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원, 그의 연애

 

글 / 김애란_소설가 1980년생

소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1953년, 남북이 휴전협정을 맺은 해에 태어나셨다. 정래를 정래라 하지 않고 증래라 부르는 충청남도 산골에서 자라, 기분이 좋을 때면 저보다 세 살 많은 지아비를 ‘증래야, 증래야’라고 부르는 여자와 결혼하셨다. 해마다 명절 때면, 큰집 마루에 민래, 필래, 일래, 청래, 완래, 성래, 윤래 등의 이름을 가진 영장류가 모여 조상들께 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쪽에선 ‘래(來)’자 돌림 남자의 아내들이 둘러앉아 의성 김(金)씨 욕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중 우리 엄마 목소리가 제일 크다. 
키는 173, 몸무게는 72. 젊어, 가물치며 뱀탕이며 몸에 좋다는 걸 아내가 다 해먹여도 살이 안 붙더니, 마흔 넘어 절로 몸이 부셨다. 본인은 나이에 어울리는 풍채라고 흡족해하시지만 나는 젊었을 적 아빠 얼굴이 더 마음에 든다. 선해서 가난해 보이는 건지, 가난해서 선해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다. 사진 속 청년은 앞으로 자기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얼굴을 한 채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서글서글한 눈매 위론 미래를 향한 어렴풋한 낙관이 서려있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일이지만, 나는 아버지가 웃고 계신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버지 옆에 엄마와 언니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북처녀처럼 곱고 한 살 난 아기는 심드렁하니 무척 말랑말랑해 보인다.

