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신용_시인. 1945년생
시집 『버려진 사람들』 『개 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 『도장골시편』, 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 『기계 앵무세』 등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지금은 헐리고 없어진 양동 골목에 있었지요
이 시는 나의 데뷔작인 「양동시편- 뼉다귀집」의 도입부이다. 나는 이 시를 양동의 골방에 엎드려서 썼다. 그러니까 1988년 가을, 그때 막 창간을 한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을 통해 세상에 소개되었었다.
내가 이 시를 쓸 무렵, 양동은 이미 철거되어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1980년, 서울 지게꾼 생활 십년 만에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나는 일부러 죄를 짓고는 교도소로 들어갔었고, 그 감옥에서 출감하자마자 서울 근교에 있는 산사로 들어가 일 년여 동안 불목하니로 기거하다가, 다시 양동으로 돌아왔을 때, 눈앞에는 폐허뿐이었다. 그 뜯긴 자리에는 고급호텔인 힐튼호텔을 짓기 위해, 포클레인이 철거된 빈민굴의 잔해들을 긁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는 채 뜯기지 않은 양동의 무허가 하숙집들이 부스럼딱지처럼 남아 있었고, 나는 그중 한 무허가 하숙집에 세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 시를 썼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때 또 다시 청계천의 지게꾼이 되어 있었다.
기억해 보면 내가 이 시를 쓸 무렵, 나는 쉬는 날이면 남산 공원을 오르곤 했었다. 그리고 발아래 펼쳐져 있는, 뜯겨 폐허가 되어 있는 양동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혼자 서성이고는 했었다. 서울역 앞에 있는, 이 땅의 최대의 빈민굴이자 사창가였던 양동, 그 양동은 이미 뜯겨 사라지고 말았건만, 그 풍경들은 너무도 생생히 떠올랐다. 나는 우울한 시선으로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서성이곤 하였다. 양동은 어디로 갔는가? 어디로 사라졌는가? 어쩌면 그때, 이 자문자답형의 의문으로부터 이 시가 쓰였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비록 양동의 본체는 뜯겨 사라졌으나 주변에는 여전히 양동의 풍경들이 남아있었다. 그 남아 있는 빈민굴의 풍경들은 철거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뜯긴 것은 형상일 뿐 본질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때, 질문이기도 한 이 의문으로부터 이 시의 이미지들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미지 속에는 내가 목격했고 마주쳤던 무수한 양동의 풍경들이 집약되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집약은 어둠의 한 형태와 같았기 때문에 혼돈스러웠을 것이다. 그랬다. 그 어둠 속에는 내가 일부러 죄를 짓고 교도소를 걸어 들어갈 때의 그 공황장애증과 같은, 굶주림이 가져다준 자학과 피학의 몸부림 속에서, 그 굶주림의 펀치드링크와 같은 공황장애증을 치유해줄, 하나의 불빛의 이미지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뼉다귀집은, 그 자학과 피학의 어두운 양동의 골목 속에 있었다. 이 빈민굴의 어두운 골목에서 서식하고 있는 온갖 부류의 밑바닥 인생들에게 새벽부터 돼지 뼈를 고아서 술국밥으로 파는 작고 허름한 식당이었다. 내가 그 양동 본체의 주민이었을 때 나는 그 뼉다귀집 위층의 일세 방에 세 들어 있었다. 물론 그때에도 역시 나는 청계천의 지게꾼이었다. 그러나 추운 겨울, 하루 온종일 공치고 빈 지게를 터덜거리며 돌아오는 귀가길, 나는 염치 불구하고 그 뼉다귀집을 찾아들곤 했었다. 그 뼉다귀집 주인인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막일 하는 사람이 몸 버리면 다 버리는 거여, 몸 보하는 디는 요 궁물이 제일이랑께, 언제든지 와서 묵어, 세상에 배고픈 설움보다 큰 설움은 없응께!”
그리고 돈이 없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술국밥 한 그릇을 듬뿍 내어놓곤 하였었다. 그러면 나는 그 국밥 한 그릇으로 종일 굶주렸던 공복을 메우며 몸속에서 차오르던 어떤 증오나 분노 따위를 누그러뜨리곤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억이 따듯한 불빛 하나로 철거된 양동의 폐허 위에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지금은 헐리고 없어진 양동 골목에 있었지요
하는 시의 도입부를 상상해 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불빛을 찾아 지금까지 내가 시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그 불빛이 내 시의 마지막 종착점이듯. 그리고 지금까지 쓰인 시들, 앞으로 쓰일 시들은 그 무수한 변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며칠 전, <나의 데뷔작>을 써달라는 원고청탁을 받고 자료를 찾기 위해 묵은 원고를 뒤적이다가 그 속에서 한 장의 메모를 발견했다. ‘속삭임, <속삭임>’이라는 부제가 붙은, 습작시 형태의, 지금 보니 알랜 긴즈버그의 시 ‘울부짖음’에서 운을 빌려온 듯한, 어쩌면 소설의 플롯을 위해 짧은 구문으로 단락 지어진 듯한 글이 그 메모지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나는 보았다. 젖먹이가 구걸의 소도구로 쓰이기 위해 일당에 팔려가는 것을
약물에 취한 창녀가 벌거벗은 채 대낮의 길 한복판에서 발광을 하는 것을
술 취한 부랑자들이 거지여인을 강간하고, 어두운 골목의 쓰레기통에 머리를 처박은 채
꿈틀거리고 있을 때
임신을 한 거지여인이 출산을 위해 지하도로 내려가는 것을
또 술 취한 날품팔이들이 소주병을 깨어들고 골목을 비틀거릴 때
그 벌겋게 드러난 뱃거죽에서 햇볕들이 붉은 혀를 날름이는 것을
나는 보았다. 무허가 하숙집의 골방에서 알콜중독으로 죽은 지게꾼 아비의 장례를 위해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찾아온 야윈 소녀가, 그 아비의 주검을 길바닥에 내어놓고
무연고 행려병자의 시체를 실어갈 앰블런스를 숨어서 기다릴 때
그 등 뒤에는 붉은 벽돌 건물에서 기어 나온 뚜쟁이들이 어둠처럼 서성이는 것을
(下略)
그리고 지금도 내게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다. 나는 그것을 「수련에 대하여」라는 시로 써서 발표하기도 했지만, 그 기억은 쉽사리 지워지질 않는다. 그것은, 한 창녀가 이른 새벽의 양동 빈민굴의 지붕 위에 올라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발가벗은 채, 먼 곳을 향해, 마치 넋이 나간 듯 멍한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인가를 애타게 부르는 듯이, 어서 오라고,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기라도 하는 듯이, 먼 허공을 향해 애타게 손짓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혹시 그 손짓은, 저 뼉다귀집의 불빛을 그렇게 애타게 부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