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윤식_평론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36년생
평론집 『백철연구』 『문학사의 새 영역』 『한국근대소설사연구』 『우리 소설과의 만남』 『환각을 찾아서』 『김윤식의 소설 읽기』 『우리 소설과의 대화』 등
임화_시인. 평론가. 1908~1953
시집 『현해탄』 『찬가』 『회상시집』, 평론집 『문학의 논리』 등
1. 우정과 신념
김윤식: 잘 계시는지요. 지난해 우리 문단은 선생에 대한 많은 논의를 했소. 탄생 백주년이었으니까. 이상하게도 논의를 할수록 선생의 존재는 우리 후배들로 하여금 아득함을 느끼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소. 그도 그럴 것이 선생을 규정할 만한 어떤 범주나 규칙도 우리가 갖고 있지 못했던 까닭이오. 무엇보다 선생은 시인이 아니었던가. 그것도 ｢현해탄｣의 시인.
예술, 학문, 움직일 수 없는 진리……
그의 꿈꾸는 사상이 높다랗게 굽이치는 東京
모든 것을 배워 모든 것을 익혀
다시 이 바다 물결 위에 올랐을 때
나는 슬픈 고향의 한밤,
홰보다 밝게 타는 별이 되리라
청년의 가슴은 바다보다 더 설레었다.
- ｢해협의 로맨티시즘｣ 부분
이 점에서 보면 선생은 저 육당의 꾐에 빠진 소년배들의 하나임에 틀림없소. 아무도 그 수심(水深)을 가르쳐주지 않기에 겁도 없이 달려갔다가 날개 젖은 공주꼴이 된 소년배(기림)도, “나의 청춘은 / 나의 조국”이라 외치며 자기 몸을 상실된 조국 자체라 여기고 자기 몸의 감각에 매달려 간 소년배(지용)도, 날개를 찾아 갔다가 날개는커녕 박제가 되어 버린 소년배(이상)도 있었소. 선생은 이들과는 썩 달랐소. “홰보다 밝게 타는 별”이 되고자 했으니까. 하늘에 있는 별 말이외다. 문제는 이런 낭만에 있지 않소. 우리를 난감케 하는 것은 선생께서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점.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바람직한 쪽으로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의 행동화.
임 화: 신념 없는 시대의 후배 청년이여. 그대는 내게 그런 질문을 던질 자격이 없다. 이미 해답을 알고 묻는 형국이니까 비례(非禮) 아닌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하다네. 그대가 여러 곳에서 ｢문학자의 자기반성｣(『인민예술』 2호)에서의 나의 발언, “내 속에 강잉히 숨어 있는 생명욕이 승리한 일본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가”라는 대목을 인용하곤 했음이 그 하나. 다른 하나는 나와 백철의 우정 관계. 그대는 망설임도 없이 적었다. 백철만큼 많은 글을 썼지만 알맹이가 없다. 왜? 새로운 사조가 들어오면 대번에 웰컴! 하고 받아들였으니까. 어떤 신념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또 받아들이기의 명수가 비평가 백철이라고. 그대는 어리석게도『임화 연구』(1989)라는 아주 둔중한 책을, 그도 모자라 그런 식의 『백철 연구』(2008)를 썼거니와 이 두 책 속에 나와 백철의 우정 관계를 아주 소중히 다루지 않았던가. 그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째서 저 타기할 만한 웰컴주의자와 내가 그토록 곡진한 우정을 지속했는가를. 월북(1947)할 때 내가 백철에게 귀띔했음도 그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게 신념 운운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존대하지 않다. 시인일 뿐. 조금 어려운 시대의 시인.
