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조선의 지식인들과 함께 문명의 연행길을 가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 등
1. 천하로 하여금 조선에 인재가 있음을 알게 하리라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은 1592년에서 1609년 사이 세 차례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이 세 번의 사행으로 그는 명나라 문물을 풍부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는 명나라의 산천과 풍속과 연로의 사정을 집안 마당처럼 꿰뚫고 있기에, 당시 연경에 사신 가는 사람은 모두 자기에게 시문을 청한다고 자부하였다. 그는 연경 체험의 의의를 ‘세상 물정 모른 채 산골 오두막에 살며 자족하던 사람이 갑자기 화려한 궁궐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것’으로 비유했다. 유몽인에게 있어 연행은 문화적인 재탄생이었던 것이다. 유몽인의 포부는 연경 문물의 체험을 자랑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조선과 중국은 영토의 크기에 있어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따지고 보면 똑같은 하나의 나라이다. 더구나 인재가 있음은 두 나라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조선은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높지 않고 품어 기르는 포용력이 작았으니, 이로 인해 조선이 중국으로부터 그 존재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함은 물론, 조선의 인재들도 그 능력을 펴 보이지 못한다고 했다. 유몽인은 이를 천추의 비분으로 여겨, 각건(角巾) 차림으로 혼자 준마를 타고 중원을 주유하는 꿈을 꾸었다.
▲ 유몽인의 초상. 임란 전후에서 인조반정에 이르는 시기, 유몽인은 현실 모순을 바로잡고자 한 정치 관료였고, 모순의 인식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려한 문장가였으며, 자유를 추구했던 사상가였다.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에 밝은 유자들, 충신(忠信) 도덕의 선비들, 뜻과 기상이 큰 호걸의 무리들과 흉금을 트고 간담(肝膽)을 꺼내주며 의기로운 사귐을 맺어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동국에도 인물이 있음을 알게 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고래가 자라려면 물이 깊고 넓어야 하고, 호걸을 얻으려면 넓은 세상에 나가야 한다. 유몽인은 작은 웅덩이에서 질식하며 바다를 꿈꾸었던 한 마리 고래였다.
2. 선진 문물을 관찰하여 조선의 생민들을 살릴 방도를 찾다
유몽인의 문집에는 2백30여 수의 연행 관련 한시가 들어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1609년 세 번째 연행에서 지어진 것이다. 이 시들에는 개인의 감회나 연로변의 산천 풍경은 물론, 명나라의 문물과 제도, 민간의 풍속에 대한 묘사가 다채롭게 들어있으며, 유몽인의 예리한 관찰, 섬세한 감각, 풍부한 식견과 따스한 상상 등이 곳곳에서 반짝인다. 새로운 인식만이 새로운 기록을 낳고, 뜨거운 관심과 높은 안목만이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유몽인의 눈에 드는 것은 무엇 하나 새롭고 충격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통주(通州)의 숙소 벽에 적은 시구, “여덟 자 긴 깃대로 큰 붓을 만들어도, 중원의 문물들을 다 그리기 어려워라(八尺長杠爲大筆, 中原文物寫難窮)”는 당시 유몽인의 내면을 잘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명나라 문물 제도에 대한 관심과, 이를 배워 조선에 적용시키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1609년은 임진왜란으로 거덜 난 국가 살림을 재건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유몽인은 조선 사회의 최대 약점이 생재(生財 : 경제)와 치병(治兵 : 군사)에 있다고 보았다. 임진왜란을 겪고, 국가 재건이 부진한 이유가 모두 이 두 가지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두 분야에 있어 조선의 약점을 낱낱이 비판하고 개선책을 제시하였는데, 그 논거의 많은 부분은 연행을 통한 연구와 관찰에서 얻은 것이다. 아래는 조선 경제와 군사 제도의 약점을 지적한 글이다. 호칭은 관병(官兵)이나, 관에서는 의복과 식량을 지급하지 않고 바람과 이슬로 군사를 기른다. 군사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형세 상 농기구를 잡지 않을 수 없지만 관리들의 질책이 끊임없이 몰아친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맡을 수 없어 끝내는 집을 허물고 솥을 지고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니 나라에 군사가 없다. 