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이 정말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은행이나 병원, 전화 서비스센터에 가면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공항에서는 여권을 내보인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면 그 나라의 정부로부터 다른 신분증을 발급받는다. 이러한 신분증은 독립된 개인으로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주지만, 우리의 사회적 정체성은 독립된 존재로서가 아니라 형부나 제부, 선배나 후배처럼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호적에는 우리의 개별 존재와 관계도가 같이 나타난다. 내 호적에서 나는 정낙환과 이필례의 다섯째 딸이고, 생년월일은 1972년 1월 24일이며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나와 있다. 내 이름은 敬娥(경아)라고 쓰여 있고 우리 가족은 온양 정씨(溫陽 鄭氏)라고 한다. 다른 한국인들의 호적처럼 극히 평범한 호적이다. 나는 부모님과 언니들, 그리고 공간과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호적이 또 하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런 호적의 존재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 한국 정부와 나를 입양시킨 입양기관은 미국으로의 입양을 수월케 하고자 나에게 ‘고아 호적’을 만들어 주었다. 이 호적에 따르면 나는 부모도 없고 언니도 없는 세대주이며, 나의 본적은 나주로 기록되어 있다. 내 이름은 한자가 아니라 한글로 써 있고 생년월일은 1972년 3월 8일이다. 또 이 호적에는 내가 네덜란드로 입양되어 네덜란드 시민권자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 나는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나는 내가 친어머니를 찾은 것이 아니라 날 사랑하는 어머니가 나를 찾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1995년, 처음으로 친어머니를 만나러 한국에 왔을 때, 어머니는 모두에게 나를 당신의 딸로, 또 내 언니들의 동생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나의 정체성은 이미 입양을 위해 절반으로 쪼개진 상태였다. 현재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미국 여권과 모든 신분증은 사회적으로 분리시키고 이동시키기 위한 도구였던 고아 호적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 나는 한국인들이 한국의 국제입양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하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지난 60년간 나처럼 고아 호적으로 외국에 입양된 한국 어린이는 줄잡아 20만 명에 이른다. 이러한 해외입양 프로그램으로 입양된 어린이들의 한국인 조부모와 부모, 형제자매들은 약 백만 명이나 된다. 소도시 하나의 인구가 되고도 남을 숫자이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니.
이러한 대규모 이동이 한국인들의 집단의식, 그리고 한국이 세계에 어떻게 비춰질지에 대한 우리의 자의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산업화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배려를 제쳐두고 다른 것들을 좇아온 것 같다. 내 자식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에도 바쁜데 서류상에나 존재하는 다른 가정의 고아들에게 관심을 가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은 매일 너무나 많은 정보를 받기 때문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감정을 통해 분별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학은 감정과 상상력의 촉매로써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문학은 등장인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사람들로 하여금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내 작품이 미국에서 논란이 되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들을 강점과 약점을 다 갖춘, 실제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미국인들에게 거리감이 있게 마련인 한국인 어머니들은 상상 속에서나마 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이러한 상상의 행위를 통해 미국인들이 한국인 어머니들에 대해 진짜 관심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대형 입양기관에 계속 돈을 내가면서 한국 어린이들을 미국으로 입양할까? 아니면 자신들처럼 현실의 존재인 한국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계속 데리고 키우도록 돕고 싶어할까? 논란이 되는 책이란 다시 말해 사람들로 하여금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이다.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을 전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지한 작가가 되려면 입양이 아닌 것에 대해 써야 한다.” 나의 첫 작품 『피의 언어 The Language of Blood』(2003)는 미국의 백인 가정에 입양된 한국인의 성장기를 다룬 자서전으로 2003년 미네소타역사학회(MHS)가 처음으로 출판했다. MHS는 “정체성과 공간, 그리고 유산을 향한 우리의 공통된 탐구를 조명”하는 책들을 출간한다. 내 책이 그러한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입양이 미네소타 역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나의 공간이나 집단, 국가를 대표하는 문학을 창작하는 것은 계속 진화해 나가는 과정이다. 입양 문학의 경우, 영어나 프랑스어, 덴마크어나 노르웨이어로 쓰인 문학을 한국문학의 일부로 볼 수 있을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가 한국을 떠난 이주민들도 계속 한국인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할 수도 있다. 우리의 이미지에 방어벽을 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한국사회의 수많은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문학을 한국문학이라 주장할 수 있을까?