2. ｢비 나리는 品川驛｣을 둘러싸고
김윤식: 좀 현명한 질문을 하라는 말씀이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의 시 ｢雨の降る品川驛｣(『改造』, 1929. 2)은 한․일 계급문학 상에 하나의 시금석으로 놓여 있는 것. 식민지 시대 한․일 간의 문학을 논의할 때 절대로 비켜갈 수 없는 걸림돌 아닙니까. “조선의 사나이요 계집아이인 그대들 / 머리끝 뼈끝까지 꿋꿋한 동무 / 일본프롤레타리아트의 앞잡이요 뒷군”이라는 대목 말이외다. 이는 분명 민족차별이 아니겠는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그대들은 쇠사슬밖에 잃을 것이 없다”(｢공산당선언｣)에 비추어 보라. 어째서 조선 무산자가 일본 무산자의 앞잡이고 뒷군이랴. 이러한 반론에 정작 나카노 자신도 훗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실수였다고. 선생께선 이 시에 화답하여 저 유명한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조선지광』, 1929. 9)를 썼지 않았던가요. “항구의 계집애야, 이국의 계집애야!”로 시작되어 “항구의 나의 계집애야! / 그만 도크를 뛰어오지 말아라 / 비는 연한 네 등에 내리우고 바람은 네 우산에 불고 있다”로 끝나는 이 장시(단편서사시)는 나카노의 것에 비해 품격을 갖춘 것. 민족 차별의 그림자를 남녀사랑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따로 있소이다. 정작 나카노의 그 시가 우리말로 번역되었다는 사실. ｢비 나리는 品川驛―×××기념으로 李北滿, 金浩永에게｣(『무산자』, 1928. 5, 3권 1호)가 그것. 이 한국어역의 소중함은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는 것. 어째서? 원시 자체가 검열로 인해 복원 불가능한 상태였던 만큼 이 한국어역이 거꾸로 훗날 원시 복원에 기여했기 때문. 궁금한 것은 이 시의 역자이겠는데요.
임 화: 그대는 그 역자가 나라고 우기고 싶은가. 이북만(카프동경지부장), 김호영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 김삼규일 수도 있고. 하기야 연극 공부차 나도 거기 가 있었으니까 나일 수도 있겠지. 더구나 나는 시인이고. ｢감옥에서 죽은 여석｣(『무산자』 3권 2호)을 싣기도 했으니까. 어리석은 후배여,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내가 역자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떤가. 그대의 공부하는 방식이란 ‘그 사실 자체’의 밝히기인 모양인데,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대의 공부에 깊은 울림이 없는 것도 그 때문. 보다 소중한 진실을 건너뛰고 기껏 쇄말주의에 매달렸기 때문.
김윤식: 소중한 진실을 건너뛰었다?
임 화: 그대는 나와 백철의 우정의 깊이를 알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번번이 실패했다. 우정과 정치의 관계항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없었다. 책상물림인 증거. “코리아 바렌티노”(『조선일보』, 1933. 1. 21)라 불린 내가 연극 공부차 도일한 것은 1929년. 백수건달인 내가 몸을 맡긴 곳은 이북만의 아지트였다. 셋집(東京府 下吉祥寺 2554번지, 여기에 카프동경지부 간판을 달았다)을 얻어 아내와 누이와 함께 살고 있던 이 대단한 프롤레타리아 이론분자이자 실천가는 재동경조선노동자총동맹 주최 조선노동자위안회를 주도한 인물. 나카노가 주도하는 기관지 ｢프롤레타리아 예술｣(1927. 12)에 이북만은 보고서를 실을 정도. 요컨대 이분만의 조직력은 대단했고 그 조직 속에 나도 끼어들었다네. 식객이라고는 하나 나도 모르게 조직훈련을 몸에 익혔고, 마침내 이북만의 누이(이귀례)와 결혼까지 했다네. 이 무렵 내 앞에 눈부시게 나타난 존재가 있었다네. 이름은 백철. 일본프롤레타리아 시단에 ｢누이여｣, ｢우박이 내리던 날｣, ｢추도｣ 등의 시와 슈프레프콜(당시 신식 발표 방식)인 ｢다시 봉기하라｣ 등을 발표하는 백철, 평론 ｢프롤레타리아 시의 현실 문제｣ 등을 발표하는 조선청년 백철이야말로 눈부신 존재였다네. 알고 보니 혜성처럼 나타난 이 조선청년은 나와 동갑내기. 놀랍게도 일본 최고교육자 양성기관인 동경고등사범학교 학생 신분이 아니겠는가. 나는 평생을 두고 백철을 친구이자 동시에 선생(나보다 앞선 존재)로 여겼다네. 일본프롤레타리아 문단을 휩쓰는 것만큼 조선인으로 통쾌한 일이 다시 있겠는가. 없다! 라고 그때 나는 직감했다네. 나는 보성중학 중퇴생이며 영화배우 노릇이나 하고 ｢우리 오빠와 화로｣(1929) 같은 한국시를 썼지만, 그것이 얼마쯤 호평을 받았다 치더라도 저 백철에 비해 대체 무엇이겠는가. 이 학력 콤플렉스야말로 우정의 거멀못이었다네.
