 파묵 ㅣ 그렇지 않아도 내일 아침에 박물관 설계자, 실내 장식가와 ‘순수 박물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난아 씨도 시간에 맞춰 오면 함께 사진도 찍지요.
소설 뒤에 첨부되어 있는 약도를 보면서 물어물어 찾다보니 인근 주민들이 모두 친절하게 가르쳐 주며, 박물관 덕분에 이 오래된 마을과 거리가 유명해졌다고 즐거운 표정들을 지었다.
소설에서 묘사된 좁은 골목길과 퓌순이 살았던 집(‘순수 박물관’)을 보니 새삼 가슴이 아려왔다. 약속한 시간에 파묵 씨가 박물관 인테리어업자, 설계자들과 함께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왔다.
그는 ‘순수 박물관’에 전시될 물건들을 어떻게 수집했는지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고, 함께 사진도 찍으며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순수 박물관』 오르한 파묵의 노벨상 수상 이후 첫 작품으로 모든 것을 가진 남자 케말이 자신보다 열두 살이나 어린 여인 퓌순을 만나 그녀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비교적 연애에 자유롭지 못했던 1970~80년대 터키에서 남녀가 사랑을 시작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사랑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과정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잘 나타나 있는 한편, 부유한 가문의 남자의 눈에 비친 1970~80년대의 터키, 이스탄불의 모습이 잘 조망되어 있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