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에 대한 강박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향한 유쾌한 소동 - 2005년의 화제작,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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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대한 강박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향한 유쾌한 소동
- 2005년의 화제작,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글 / 최재봉_한겨레 문학전문기자. 1961년생
저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통신』, 역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
일본 소설이 한국 서점가를 점령하다시피 하던 시절이 있었다. 2005년부터 조짐이 시작되어 2006~7년 사이에 절정으로 치달았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춤해진 것으로 판단된다(물론 얼마 전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에 대해 1억엔(약 13억여 원)의 선인세가 제시되는 ‘사건’이 있었지만, 이는 약간 예외적인 현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 오쿠다히데오(사진제공 : 은행나무)
2005년 1월에 번역 출간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는 ‘한국 소설 시장의 일류(日流)’를 선도한 작품으로 꼽힌다. 2004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이 소설에 대한 한국 내의 최초 반응은 그다지 폭발적이지 않았다. 출간 첫해에는 5만부가 나간 것으로 집계되었다. 물론 5만이라는 숫자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이듬해인 2006년의 30만부 판매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제까지 『공중그네』는 80만부 가량 판매되었으며, 지금도 한 달 평균 1만부 정도가 팔리고 있다고 출판사 은행나무 쪽은 밝혔다. 『공중그네』 이전 한국에 소개된 일본 소설이라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 두 무라카미들과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같은 여성 작가들의 감성 소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독자층 역시 20~30대 젊은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공중그네』의 독자는 남녀 사이에 큰 차이가 없으며 연령대로 보아도 초등학생에서 40대까지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 이후 추리와 공포물 같은 일본 장르소설들이 대거 소개되면서 이제 일본 소설의 한국 독자층은 더 이상 20~30대 젊은 여성들이 절대적으로 점유하지는 않게끔 되었다. 한국 독서 시장에서 『공중그네』의 선전에는 시간과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2005년 7월에 이 작품의 전작(前作)인 『인더풀』이 소개되고 이듬해 7월 장편 『남쪽으로 튀어』가 번역 출간되면서 『공중그네』의 판매에는 뒤늦게 탄력이 붙었다. 이후 『공중그네』의 또 다른 연작인 『면장선거』를 비롯해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10여 종과 에세이 등이 번역 소개되면서 가히 ‘오쿠다 히데오’ 붐이 일다시피 했다. ‘붐’은 다른 일본 작가들에게도 번져서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장르 작가들을 중심으로 마니아 독자층이 형성되고 이들의 작품이 대거 소개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결국 2005년을 기점으로 일본 소설은 미국 소설을 누르고 한국 내의 번역소설 시장점유율과 종수에서 수위를 차지했다. 일본 소설 자체 비교를 보더라도 종수가 2004년에 비해 2005년에 42% 성장했으며, 2006년에는 다시 전년 대비 20% 성장세를 보였다.
▲ 『공중그네』
그렇다면 『공중그네』의 어떤 점이 한국 독자들에게 어필했던 것일까. 연작 단편 다섯을 묶은 이 소설은 이라부 이치로라는 신경정신과 의사의 독특한 캐릭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존대법을 배우지 못한 듯 시종 반말로 일관하는데다 환자를 결박해 놓고 다짜고짜 비타민 주사부터 찌르고 보는 막가파식 진료, 살짝 정신줄을 놓은 듯 괴기스러울 정도로 천진난만한 웃음소리, 여기에다가 못 말리는 식욕까지……. 이라부를 돕는 간호사 마유미 역시 범상치 않다. 가슴과 허벅지를 시원스레 드러낸 섹시한 간호사복 차림으로 심드렁하게 담배를 피워 대거나 록음악 잡지를 뒤적이다가도 이라부가 부르면 핫도그만큼 굵은 주사기를 들고 나와 비타민 주사를 놔 주곤 하는 흥미진진한 조연이다. 이렇게, 의사라기보다는 그 자신이 환자에 더 가까워 보이는 이라부가 환자들을 ‘치료’하는 방식은 더욱 엽기적이다. 칼부림이 예사로 일어나는 야쿠자들의 담판 현장에 나타나 어울리지 않는 훈수를 두거나, 하마 같은 몸으로 공중그네 서커스에 도전하기도 하고, 일탈 충동에 시달리는 환자와 의기투합해서 육교 위의 이정표에 어린애 같은 장난을 치기도 한다. 1루 송구에 애를 먹는 프로야구단의 붙박이 3루수, 자신의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역시 이라부의 병원을 찾았다가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도 희한한 것은 이라부의 이런 엽기 행각이 묘하게도 뚜렷한 치료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겉보기에 이라부는 환자들의 고통에는 별 관심이 없이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환자들은 그의 엉뚱한 언행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증상을 치유할 수 있게 된다. 『공중그네』는 물론 『인더풀』과 『면장선거』 등 신경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등장하는 연작들에서 그에게 상담을 의뢰하는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성공에 대한 지나친 강박으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이들이다. 이라부는 환자들의 이런 ‘약점’을 한눈에 꿰뚫어보고 그들의 긴장을 풀어 주는 것을 치료의 핵심으로 삼는다. 그의 엉뚱하고 유쾌한 소동을 통해 환자들은 자신의 오랜 증상에서 벗어나게 되고 독자들 역시 현대 사회 특유의 긴장을 잠시나마 풀고 한껏 웃을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라부의 엽기 행각은 이중의 치유 효과를 지니는 셈이다.
▲ 『남쪽으로 튀어』
『공중그네』는 인터넷 포털 네이버와 교보문고 네티즌이 선정하는 ‘올해의 책’, 책을만드는사람들 선정 ‘올해의 베스트셀러’, 책따세 추천 청소년 권장도서 등으로 선정되었다. 서울대 도서관에서는 연간 대출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연극으로도 각색되어 무대에 올랐으며, 영화 판권 역시 팔려서 제작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장편 『남쪽으로 튀어』 역시 책따세 추천 청소년 권장도서를 비롯해 몇몇 단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공중그네』가 주도한 소설 시장의 ‘일류’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을 비롯한 일본 소설을 한국 소설보다 즐겨 본다는 독자들은 한국 소설이 지나치게 심각한 데 비해 일본 소설은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그 안에 자신들이 공감할 만한 고민과 꿈을 담았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그런 견해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다고 해서 한국 소설이 일본 소설을 따라 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공중그네』의 주인공 이라부와 같은 만화적 접근으로 현실의 정말 심각한 문제들이 해결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진짜’ 문제들을 직시하되, 문체와 형식에서 낡은 틀을 벗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향이 한국 소설이 가야 할 길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