김윤식: 잠깐. 동시에 그것이 정치 콤플렉스이겠습니다그려.
임 화: 내가 귀국하여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서기장이 되었을 때 백철도 귀국했다네. 이 대단한 백철은 귀국하자마나 천도교 언론기관의 비호 아래 신문․잡지에 정신없이 평론을 써재끼지 않겠는가. 그런데 서기장인 나로서는 참으로 딱했다네. 백철의 글이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것.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외치다가도 금방 부정하기를 일삼았으니까. 계급사상으로 글을 쓰라고 외쳐 놓고 동시에 문학이란 개성적이어야 한다고 외치지 않겠는가. 카프 논객들이 가만히 있을 이치가 없었다. 그래도 백철은 눈도 깜짝하지 않더군. 결국은 서기장인 내가 나설 수밖에. ｢동지 백철군을 논함｣(『조선일보』, 1933. 6. 14~17)이 그것. 나는 그 글에서 분명히 적었다. “불행히 백군에게 있어서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당시 동경에 있던 학생들과 같이 조직 활동의 훈련 가운데서 생활할 기회를 그다지 못 가졌다고 한다. 이것은 백군에게 있어서 불행한 가운데도 최대의 불행의 하나”라고. ‘조직훈련 전무’와 ‘학력 전무’의 우정, 이를 두고 백철은 나와 노선을 달리하는 해방공간에서조차 ｢정치와 문학의 우정에 대하여｣(『대조』, 1946. 7)라 했더군. 나라고 해서 어찌 문학이 개성의 소산이며 상상력의 힘임을 모르겠는가. 나 역시 백철만큼 자유분방한 시인이었다. 그렇지만 내겐 조직훈련의 경험이 있었고, 그 속에서 나와 내 문학을 단련시켰다. 이 조직훈련의 힘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문사 아무개 집 부엌엔 숟가락이 몇 개 있음을 아는 것, 이게 또 휴머니즘이 아니겠는가. 서양책 속의 지식으로 외치는 백철의 ｢웰컴! 휴머니즘｣(1937. 1)과 족히 맞설 수 있는 것. 어쩌면 그보다 더 직접적인 것. 이 조직훈련에 단련된 문사라면 누구보다 나를 기억하리라 믿고 싶다네. 그 조직훈련의 현장에서 ｢비 나리는 品川驛｣이 한국어역으로 나온 것. 그러니까 조직훈련 속의 한국어역이 아니겠는가. 어떤 특정 역자를 내세우지 않았음이 어찌 괴이하랴. 카프 동경지부, 그 기관지격인 『무산자』라는 조직 전부가 역자일 수밖에.
3. 물논쟁․자존심․오기
김윤식: 선생은 지금도 여전히 모종의 선생이십니다그려. 그렇더라도 제가 쉽사리 ｢비 나리는 品川驛｣의 역자 찾기를 포기하리라 여기지 마십시오. 오기가 아닙니다. “神(신)은 細部(세부) 속에 있다”는 명제도 소중하다고 믿으니까요. 그런 훈련 속에서 내가 오랫동안 살아왔으니까.
