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병언_소설가. 1951년생
소설집 『개를 소재로 한 세 가지 슬픈 사건』 『천치의 사랑』 『남태평양』, 장편소설 『목수의 칼』 등
나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종합무역상사와 호텔, 건설회사 두 곳과 운송회사, 도합 다섯 군데 직장을 전전했었다. 업무능력이 뛰어나 스카우트가 돼 그랬다면 자랑스러울 짓이겠건만 사람이 워낙 진득한 구석이 없어 어떤 업무에 조금 익숙해질라 치면 곧 싫증이 나 일탈을 꿈꾼 탓이었으니 부끄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글쓰기를 위해 마지막 직장을 그만둔 것도 아니었다. 아내가 직장을 다녀 당장 굶어죽을 염려가 없었기에 회사 분위기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핑계로 때려치웠다. 그리곤 허구한 날 빈둥빈둥 놀다보니 자연 소설책을 자주 접하게 됐다. 한편으로는 어디 신나는 일자리가 없을까 여기저기 탐색은 하고 있었다. 그때 만약 새로운 직장이 나타났더라면 아마 글 쓸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중, 문득 소설을 읽기만 할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따져보니 참으로 근사한 일이었다. 까짓것, 소설이 별 건가, 문명(文名)도 얻고 이따금 해외여행이나 다니면서 평생 유유자적하리라……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두 해만에 이른바 등단이란 걸 하고 보니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작품 청탁이 전혀 없다시피 하니 문예지에 단편 하나 싣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응당 중견 작가가 돼 있어야 할 나이에 신인인 처지이니 문단에 어울릴 친구도 하나 없었다. 이런 난경은 첫 소설집이 나온 후에야 다소 해소됐다.
세월이 흘러 나도 두어 번 문예지의 신인상 심사를 하기도 했고 모 백화점 문화센터의 소설반 강의를 한 이력도 생겼다. 한데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여직 전적으로 아내에게 생활을 의지하고 있는 데 따른 자괴심이 일 때, 그리고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입에 달고 다니던 ‘아빠는 언제 베스트셀러를 쓰세요?’라는 물음이 아프게 떠오를 때마다, 무엇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던 것일까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다면 나의 이 직업에 관련한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기억나는 것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취직시험을 보러 다닐 때의 일이었다. 요즘은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라고들 하지만, 당시엔 대개 몇 군데 직장을 확보하고 나서 입맛대로 하나 골라잡는 식이었다. 가장 인기 있었던 직장은 외국 지사에 근무할 수 있는 종합무역상사였다.
나는 연습 삼아 일단 모 은행에 지원서를 냈고 필기시험에 무난히 합격했다. 면접은 요식행위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면접 대기실에 앉아 있자니 인사과 직원이 질문지를 나눠주었다. 면접관들이 미리 제출한 그 질문지를 보면서 지원자와 대화를 나눈다는 거였다.
거기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이라는 항목이 들어 있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정도면 무난할 터였지만 나는 일본 소설가이자 그 전해인가에 천황통치와 군국주의의 부활을 외치다 할복자살 한 미시마 유키오를 써내는 객기를 부렸다. 그 무렵에 그가 쓴 『금각사』를 읽고 이런 게 바로 소설이구나, 할 정도로 감탄한 때문이었다. 면접은 처음엔 무척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 사람 중, 가운데 앉은 면접관이 “아니, 미시마 유키오 같은 인물을 존경한다구?” 하고 소리 지르며 안면을 붉혔다. 나는 단지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이런 사람을 창구에 앉혀놓으면 고객들 서류를 집어던지지 않겠냐”며 힐난조로 말했다. 나는 미시마 유키오의 행위는 일본으로 봐서는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냐, 라고 응수했는데 차츰 옥신각신 말다툼으로 변했다. 며칠 후, 합격자 명단을 붙여 논 본사 로비에 가보니 내 이름이 없었다. 나중에 알아본 즉, 필기시험 합격자 가운데 내가 유일한 탈락이었고 그 면접관은 당시 동경지점장으로 근무하다 귀국한 사람이었다. 나는 미시마 유키오 때문에 입사시험에 떨어진 셈이었다.
다음에 기억나는 건, 건설회사에서 파견돼 요르단의 신공항 공사 현장에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대사관에서 우리나라 문인 해외시찰단이 오니 협조하라는 통보가 왔다. 나는 일 톤짜리 소형 짐차를 끌고 공항에 나가 십여 명으로 구성된 문인 단체의 짐을 호텔로 실어 날랐다. 나는 그때 문인이란 사람들을 대하긴 처음이라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봤는데 수수한 옷차림에 그다지 멋대가리가 있어 보이지 않아 적이 실망했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 지원한 호텔 만찬장에 현장 소장과 함께 참석해서 대화를 나눠보니 입심들은 대단했다. 그때 참석했던 문인들을 죄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대표적인 분들을 들자면 소설가론 조정래 씨, 시인으론 작고하신 박재삼 씨였다. 물론 당시의 조정래 씨는 지금처럼 큰 소설가는 아니었다.
아무튼 이런 일들이 은연 중에 내 운명에 작용하여 나로 하여금 요즘 자주 긴 한숨을 내쉬게 만들고야 말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