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在日朝鮮人女性文学論』(日本 作品社), 역서 『사랑 후에 오는 것들』(공지영, 츠지 히토나리 작)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신경숙, 쓰시마 유코 작) 등
2009년 여름 일본에서 가장 화제가 된 책은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의 『1Ｑ84』이다. 5년 만에 발표된 이 장편은 출간 전부터 예약이 쇄도, 출간 후에는 7주 연속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품귀 현상을 보이는가 하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악과 소설, 하루키의 과거 작품들이 앞 다투어 새로 출간되는 등 하나의 사회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7월에 발표된 상반기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 수상작 또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포함되어 있으나, 한국에서도 거액의 선인세로 화제가 되고 있는 하루키의 작품이나 양 문학상의 수상작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번역 출간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굳이 여기서 소개가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 야마다 에이미가 등단 24년째를 맞이하며 발표한 『학문(学問)』(新潮社)은 그녀의 새로운 대표작으로 평가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소설은 고도성장기인 60~70년대 지방 소도시를 무대로 도쿄에서 전학 온 후토미와 네 아이들의 7살부터 18살까지의 변화와 성장을 담은 작품이다.
▲ 야마다 에이미의 『학문(学問)』
후토미가 실체를 알지 못하면서도 성에 눈 떠가는 과정이 대담한 묘사와 관능적인 표현으로 작품의 커다란 축을 이루며, 카리스마적인 매력을 갖춘 소년 텐짱의 지식욕과 지배욕, 한시도 손에서 과자봉지를 놓지 못하는 병원장 아들 무료의 식욕, 텐짱의 열렬한 팬이며 늘 졸려하는 치호의 수면욕 등 작가의 오랜 테마인 욕망의 실체를 다루고 있다. 욕망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를 자제하며 타자와의 관계를 배우는 것을 학문이라 할 수 있으나, 이 역설적인 제목은 사람을 성장시키면서 동시에 굴절시키는 욕망이야 말로 삶을 적극적으로 영위해 가는 원동력이란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의 한명으로 뽑히는 그녀. 많은 독자들은 소설을 교과서로 자신을 학생으로 학교에서는 결코 가르쳐주지 않는 학문을 그녀를 통해 배운다 할 정도로 독특한 관계를 지닌 작가이다.
각 장의 첫머리에 삽입된 등장인물들의 미래의 사망 기사는 그들 욕망의 귀결이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그들이 보낸 삶의 시간들을 더욱 눈부시게 부각시키며 삶과 죽음의 불가분성, 유기적인 관계를 강하게 인식시킨다. 청춘소설에 흔히 보게 되는 도취적인 문장이나 표현 없이 아름답고 단정하며 세련된 문체 또한 이 작품이 그녀의 새로운 대표작이란 평가를 납득하게 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는 요즘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적도 잊히기 마련이며 베스트셀러란 신간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이러한 상식을 뒤엎는 베스트셀러가 등장해 일본 출판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기타가와 아유미의 추리소설 『황금 요람(金のゆりかご)』(集英社)은 1998년에 발간, 2001년에 다시 문고판으로 출간되나 올 3월까지 판매된 것은 1만3천부에 지나지 않았다.
▲ 기타가와 아유미의 『황금요람』
하지만 올 봄 일본의 대형서점인 기노쿠니야서점의 한 점원이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면서 그 운명이 바뀐다. “이런 책과 만날 수 있어 서점원을 그만 둘 수 없습니다!” 란 POP을 내걸고 열심히 숨은 걸작임을 선전한 결과 점내 베스트셀러 상위에 진입, 이 순위를 본 다른 서점들이 서둘러 책을 주문하고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겨우 세달 만에 13만부란 기록을 세웠다. 출간되고 10년도 지난 다음에야 화제작이 된 데에는 서적 자체가 간직한 힘 때문이겠지만,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식 열정이 이변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29살의 택시 운전사 우에노는 뇌 구조를 개조함으로써 천재를 양성하는 GCS유아교육센터로부터 입사요청을 받는다. 우에노도 태어나서부터 그곳의 교육을 받고 한때는 천재소년이라 불리며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으나, 한계가 드러나자 버려지다시피 한 인물이었다. GCS센터에는 9년 전 네 명이 아이들이 차례로 정신착란을 일으켰다는 어두운 소문이 있는데, 그 중 한 아이인 마모루는 우에노의 아이를 임신하고 함께 도피행각을 벌인 적이 있는 리카의 아이였다. 갑자기 실종된 리카와 GCS센터의 비호 아래 있는 마모루를 지키기 위해 우에노가 입사에 응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1995년에 등단한 기타가와는 약력은 물론 성별조차 알려지지 않은 복면 작가이다. 최첨단 과학과 의학지식을 구사하며 거듭되는 반전으로 마지막까지 범인의 추리를 거부하는 전개가 특징이라 하겠다.
수년전부터 뇌 과학이 큰 붐을 일으키고 있으나 작품이 발표된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는 아직 생소한 단어였다. 첨단 과학과 이와 관련된 조기교육이란 소재는 시대가 오히려 작품을 뒤따라간다는 인상조차 갖게 한다. 추리소설 자체의 묘미를 즐기면서도 유아조기교육은 과연 애정에서 기인한 것인지, 인간의 가치란, 개개인의 목숨은 진정으로 평등한지 등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