임 화: 그대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한다네. 그대는 오랫동안 관악산에서 ‘한국근대비평론’(3학점 단위)을 가르쳤다. 나는 지켜보았다네. 카프문학 연습 자료 묶음의 맨 첫 번째가 ‘물논쟁’이었다네. 대체 물논쟁이란 무엇인가. 1933년 전후 나는 신문에 창작월평을 매달 썼다네. 소설 월평을 쓴 이유는 소설이야말로 현실반영이라 믿었던 까닭. 그게 리얼리즘이 아니겠는가. 한국현실의 반영을 다룬 소설읽기야말로, 또 작가들의 창작방법론의 지시(방향성)야말로 비평가의 고유한 몫이라 믿었으니까. 그 6월평에 김남천의 소설 ｢물!｣(1933. 6)을 거론했다. 재건공산당 사건에 기소되어 실형 1년 반을 살고 나온 김남천이 자기의 감옥살이 체험을 소설화한 것. 감옥살이를 해 보니 이데올로기 따위보다 물 한 모금이 훨씬 소중하다는 것. 이를 소설에 담았던 것. 그런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것. 대체 김남천은 어쩌자고 이런 따위를 작품이라 썼을까. 내가 혹평할 수밖에. 아무리 물 한 모금이 소중한 감옥살이에서도 이데올로기 제일주의로 생리적 욕구를 물리쳐야 비로소 작품급에 드는 것. 그런데 김남천은 생리 쪽을 우선했다. 이는 패배주의가 아니겠는가. 김남천의 반론이 나올 수밖에. 임화, 너는 감옥살이를 해 봤느냐. 기껏해야 종로 유치장에서 미결수로 몇 달 있었을 뿐. 그런데 봐라. 카프 문사 중 기소되어 진짜 옥살이를 한 자는 나 김남천뿐이 아닌가 하고 대들더군. 이 장면에서 그대는 학생들 앞에서 제법 민첩하게 행동하더군. 임화 쪽이 옳다고. 조직운동의 처지에서 보면 생리적 조건(목숨까지도)이 아무리 다급하고 소중하더라도 ‘이론’에 앞설 수 없는 법. 그런데 그때가 바로 70, 80년대 군부 독재와 싸우던 민중운동 한복판이 아니었던가. 물논쟁이란 그러니까 당시로서는 아주 현실적인 과제였던 것. 교실의 분위기가 숙연해졌음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네.
김윤식: 그야 뭐, 제가 아니더라도 당시로서는 누구나…….
임 화: 적어도 내 안목에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네. 그 증거로 시카고 대학 주최 ‘동아시아에서의 프롤레타리아문학 심포지엄’(2002. 11. 1~2)에서 그대가 발표한 논문 ｢한국근대문학사의 시선에서 본 카프문학｣을 들고 싶네.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1930년대 전후 계급문학의 상호관련성(영향관계)을 겨냥한 이 심포지엄에서 그대는 당연히도 ｢비 나리는 品川驛｣과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를 내세워야 했을 것(그대가 쓴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의 부록 ｢임화론｣의 일본어역에 의해 水野直樹씨가 ｢비 나리는 品川驛｣의 한국어역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찾아냈으니까 그만큼 그대에겐 친근한 과제였던 것). 그런데도 그대는 이 과제를 언급하지 않았더군. 무엇보다도 그대는 카프문학의 중심부에 물논쟁을 내세우지 않았던가.
김윤식: 선생의 자존심의 근거, 바로 그 조직훈련. 조직훈련이 휴머니즘이라는 신념. 백철 선생에겐 결여된 것. 그렇지만 선생은 백철 선생을 한없이 부러워했음도 사실 아닙니까.
