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고향에 돌아와 어릴 적 살던 마을이 사라져버린 걸 발견하게 되는 이방인과 달리, 그 시인은 말소에 저항하는 사회적 유령이 되어 한국의 문학 풍경 속으로 진입한다. 가족, 지리, 역사, 언어와 기억을 그에게서 앗아갔고 그리하여 입양아를 받아들이는 서구의 15개 나라 중 한 나라로 그를 보냈던 말소.

시인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입양 프로그램이 1952년 이후 계속해서 아이들을 해외로 내보내면서 배출한 약 20만 입양아의 한 사람이다. 그의 한국 여권과 고아 증서는 해외로 나가는 여행만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시 한국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시인은 일종의 위반을 감행하는 셈. 이 문학적인 도착과 함께 시인은 애초의 입양 계약을 파기한다. 떼어놓는 것을 전제로 다른 누군가에게 그 아이의 정체성을 설계할 권한을 부여했던 원래의 계약을.
성인이 된 시인은 이제야 스스로 말할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을 나타낼 수도 있다.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그려보면서, 시인들은 강제된 어린이 이민을 도왔던 관료적인 축약, 약칭, 대시 기호, 괄호들을 배신한다.

아버지 성함 : 기록 없음. 어머니 성함 : 기록 없음
아버지 주소 : 기록 없음. 어머니 주소 : 기록 없음

후견자의 태도와 동기를 포함시킬 것

아이를 양도함 : 김대표는 그 아이를 좋은 가정으로 보내기를 바람.
지불 금액 450불, 1976년 12월. 표기/파일 번호
어린이의 태도 : 알 수 없음(N/A)

- 제니퍼 권 답스, 「기록」1)

▲Herrick, Lee. This Many Miles from Desire. Cincinnati : Word Tech Editions, 2007. Print.

이러한 입양 대행 언어는 언어 자체를 삼켜버리고 심지어는 한국어/한국인의 혀를 찢어 놓는다. 고아의 입을 “알 수 없음(N/A)”으로 묘사하는 구문을 보라. 하지만 시인은 엄마가 자기를 입양 보내기 직전에 어떤 노래를 불러주었는지를 가만히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한다. 그 엄청난 떨림을 시인은 듣는다.

아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엄마가 불렀던 그 그윽한 가락. 누가 정말로 말할 수 있을까?
때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그 슬픈 노래. 그 곡조는
포기 안에서도 노래 하나를 찾겠다는 뜻,

당신이 한 밤, 이광수라는 한국 이름을 기억하는
그 시간에 부를 수 있는 하나의 노래, 광수는
밝게 빛나라는 뜻, 뭔가를 비출 수 있는 존재가 되라는 뜻이지.

- 리 헤릭, 「구원」2)

▲ Shin, Sun Yung. Skirt Full of Black. Minneapolis : Coffee House Press, 2006. Print

시인은 한글의 글자 하나하나를 몸짓으로 읽는다: 나무, 쏙 내민 혀, 빗장 열린 문, 새 고기. 시인은 이렇게 흔적어를 만들어간다.

매달리기, 임무 수행
낯선 가지에 다가가는 까마귀
깃발에 포개진 글자
신의 무한한 고막

- 선영 신, 「ciue ㅈ」3)

이 시인들은 처음, 톤자 비스코프와 조 랜킨이 편집한 최초의 입양시/산문집인 『침묵의 나무에서 거둔 씨앗』(Seeds from a Silent Tree, 1997)에서 출발했다. 이제 그 작은 이산의 숲이 자라나, 뎀 애브릭, 토마스 마르코 블랏, 리 헤릭, 아니사 김, 에바 틴드 크리스텐슨, 케이시 광, 미자 리 랭바드, 마라 리, 캐시 리오, 아넬리 우스트룬트, 선영 신, 김 순이, 그리고 나, 또 앞으로 탄생할 많은 다른 시인들이 그 숲의 일원이 되었다.

학파도 아니고 조직화된 문학 공동체는 더욱 아니지만, 그럼에도 시인들은 공동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니, 해외 입양을 통한 말소가 그들이 공유하는 역사이다. 시인들은 자신들의 입양 언어를 벗겨 내기도 하고, 때로 자기들이 알고 있거나 꿈꾸고 있는 한국어로 살을 입히는 다채로운 실험을 통하여 말소라는 그들 공동의 역사에 반응해왔다. 너무나 보여주고 싶은 나머지, 시인들은 그들이 동화되어 배운 언어인 영어, 덴마크어, 스웨덴어, 노르웨이언,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 자신들의 첫 열망의 언어이기도 한 그 언어들로 글을 쓴다. 이 시인들은 자기를 입양한 나라에 말을 걸며 책을 출판하고 이러한 정신적 생존의 행위로 상도 타고 상금을 타기도 한다.