▲   필자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 어머니와 언니의 단란한 한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만난 건 1977년도의 일이다. 아버지의 친구가 인근 초등학교 소사로 일했는데, 그 소사가 또 어머니 친구의 조카라 양쪽에서 중신을 섰다. 장소는 어머니 고향인 독곶의 한 초등학교 앞 구멍가게. 네 사람은 음료수를 시켜놓고 앉아 ‘뽕’을 쳤다고 한다. 얘기를 듣던 중, 엄마에게 ‘뽕’이 뭐냐고 묻자 담담하게 화투라고 일러줬다. 아니 그럼 초면에 아버지랑 같이 화투를 쳤다는 말이냐고 추궁하자, 카페도 극장도 없는 강촌에서 할 것도 없고 어색해서 그랬단다. 원카드처럼 화투 일곱 장 갖고 노는, 먹을 것 내기 게임이었다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반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별로였다. 그날, 아버지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엄마를 집까지 바라다 줬다. 그러고는 방위병 친구를 통해 어머니에게 자주 쪽지를 보냈다. 대부분 어디서 몇 시에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는 그곳에 나갈 때도 있었고 그러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녀에게 바람 맞은 날이면 아버지는 밤새 씩씩거리며 잤다. 두 사람은 주로 해질녘 바다에서 만났다. 지금은 현대중공업 단지가 들어서 있는 외진 해안가에서이다. 아버지는 6개월 동안 어머니의 손을 한 번도 잡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 남자가 선수 아니면 숙맥일 거라고 생각했다. 만남은 간간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진솔해보여서, 아버지는 어머니가 예쁘고 활달해서 좋았단다. 그리고 마침내 내성적인 아버지가 만취된 상태에서 덥석 엄마 손을 잡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조양, 인간을 그렇게 오래 저울질 하는 게 아니유. 나 김정래란 사람을 한 번 믿어 보시유. 절대 실망 시키지 않을 거유."
그러고는 속에 것을 다 토하기 시작하는데, 어머니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그의 마음을 받아주기로 결심했다. 내가 뭐라고 한 남자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나, 돈이나 명예보다 사랑이 중요하지 않나, 앞으로 날 딱 이만큼 사랑해줘도 그 사랑 바라보며 계속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땐 느이 아부지 안됐단 생각만 했지, 지금도 이렇게 술을 마셔대면, 나중엔 얼마나 더 처먹을까 하는 생각은 미처 못 했다. 내가."
1년 후 아버지는 인천의 작은 전기회사에 다닌다. 시골에 있는 어머니와는 당연 소원해진 모양인데, 그렇게 멀어지면 될 것을, 외할아버지와 다툰 후 아버지의 자취방에 찾아간 어머니가 이 양반 일기장을 들춰본 게 화근이었다. 어머니는 공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마음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아버지의 일기는 조양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의 내용으로 빼곡 채워져 있었다. 처음 겪는 타지 생활의 외로움도 한몫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 절절함에 또 ‘내가 뭐라고 이 남자를 힘들게 만드나’ 자책했고, 그러다 결국 우리 큰언니까지 만들어버렸다. 아버지가 일기를 쓰며, 문학이 번식에 도움 된다는 걸 의식했을 리 만무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 처음이 있어 우리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니 아마 그 즈음이었으리라. 아버지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 부모님의 사진을 보면 느낄 수 있다. 30년 전, 아버지는 진심으로 자기 인생을 좋아하는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니 회사 점심시간에 밥도 거르고 엄마를 보러 갔을 것이다. 가슴팍엔 호빵을 넣은 채, 그게 식을까봐 수도곡산 꼭대기까지 종종거리며 달려갔을 것이다. 아버진 호빵엔 손도 안 대고 아내가 먹는 모습만 쳐다봤다. 그러곤 회사로 돌아가며 방문 앞에서 한 번, 부엌문 나서며 한 번, 대문 나가며 한 번 이렇게 세 번 몸을 돌려 엄마를 바라봤단다. 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게 많지만 어쩐지 나는, 왠지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문 세 개를 통과하는 순간,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 지 아버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셨겠지만. 작은 우연에서 비롯된 큰 사고라든가, 상처, 삶의 피로에 대해서도 가늠할 수 없으셨겠지만. 나는 부모님의 사랑 이야기를 들을 때 이 '세 개의 문' 대목이 참 좋다. 그렇게 자꾸 돌아보던 젊은 아버지의 얼굴이 정말 좋다. 아버지는 그때도 어머니에게 앞으로 이 마음 변치 않을 거라고, 믿어달라고 했단다. 나는 그 말이 진심이었다는 걸 안다. 물론 이제 막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어머니는 깔깔대며 이렇게 시부렁대긴 하지만.
“아이구, 야, 요샌 세 번은커녕 하루 한 번만 봐줘도 소원이 없겠다.”
아니, 그것도 필요 없으니 집에나 제때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궁시렁궁시렁. 어머니는 삶에 자주 실망했지만, 나는 어머니가 그때 이야기를 할 때 표정이 매우 밝아진다는 걸 안다. 언젠가 아버지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오진을 받고 응급차에 실려 갔을 때도(동네에 ‘증래’가 죽는다고 소문이 쫙 났다) 서울 가는 내내 아버지 옆에 앉아 목 놓아 우셨다는 것 역시. 나는 아버지가 얼마나 아프셨는지는 모르지만, 그때 선물로 들어온 깨죽이며 잣죽 캔을 베란다에 쌓아놓고 겨울 내 참으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난다.
어찌됐든 이러저러한 전사(前史) 덕에 내가 태어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음주라던가 일기,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의 관계, 1970년대 말 전국에 불던 근대화 물결, 두 연인이 나란히 앉아있던 밤, 그 바닷가에 불던 바람의 방향과 달빛의 조도, 큰 언니가 겪은 병치레, 부모님의 불안과 걱정, 한 명만 더 낳자는 계획 같은 것이 어우러져, 새삼, 엉뚱하게.
물론 인간이 계획하는 것들은 곧잘 빗나가고 어그러지는 터라, 단지 자식 하나를 더 바랐을 뿐인 가난한 부부에게 하느님은 덥석 쌍둥이를 안겨주시고 말았지만. 현실적인 우리 어머니, 하나 버리자고 했을 때, 낭만적인 우리 아버지, 절대 버릴 수 없다 말씀하신 것―나, 잊지 않고 있다. 그런 건 ‘나 김정래란 사람을 한 번 믿어 보시유’라던가 ‘앞으로 절대 변하지 않을 거다’란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퍽 어울리는 선택이라는 것도. 그러니 ‘좋은 말’은 늘 아버지가 하고, 뒷감당은 늘 자기가 한다는 어머니의 한탄에도 불구하고, 동네에서 한 어른이 ‘저게 누구여?’라고 물었을 때, 다른 어른이 ‘잉, 증래 딸이여, 쟤가 작가랴’라고 답하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가만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것이다.