장사꾼이 백리를 가려면 말의 여물과 옷과 식량과 상품을 등에 지는데, 하룻밤을 묵어도 어떤 것 하나 해결되는 게 없다. 그러니 따로 말을 준비해야 하는데, 길이 멀수록 짐은 더욱 많아진다. 이런 까닭에 천리를 가려는 자는 말 열 마리를 준비해서 나서야 한다. 사정이 이러니 장사꾼이 길에 나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공사 간에 정도를 잃어 백성들에겐 재물이 없다. 유몽인이 보기에 명나라 경제의 장점은 상업의 발달이고, 경제의 근간은 화폐의 사용이었다. 화폐의 사용으로 물자의 유통이 원활하고 점포가 번성하니, 그들의 생활은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주잡영(中州雜詠)」 18수는 명나라의 문물과 제도 중에서, 일상생활의 토대가 되는 성지(城池) · 병마(兵馬) · 기계(器械) · 은전(銀錢) · 가포(街鋪) · 석회(石灰) · 석탄(石炭) · 도전(陶甎 : 벽돌) 등을 각각 7언 율시의 형식에 담아낸 작품이다. 이 중 ‘은전(銀錢)’은 화폐 제도의 이로움과 묘처를 말한 것이다. 백성들은 농사를 지으면 그만이라지만, 화폐를 활용해야 서로 이익을 남기며 필요한 물건을 매매할 수 있다. 이익의 근원은 화폐이고, 화폐가 사용되지 않으면 결국 세상의 모든 생산 활동이 멈출 것이라고 했다. 유몽인은 명나라 화폐 제도의 운영을 면밀히 관찰하며 조선의 사정을 떠올렸으니, 아래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바퀴자국 속 붕어를 언제 하해 내보내何年轍鮒通河海
우리나라 백성들을 구렁에서 꺼내줄까竟使吾黎免墮坑
바퀴자국에 모인 빗물 속의 붕어를 살리려면 물이 많은 곳으로 내보내야 한다. 입만 뻐끔대며 죽음을 기다리는 붕어는, 물산의 유통이 차단된 채 궁핍에 시달리는 조선 백성을 상징한다. 유몽인은 명나라 풍속을 묘사한 34구 「잡시(雜詩)」의 끝에서도, “다만 원키는 화폐를 유통시켜서, 우리나라 살림을 되살린 뒤에, 허리와 주머니에 돈을 채우고, 천하의 산수 두루 보는 것일세”라고 하여, 화폐 제도를 운영하여 조선의 경제를 살린 뒤, 자신은 축적된 부를 가지고 천하를 노닐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말하였다. 유몽인의 관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석탄에 대한 시에서는, 채굴의 광경과 어려움, 그리고 가공의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했으며, 세 끼 밥을 지어도 연기 하나 나지 않는 실제 효용을 강조했다. 19세기 말에야 석탄이 사용되는 조선의 사정을 생각하면, 그보다 2백50여 년 전 석탄의 실용성에 주목한 안목이 놀랍다. 벽돌 사용론은 18세기 후반 북학파 학인들이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유몽인은 1609년 이미 그 수준의 인식에 도달해 있었다. 벽돌 굽기를 다룬 ‘도전(陶甎)’에서는, 벽돌을 구워내는 장면에서 벽돌로 쌓는 성의 견고함을 두루 말한 뒤, “적당히 굳었을 때 땅에 입힐 만하니, 돌아가면 제일 먼저 강남 장원에 시험하리(不濘不埃堪衣地, 歸來先試水南庄)”라고 하여 귀국한 뒤 몸소 실천해볼 의지를 보여주었다.
3. 국외여행에 임하는 고위관료의 준비와 자세
남은 문헌 기록을 놓고 볼 때 유몽인의 중국 이해는 연행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수준이다. 18세기와 달리 사신들의 자유 행동이 엄격히 제한되던 시절, 유몽인이 보여준 관심의 너비와 묘사의 정밀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행자의 자세와 준비, 그리고 안목을 생각해야 한다. 유몽인은 왕명을 받은 사신이었으니, 그의 관찰과 판단, 기록과 보고는 국가 안위와 백성들의 삶과 직결된다. 어찌 그 연행이 한만한 여행에 그칠 수 있었으랴! 유몽인은 미리 준비하고 널리 생각하였으며, 깊이 통찰하고 부지런히 기록했던 것이다. 보이는 것에 눈길을 빼앗기면, 보이지 않는 것을 놓치는 법이다. 유몽인의 『조천록(朝天錄)』(1609년)은 지식인 관료의 여행 자세, 그리고 외국 문물의 수용과 풍속 이해의 역사적 지침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하다. 복잡다단한 외교 관계 속에서, 또는 다른 문화권과의 교류 속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관찰하고,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7백년 연행의 역사에서 중원 문물에 대한 관심과 이해와 기록에 있어 가장 뜨거운 열의와 높은 수준을 보여준 사람은 누구일까? 사람에 따라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김정희 등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나는 그들의 앞자리에 유몽인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몽인은 연행로 뿐만 아니라, 역사의 길 저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지면의 제한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함이, 또 그의 기록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