가족과 이민 사회를 통해 이어져 온 ‘동포’들의 일상적인 문화적 자산이 없기에, 이 시인들의 상상력은 몸의 어휘에 의존한다. 피, 피부, 머리와 같은 몸의 어휘. 또 시인들은 어림짐작, 지각 운동, 대규모 이주, 오려 붙인 신문 조각들, 파편들, 발견되고 사라지는 문서들, 군 작전지도, 식물 표본, 흐트러진 구문들에 기대고, 그들을 지우고 없앤 말소에 얼굴을 부여하고 그 움직임에 이름을 부여할 목소리, 살보다 더 진실하고 뼈보다 더 강고한 말들로 함께 엮인 다층적인 목소리들에 의지한다.

한국은 그토록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룩하면서도 떠나보낸 아이를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시인은 바로 그 나라 한국을 통하여 때로 자신의 예술적 욕구를 찾아 나선다.

진보란 것이 재빨리 숲을 뒤엎어 묘지로 만들고 건물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도시 건축물을 세울 때, 시인의 문법은 때로 향수 어린 자취가 아니라 역사적 잔여물을 찾아서 넓어지는 침묵 너머를 상상하며 탐색의 지점 안에서 가지치기를 한다. 시인이 그리는 지도는 가능성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입양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던 시인은 이처럼 부인할 수 없는 문서, 여러 세대를 지나서 자신에게 전해진 그의 몸, 이 피의 지도를 통해 어떤 공간을 창조할 수 있을까?

시인의 가족들은 어떻게 시인을 알아볼 수 있을까? 어떻게 비틀 넘어지지 않고 테이블 너머 시인에게 와 닿을 수 있을까? 이 시인의 꿈이 번역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가 닿을 수 있을까? 시인의 어머니, 아버지, 오빠, 여동생, 삼촌, 고모, 할아버지, 아니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Kristensen, Eva Tind. do/도. Copenhagen : Gyldendal, 2009. Print. 이 시는 원래 덴마크어로 씌어졌는데, M.J.T. Nielsen의 영어 번역을 다시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정확한 교과서적 해답보다 더 큰 울림을 주고 더 정확한 통찰을 지닌 것은 바로 이것, 서로 상처 받기 쉬운 연약한 언어들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도/do
그 한국말 ‘도’는 15,000자 사전에 따르면 121가지 다른 뜻을 가진 소리,
do
‘당신’이란 말을 유틀란트 반도에선 이렇게 발음하지

- 에바 킨드 크리스틴슨, 「do/도」4)

가족과 재회하는 것처럼 이 시를 읽는 일은 통역하는 이방인이 속삭임에 의지하는 것만큼이나 불편한 일이지 싶다. 이 시를 읽는 일은 이런 관심과 보살핌의 행동, 말소를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이처럼 어렵지만 꼭 필요한 대화를 불러올 절실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일이다.

3.
제가 엄마가 늘 믿고 있었던 미국이 아니라 덴마크로 입양되어 와서, 엄마, 실망하셨나요?

4.
엄만 나를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여동생들이나 아버지 아니면 엄마 자신한테 이런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 마자 리 랭버드, 「생모에게 드리는 새로운 질문 20개」5)

▲ Langvad, Maja Lee. “New Questions.” Journal of Korean Adoption Studies 2.1 (Spring2010) : 157-168.Print.

시를 쓰는 방식이 다양하고 재능들도 풍부한 이 시인들은 자신을 입양아로 만들었던 바로 그 말소와 화해하는 구체적인 비전을 그려 보이면서 새로운 이산 문학의 방향을 제시한다.

시인들은 바로 그 말소라는 폭력이 거쳐 온 온갖 우여곡절들의 증인이 되기도 하고, 침묵의 틈새를 뚫고 나가 끌어안은 잘 아는 것들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간밤이 꿈이었다면, 난 기억해
그녀의 말이 아니라 내가 느낀 것을, 침묵이
하얗게 변했을 때, 그리고

연기 속에 익사한 그 외로운 피아노
많은 것들, 너무 자주 많은 것들이 엇나간 박자로 떠돌지

잃어버린 아이 위로 덮친
바다의 입을 벌린 파도처럼
사자가 아무 이유 없이 으르렁거릴 때.
- 뎀 애브릭, 「어릿광대」

연기, 사자의 포효, 거친 파도 등 언어의 근원에서 시인은 자신이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자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시인과 같이, 또 다른 시인은 새롭게 시작할 힘을 가진 새로운 이름을 지어내면서 언어적 박탈에 맞서는 적절한 이름을 기억해낸다. 이 시인들이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시인으로서 인정받기를, 또 같은 피를 나눈 일가친척으로 환영받게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