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자마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니던 남편이 국립청주박물관으로 발령이 났다. 1988년, 청주로 이사했다. 청주에 박물관을 새로 지어 개관하는 것이어서 남편은 얼굴 보기 어려웠다.
그 와중에 박사과정까지 들어간다고 했다. 박물관 학예사 월급을 받아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꼭 열흘 치의 생활비가 모자랐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방송국 구성작가로 들어갔다. 한 트럭분의 방송 원고를 쓰며(그땐 손으로 써 원고의 부피가 컸다) 이젠 소설도 쓸 수 있겠구나, 싶었다.
1991년, 충청일보에 처음 쓴 소설이 당선됐다. 실험용 흰 쥐가 주인공인 우화소설이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됐는데도 이상하게 청탁이 오질 않았다. 주변에서 말하길, 중앙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한 번 더 당선돼야 청탁이 온다고 했다.
1994년, 절치부심 쓴 단편을 동아일보에 보냈으나 결과는 최종심 탈락. 동아일보 심사평을 참고삼아 새로 쓴 소설을 문학동네에 투고했다. 드디어, 1997년 제 1회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하여, 나는 등단하는 데만 꼬박 6년이 걸린 셈이다.
남보다 돌아가느라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이젠 청탁이 오겠지, 가만히 앉아서 곱다랗게 기다렸다. 5년이 지나도 청탁이 없었다. 뭔가 좀 이상했지만 어느 새 기다리는 데는 도가 튼 것 같았다. 그 무렵엔 이상하게 물을 먹고 돌아서도 금세 목이 말랐다. 온종일 물 마시는 날이 많아졌다. 반면, 쓰고 싶은 소설은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못 살겠다고,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지인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랬더니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놔두는 게 문단이라며 소설을 잡지에 투고해 보라고 했다. 그때서야 나는 알았다. “아하, 신인은 청탁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투고를 해야 하는 거구나.”
참 눈치 하난 빠른 셈이다. 부랴부랴 쓴 단편 「토란」을 창비에 투고했더니 6개월 후 싣겠다는 연락이 왔다. 누군가 펑크 낸 지면에 땜방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꼭 3일 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3일을 30일처럼 쓰려면 집을 떠나야 했다. 기껏 생각해낸 게 인천 월미도였다. 왠지 바다엘 가면 글이 잘 써질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서울 근교의 바다라곤, 월미도뿐이었다.
월미도 주변의 경관 좋은 모텔들을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내게 방을 주지 않았다. 바다가 아닌 산 쪽으로 돌아앉은 모텔 구석방을 간신히 얻었다. 키를 받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청소부터 대대적으로 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침대 시트와 이불도 전부 뒤집어 깔았다. 그러고 나서야 노트북을 켰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헉헉, 학학, 아흑아흑…… 그 모텔은 겉만 번지르르했지, 방음시설이 형편없었다. 모텔 주인들이 왜 내게 방을 주지 않았는지, 그 부분도 이해가 됐다. 모텔 방은 하루 세 팀의 손님을 받았다. 그러니 나처럼 3일 내내 방을 쓰는 손님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신음소리는 팀마다 달랐고, 체형 별로 연령 별로 고저강약이 전부 달랐다. 방에서는 옆방의 소리가, 손을 씻으러 화장실엘 가면 아래층의 교성이 생생하게 들렸다. 멀쩡한 침대를 놔두고 왜 화장실에서까지 하는가, 울고 싶었다. 나는 최악의 장소를 찾아온 것이다.
집으로 가고 싶었으나 명작을 쓰고 오겠노라, 선전 포고를 하고 나온 길이어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신음소리 때문에 밖으로 피신을 나와 바다만 멍하니 봐라봤다. 이러다간 졸작도 못 쓰지, 싶었다. 하루를 버렸으니 남은 건 이틀뿐, 비록 땜방일망정 5년 만에 얻은 지면인데 이대로 날릴 수는 없다. 이튿날, 무조건 노트북 앞에 앉았다. 또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으으흐흐, 이번 팀은 비오는 날 무덤 근처에서나 들을 법한 무슨 귀신 소리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들으면 금방 목이 졸리는 것 같은 하여간에 희한한 소리를 냈다.
“그래, 니들은 해라, 나는 쓴다!” 손이 길을 찾아 더듬더듬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음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동시에 내 영혼이 수직으로 날카롭게 곤두서는 걸 느꼈다. 이틀 동안 완벽하게 집중했다. 손과 머리, 그 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몸에 붙은 살은 공중 분해되고 뼈만 단단하게 남은 것 같았다. 소설의 늘어진 가지를 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이틀 만에 전혀 다른 소설이 만들어졌다.
2002년 창비 봄호에 드디어 단편 「토란」이 실렸다. 그 후, 청탁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청탁을 받기까지 꼬박 11년이 걸린 셈이다. 이제, 나는 안다. 뭔가를 하는 데는 더도 덜도 말고 꼭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질러가는 사람이나 돌아가는 사람 모두에게 그 시간은 대단히 공평하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