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4년 전이야. 은경이 사고 난 그해였으니까. 터키 남쪽 지중해 연안에 안탈랴라고 수천 년 된 항구도시가 있어. 그 인근에 테르메소스라고, 알렉산더도 함락을 못 시킨 고대 도시 유적이 있거든. 해발 1,050미터 산속에 있는 도시니까 함락을 못 시킨 건지 안 시킨 건지 사실 잘 모르겠어. 아무튼 안탈랴에 숙소를 정하고 이틀째에 테르메소스로 투어를 갔는데, 가이드가 또 이름이 메흐멧이야. 그놈의 나라는 웬 아흐멧, 메흐멧이 그렇게 많은지. 한 세 시간쯤 산속을 헤매면서 원형극장이니, 신전이니 하는 것들을 찾아다니는 코스였는데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가이드하고 말동무를 하게 되는 거야. 나야 뭐, 거의 듣기만 했지만. 알고 보니 그 양반, 고고학자인 거 있지. 앙카라대학 나왔으면 꽤 엘리트다 싶었는데, 고고학에 언어학, 고고심령학, 발굴공학까지 학위를 네 개나 갖고도 가이드 일을 하는 걸 보니 역시 고고학 안 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원형극장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메흐멧이 묻는 거야. 왜 혼자 여행을 다니는 거냐고. 사실대로 말해 줬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버렸다고. 그것도 내 아이를 임신한 채로. 그래서 혼자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거라고. 어차피 뭘 숨길만큼 영어를 잘 하지도 못했거든. 어떻게 죽었냐고 묻더군. 교통사고라고 대답했어. 그랬더니 메흐멧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계신이라는 거야. 교통사고나 백혈병처럼 뜬금없는 사건으로 갑자기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연극 말이야. 메흐멧은 딸을 백혈병으로 잃었다더군. 눈앞에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원조격인 그리스 로마 시대 원형극장이 펼쳐져 있었어.
잠깐 휴식을 끝내고 다시 산길을 따라 아르테미스 신전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메흐멧은 그즈음 자기가 하고 있던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어. 발굴공학 학위도 그것 때문에 받은 거랬는데, 옛날 도자기에서 소리를 추출해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거야. 그놈의 나라, 무슨 산업 쓰레기 매립장처럼 그냥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고대 도시들이 수천 개나 되거든. 그러니 수천 수백 년 된 도자기가 얼마나 많겠어. 거기에서 옛날 사람들 말소리를 걸러낸다는 거야. 어떻게 하는 거냐고? 간단해. 축음기처럼 하는 거야. 에디슨이 만든 것도 그렇고 그 전에 프랑스 사람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것도 그렇고, 축음기라는 게 기본적으로 원통을 돌리면서 그 표면에 상처를 내는 장치거든. 빳빳한 털이나 바늘 같은 걸로 말이야. 소리가 날 때 생기는 공기 진동 때문에 바늘이 미세하게 떨리는데 그 흔적을 원통에 남기는 거지. 긁어서 말이야. 그 과정을 반대로 하면 소리를 다시 재현할 수 있게 되고. 뭐 생각나는 거 없어? 그래. 딱 도자기 만드는 장면이잖아.
물론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더군. 애초에 소리를 담을 생각으로 정교하게 녹음한 게 아니니까. 한마디로 잡음이 너무 많다는 거야. 아니, 그 안에 사람 목소리가 들어있는 게 오히려 잡음이라고 해야 되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도자기 레코드를 재생했을 때 나오는 파장의 대부분은 사람 목소리가 아니거든. 그래서 어느 부분을 걸러내야 할지, 어느 신호를 얼마나 증폭시켜야 할지를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거지.
안 믿기지? 나도 그렇게 말했어. 그런 일이 진짜로 가능하냐고 물었어. 메흐멧은 정말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투로 이렇게 말하는 거야. “Why not?” 녹음은 틀림없이 돼 있다는 거야. 재생장치가 아직 개발이 안 돼서 그렇지. 얼마나 걸릴 것 같냐고 물었어. 한 20년쯤 걸린다더군. 원래는 10년이면 가능할 일인데, 기금 확보가 어려워서 그렇다고. 그래서 내가 또 물었지. 얼만데? 얼마면 되는데?
이제야 눈치 채는군. 그래. 바로 그것 때문이었어. 메흐멧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은경이 작업실에 유품처럼 남아 있던 도자기들을 떠올렸어. 정말로 소리를 재생해 낼 수 있단 말이야? 정말로 그걸 다? 거기에는 심지어 은경이가 사고로 죽은 바로 그날 오후에 작업하다 남겨둔 미완성 도자기까지 남아 있는데. 은경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안타까웠거든. 작별인사도 없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은경이가 내 곁을 떠나버렸다는 게 말이야. 그게 제일 가슴 아팠어.