임 화: 그대가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네. 그대는 한동안 나를 이식문학론자라 하여 비판해마지 않았다. 내가 쓴 ｢조선신문학사｣ 때문. ｢개설조선신문학사｣(1939~40)를 쓰면서 그 방법론으로 ｢신문학사의 방법｣(1940. 1)을 썼다네. 그 첫줄에 나는 이렇게 썼다네. “신문학사의 대상은 물론 조선의 근대문학이다. 무엇이 조선의 근대문학이냐 하면 물론 근대정신을 내용으로 하고 서구문학의 장르를 형식으로 한 조선의 문학이다”라고. 그러니까 “서구문학의 장르”가 그 형식조건이라는 것. 따라서 그것은 저 일본이 먼저 도입한 서구장르라야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자연 “신문학사란 이식문학의 역사”일 수밖에. 일본의 명치(明治), 대정(大正)기의 이식일 수밖에. 육당, 춘원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민족문학사론이 민중주의 문학과 더불어 팽배한 문화 풍토에서 볼 때, 나의 이론 주장은 난처했으리라 짐작된다. 이에 대해 그대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이 머뭇거렸다. 누구보다 그대는 ｢비 나리는 品川驛｣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니까.
김윤식: 선생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조금 짐작됩니다그려. 백철 콤플렉스가 아니겠습니까.
임 화: 그렇다네. 나는 신문학사를 쓰지 말았어야 했는데 결국 쓰고 말았다네. 그러자니 자연 방법론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방법론을 문제삼자니 문학제도사를 문제삼지 않을 수 없었고…… 이게 어째서 백철 콤플렉스인가. 여기에는 많은 설명이 따를 수밖에.
김윤식: 뭣하시면 제가 조금 설명해 볼까요. 선생께서 신문학사를 쓰고자 한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하나는, 나아갈 지평이 막혔음. 카프 전주 사건(1934~35) 이후 나아갈 지평이란 아무데도 없어 보였고, 그러니까 뒤돌아볼 수밖에. 다른 하나는, 이 점이 바로 콤플렉스에 관여된 것인바, 신남철(申南澈)의 논문 ｢최근 조선문학사조의 변천―신경향파의 대두와 그 내면적 관련에 대한 한 개의 소묘｣(『신동아』, 1935. 9)가 발표되었을 때 선생은 매우 충격을 받지 않았던가요. 선생이 쓴 ｢조선신문학사론서설｣(『조선중앙일보』, 1935. 10. 9~11. 13)은 이에 대한 반론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 출신인 신남철의 이 논문을 선생은 참기 어려웠으리라 짐작됩니다. 신경향파 문학을 논했기 때문. “비상히 유치한 수법, 졸렬한 취재, 미숙한 문장, 초보적인 자각의식을 가지고 시를 쓰고 소설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광수의 유려한 작품보다 낫다는 것을 신남철이 증명하고자 덤비고 있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런 주장을 국외자인 신남철이 해도 되는가?
임 화: 제국대학은커녕 보성중학 중퇴인 나지만, 이 학력 콤플렉스에 도전해 볼 수밖에. 이게 단지 오기에서 나온 행동일까. 국외자의 개입에 대한 자기방어일까.
김윤식: 카프가 해체된 마당이지만 적어도 한때 그 서기장이었으니까 오기일 수도 있을 법하네요.
임 화: 오기이기보다는 조직에 대한 그리움이라 하면 어떠할까. 전체를 아우르고자하는 의지.
김윤식: 문학사 기술보다는 시를 짓거나 월평을 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아니, 꼭 그렇지도 않을지 모릅니다. 탈근대, 근대의 초극론에서 보면 이식문학사론이란 한층 문제적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중어 글쓰기 공간 말이외다.
임 화: 그대 마음 씀이 고맙기는 하나 굳이 나를 위로할 필요까지는 없다네. 임제의 말(임제록)처럼 ‘시절 인연’에 의한 것이니까.
김윤식: 그런 뜻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만나 뵙고 싶다는 그런 뜻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이 아득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이럴 때 선생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까, 또 어떻게 읊을까. 그런 뜻으로 한 말이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