사실 국제입양이 한국역사의 자랑스러운 부분은 아니라 하더라도 엄연히 역사의 한편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역사이기도 하다. 한국이 11월에 열리는 G20 정상회의 개최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도 매년 천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외국으로 입양되고 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사람들에게 편견과 불의를 알리며, 그에 대항할 힘을 모으는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예술이나 문학의 역할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비록 한국어가 아닐지언정 자신의 언어로 세상의 틀을 세우며 세상을 더 따뜻하고 평등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진지하게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저게 뭐야?” 나의 글이 외국에 입양된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여정을 다룬 산물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나, 이는 내가 한국에 살면서 입양문제와 관련하여 해온 수많은 활동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나는 1년이 조금 넘게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의 회장을 지냈다. 지난 6월에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제출한 입양특례법 개정을 지지하고자 아동청소년미래포럼의 공동대표인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의 후원으로 국회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의 목적은 과거 60년간 20만 명의 어린이를 내보낸 해외입양 프로그램의 심각성을 조명하기 위한 공동 미술품을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TRACK 회원들과 작가 리앤 리스(한국 이름: 서영숙)가 흰 색 천으로 터널을 만들었고,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어린이 한 명당 하나씩 계산하여 20만 개의 꼬리표에 일일이 도장을 찍어 터널에 달 생각이었다. 꼬리표 한쪽 면에는 바코드와 유전정보, 그리고 나이와 키, 체중을 적는 공간이 있다. 뒷면은 한국 ‘여행증명서’의 복사본으로, 도장으로 고유번호를 찍게 되어 있다. 한국 법무부에 입양기록이 보관되어 있는 입양아들은 모두 여행증명서가 있으며, 자신의 입양서류를 볼 수 있는 입양아들은 모두 이 여행증명서를 알아본다. 하지만 이것을 본 한국인들은 묻는다. “저게 뭐야?”
우리는 너무나 뻔한 실수를 했다. 여행증명서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입양아들이나 우리를 입양시킨 사람들뿐인 것이다. 이 서류는 외국으로 입양된 한국 어린이들에게 발급된 것이기 때문이다. 용이한 입양 절차를 위해 만든 일종의 일방적 일회용 여권인 셈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여행증명서나 고아 호적, 사회적 기록들, 고아원 명단, 친권 포기서류 등 입양아의 신분을 다시 만들기 위한 제반 서류들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과정이나 전시 면에서만 보면 우리의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완성된 결과물로 보자면 기껏해야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꼬리표 20만 개에 일일이 도장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지만, 입양아들이 팀을 짜서 몇 주에 걸쳐 도장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9만 개 정도만 완성할 수 있었다. 그 9만 개 중에서도 6만 개밖에 매달지 못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했지만 번호 순서대로까지는 정리할 수가 없었다. 꼬리표는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 도장도 잘못 찍히고 무엇이 묻거나 찢어지기도 했으며, 어떤 꼬리표는 여기저기에 실수로 버려져서 결국 어디에 속하는 것이며 누가 도장을 찍었는지도 알 수 없이 처치곤란이 되기도 했다. 대량생산 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이러한 불량품은 천 개가 넘어 박스 하나를 가득 채웠다.
우리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20만이라는 숫자가 사실은 수없이 많은 어린이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꼬리표에 도장 하나를 찍는 데는 1초밖에 걸리지 않지만, 아이 한 명의 입양을 완전히 처리하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입양기록이 분실되고 중복되고 잘못 분류되는 것도 당연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단순한 일이라도 20만 번을 하려면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꼬리표를 가지고 하는 작업과 사람의 생명이 관련된 일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렇게 공장식 대량생산 및 대량수출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가족을 찾은 입양아들이 2.7%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끝내 찾지 못하거나 서양 각국에 흩어져 고립된 채 성장한 우리의 개인사가 덜 고통스러워지지는 않는다. 눈에 보이게 남는 기록은 없지만, 수만 개의 꼬리표에 도장을 찍고 터널에 매달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 그 시간은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 중 하나였다. 그저 함께 모여 손으로는 일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또 들어주는 것 말이다.
“입양에 대해 언제까지 쓸 건가?” 세상은 넓고, 탐험해봐야 할 것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내 글의 주제에 대해서는 옹고집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나에게 “입양에 대한 글을 언제까지 쓸 건지” 물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입양아이지만 동시에 여성이자 한국인이고 어쩔 수 없는 미국인이기도 하다. 내 작품에서 입양아를 배제하는 것은 나의 다른 정체성을 배제하고 글을 써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어렵다. 내가 더 이상 입양아도 아니고 여성도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니게 되면, 나는 그때에야 비로소 입양에 대한 글쓰기를 접을 것이다.
나는 내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들이 서로에게 더 잘 대해줄 수 있는 방법을 상상하도록 도와주며, 한국의 가족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촉진하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한국인들이 해외입양을 우리 공동의 역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하기를,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나의 여행증명서나 고아 호적을 보여줘도 사람들이 “이게 뭐야?”라고 묻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나의 입양아 친구들 모두가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누구누구의 딸”이라거나 “나는 누구누구의 형”이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도시 환경에서 영감을 얻은 시나 서민들을 묘사하는 소설이 한국 근대역사에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처럼, 입양 문학 역시 우리가 살아온 그 시대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우리나라’라고 부르는 이 나라에서 우리는 모두 관심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아들과 딸이며 각자 나름대로 소중하고 값진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나의 문학이 ‘입양아들의 정체성’을 다루는 ‘입양 문학’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공간, 그리고 유산’을 다루는 ‘우리 문학’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