돌아가자마자 우리 부친을 설득해서 애매한 사업들을 정리하면서 자금 일부를 그쪽으로 돌렸어. 그래. 사적인 동기였지. 부친도 그러더군. 내 생물학적 부친 말이야. 그렇게 해 가지고는 결국 일을 말아먹게 될 거라면서. 하지만 결국은 부친을 설득할 수 있었어. 왜냐하면 그 일은 완전히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하는 일만은 아니었거든. 내 동기와 메흐멧 같은 고고학자들의 동기가 그렇게 다른 게 아니었으니까, 내 속을 드러내지 않고도 부친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거야. 유품이라는 거, 언젠가는 결국 유물이 되는 거잖아. 그 사람들이 하려는 것도 한 번에 뭔가 대단한 걸 알아내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때 살던 사람들의 목소리나 들어보자는 거였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어. 동기가 맞아떨어진 거지. 나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런 만큼 그 일이 왜 필요한지를 잘 설명할 수가 있었어. 부친 입장에서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게, 성공하기만 한다면 고고학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쳐서 꽤 큰 사회적 공헌을 하는 게 되거든. 부친이 그러더군. “그거 먹고 떨어질 거냐?” 하하. 먹고 떨어져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어. 어차피 그 집 자식들 성질 더러운 거 보고 애초에 재산 분배 같은 건 꿈도 안 꿨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렇게 연구가 시작됐는데, 예상했던 대로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 그래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 그쪽 전문가 치고 그 일이 불가능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못 봤거든. 물론 “언젠가”라는 단서가 항상 달려 있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 언젠가가 도대체 언제인지가 문제였는데, 기다리는 게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어. 중간 과정을 볼 수가 있었으니까. “아마 이 부분인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드디어 연구팀에서 그럴싸한 보고가 올라왔어. 이스탄불 남쪽 예니카프 항 부근에서 땅에 묻혀 있던 옛날 상선 몇 척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실려 있던 도자기 하나를 읽어내는 데 성공한 것 같다는 거야. 당장 오디오 파일을 보내 달라고 해서 들어 봤는데, 아직은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어. 웅얼거리는 소리 같았지. 하지만 딱 듣기에도 중국말 억양처럼 들리는 게, 아, 이제 거의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 배에서 출토된 도자기 인형을 보면 눈이 위로 쭉 찢어진 게 누가 봐도 중국 사람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얼굴이었거든.
그게 벌써 7년 전이니까, 그러고도 7년이 더 걸린 셈이야. 그동안 우리가 집중적으로 들여다 본 도자기만 해도 2천 점이 넘을걸. 레코드판처럼 규격화된 방식으로 녹음된 게 아니라 우연히 들어간 소리를 찾아내는 작업이라서 도자기 하나하나마다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찾아 들어가야 하니까 노하우 쌓기가 쉽지가 않았어. 어느 날은 우리 수석 발굴공학자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그러더군. “저 넓은 우주에서 점 하나밖에 안 되는 조그만 별의 전파신호도 잡아내는 세상이에요. 언젠가는 꼭 될 거예요.”
에잇, 그놈의 언젠가! 정말 영원히 안 올 것 같은 순간이었어. 그런데 결국 오긴 오더군. 바로 어제였어. 사실은 몇 달 전이었지만, 옛날 항아리에서 찾아낸 목소리들은 어차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언어로 돼 있어서 내용을 확인하는 데 몇 년은 걸릴 거라더군. 기회다 싶었지. 나는 조심스럽게 간직해 온 은경이의 유품을 연구팀에 맡겼어. 이거면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고는 한참을 기다렸어. 어제 아침에 연락이 왔더군. “전에 주신 도자기 레코드 샘플, 재생 성공했습니다. 들어 보시겠습니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어. “물론이죠.”
나는 연구실로 달려갔어. 축음기에 도자기를 장착하는 데 20분쯤 걸리더군. 조바심이 났지만 잠자코 기다렸어. 이윽고 도자기 레코드가 천천히 돌아가고, 잠시 후에 어렴풋이 소리가 들려왔어. 노랫소리였지. 흥얼거리는 소리 같았어. 은경이다! 14년 전 기억이 되살아나더군. 곧이어 말소리가 들려왔어. 은경이 목소리로 또렷하게. 뱃속에 든 애한테 한 말이었나 봐. “아, 니네 아빠가 너한테 노래 해주지 말랬는데. 옥구슬로 은쟁반 긁는 소리 난다고.” 나는 그만 숨이 멎을 것만 같았어. 맞아, 내가 그런 말을 했었지! 하하. 하하. 아무튼 그건 말이야, 세상에서 제일 가슴 아픈 농담이었어. 이제 궁금증이 풀렸어? 자, 자, 그럼 술이나 한잔 더 사. 나는 같은 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